강원도/강릉시

강릉...강릉 향교

임병기(선과) 2018. 6. 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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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향교

답사 2일차. 해장거리 답사로 수문리, 대창리 당간지주를 들린 후 여유가 있어 강릉향교를 찾았다.

향교는 답사 동선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번 답사 코스 중 유일하게 미답처이었다.

 

강릉향교

"향교중건발(鄕校重建跋) 등 향교 건물의 중수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고려 충선왕[1313]에 강릉존무사 김승인이 화부 연적암산 아래에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태종 11년(1411)에 향교가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태종 13년(1413)에 강릉대도호부판관 이맹상이 옛터에 향교를 다시 세웠다. 성종 16년(1485)에 중수를 시작하여 4년만인 1488년 부사 이칭이 공사를 완공하였다. 16세기에 들어서 명종 10년(1555)에 강원관찰사 이인서가 향교를 중수하였다. 광해 2년(1610)에 부사 김륵이 동서무와 명륜당을 중수하고 연못을 파서 천운지라고 명명하였다. 인조 원년(1623)에 부사 유영순이 향교를 중수, 인조 22년(1644)에 부사 강백년이 명륜당을 중건, 효종 2년(1651)에는 부사 이만영이 향교를 중수, 숙종 10년(1669)에는 부사 여민제가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숙종 10년(1684)에는 부사 목림유가 전사청을 조성하였으며, 숙종 22년(1696)에 명륜당을 숙종 26(1700)에는 동서무를 각각 중수하였다.

18세기에 들어서도 향교 중수가 계속되었는데 경종 원년 (1721)에는 대성전과 월랑을 중수, 영조 14년(1738)에 명륜당 동쪽에 교관의 거처인 정양재를 중건, 영조 32년(1756)에는 명륜당, 영조 52년(1776)에는 재방, 정조 11년(1787)에는 대성전과 동서무, 정조 24년(1800)에는 대성전을 각각 중수하였고, 순조 7년(1807)에는 동서무를 중수하고 서재를 중건하였다. 순조 9년(1809)에는 제기고 번와공사를 실시하였고, 순조 13년(1813)에는 명륜당, 순조 25년(1825)에는 동재를 중수하였다. 고종 6년(1869)에는 대성전, 명륜당, 서재, 전사청 등을 중수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향교 중수는 계속되었는데 광무 8년(1904)에는 대성전, 동·서무, 등이 중건되었고, 1907(융희 1)에 동·서재를 새로 만들었다. 1909년(융희 3)에는 향교 명륜당에 화산학교를 만들었으나 2년 후인 1911년 폐지되었다. 1917년 동·서무, 명륜당을 1920년에는 제기고를 수리하였다. 1921년에는 대성전, 동·서무를 수리하고 전사청의 방도 중건하였다. 1922년에는 수선강습소를 열어 명륜당의 창호를 유리로 바꾸는 공사가 있었다. 1924년 천운지를 파서 연꽃을 심었고 1926년 대성전 천장을 설치하고 외부 단청공사를 하였다. 1931년 향교 마당공사와 명륜당 설책, 담장신축공사 등을 실시하였다. 1932년에는 홍살문을 중건하고 명륜당 단청 공사와 기와 개량 공사를 실시하였다.

1949년에는 명륜중고등학교가 향교에서 개교하였다. 1962년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수하고 동재는 새로이 중건하였다. 1971년 퇴락한 동·서무 중수와 담장 개축공사를 하였다. 1979년 동·서무, 동·서재, 명륜당, 신삼문을 보수하였다. 1980년에는 동·서재 마당 박석포장과 창고 등 부속건물 2동에 대한 보수공사와 교직사 담장 개축공사를 실시하였다. 1984년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과 회랑보수공사를 하였고, 1987년 동·서무, 재실, 등을 수리하고 명륜당 전면에 외삼문을 세우고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천운지를 교직사 앞으로 이전하였다. 1989년 명륜당 앞 담장공사를 하고 출입문, 신문 등을 신축하였다. 최근 1989년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서무를 보수하였고 1995년 대성전, 동·서무를 보수하고 대성전 마당을 포장하였다"...디지털강릉문화대전 

 

명륜고등학교 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며, 다른 지역 향교와 달리 강릉의 많은 학교가 향교에서 개교하였고 현재도 경내에 명륜고교가 있다.

