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강릉...신복사지 삼층석탑.석조보살좌상

임병기(선과) 2018. 6. 1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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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사지

 

창건 역사 및 폐사 시기가 전하지 않는다.

강릉읍지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 신라 문성왕 때 사굴산문(闍堀山門)을 개창한 범일선사(梵日禪師, 810~889)가 굴산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신복사지는 오래전에 절 이름이 '심복사(尋福寺)' 또는 '신복사(神伏寺)'로 알려져 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과 1937년 '신복(神福)'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편이 발견되어 '신복사(神福寺)'로 부르게 되었다

 

2005년의 발굴조사에서 삼층석탑 북쪽에 금당지가 있고, 좌우측에 회랑지가 있는 가람배치로 확인되었다.

 

 

2006년