 

전학후묘 배치이며, 명륜당은 2층 누대(樓臺)형식의 장방형 건물로서,  누하진입이가능하며  위층은 강당과 직실(直室)로 사용되고 있으며 좌우로 길게 동서재를 배치하였다. 북쪽으로 대성전을 오르는 계단이 있다. 대성전은 내삼문을 길게 연결하여 회랑을 내었고, 동서 양무를 앞에 두고 있다.

 

 

묘정비廟庭碑

1973년 건립,탑신 상부에 공부자 묘정비(孔夫子廟庭碑)’라 새겼으며 당나라 시인 피일휴의 글로 공자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명륜당

대성전을 맞보고 있는 구조로 진도문을 통하여 동재로 연결된 마루를 통하여 출입가능하다. 정면 11칸 측면 2칸의 세로로 길쭉한 평면 건물로 다른 지역 명륜당 보다 크며 2층 누각으로, 5량가 맞배지붕이다. 전후면 매칸에 사분합 띠살문을 걸었다..

 

 

진학문 우측 축대

육례六藝.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새겼다.

즉,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인 예절(禮), 음악(樂), 활쏘기(射), 마차를 탈 줄 알고(御), 글과 글씨(書), 수학과 천문지리 수(數)를  배우는 장소라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주나라나 한나라에서는 남자 나이 15, 16세가 되면 대학(大學)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한 사람의 인격체(선비 士)가 되기 위한 교육이었다. 그 교육의 내용이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였다. 육덕은 지인성의충화(知仁聖義忠和)를, 육행은 효우목인임휼(孝友睦婣任恤)를, 육예는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배우는 것인데 특히 육예는 실용 교육이었다. 에티켓(禮)을 배우고, 음악(樂)을 배우고, 활쏘기(射)를 배우고, 마차 운전(御)을 배우고, 글과 글씨(書)를 배우고, 수학과 천문지리(算)를 익혀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CNB채널/이한성 교수

 

 

진학문進學門

명륜당 누하진입을 하지 않으면 진도문으로 들어가 명륜당 출입이 가능하다.

 

 

동재

영남지방의 동재와 달리 툇마루가 생략되었다.

 

 

명륜당, 서재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과 대성전을  축대로 높게 구분하여 계단으로 연결하였으며, 다른 지역 향교와 달리 삼문을 전랑으로 연결한 구조이다.

솟을대문이며, 홍살을 설치하였다. 중앙과 좌우 판문에는 태극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내삼문 내부

정면 9칸, 측면 1칸의 전랑(殿廊)이다.

명륜당 방향은 회벽으로 마감 하였으나, 대성전 쪽으로는 개방하였다.
기둥 하부의  흰색과 검은색의 상징은 무엇일까?

 

 

내삼문

 

 

대성전

2기단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전면에 계단을 두지 않고 좌우에 계단을 두었다.

(대성전 정면이 신도神道를 상징하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정면 5칸 측면 3칸, 주심포, 맞배지붕 풍판을 달았다. 정면 1칸은 제향 시 배례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듯 벽체가 없다

내부는 전돌 대신 화강석 박석을 깔아 마감하였다. 중앙에 공자를 비롯 5성현의 위패를, 공자의 제자 10인 즉 공문십철(孔門十哲)과 송나라의 6현인 즉 송조육현(宋朝六賢)은 양 측면 벽체에 붙여 단을 만들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석전제(釋奠祭)는 강릉 유도회 주관으로 2월 상정일[음력 2월 1일]과 8월 상정일[음력 8월 1일]에 봉행한다.

 

 

대성전 영역

흰색과 검은색 가칠단청으로 마감한 기둥 하부

 

 

동무

설총을 비롯한 58위를 모셨다.

 

 

서무

최치원을 비롯 57위를 모셨다.

 

 

우리나라 대부분 향교는 평상시에 출입을 제한하는 폐쇄적 공간인데 비해  강릉향교는 아침 일찍부터 개방되어 있었으며, 관리하시는 분께서 친절하게 맞이해주셨다. 타지자체에서는 마땅히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모범사례가 분명하다.

 

201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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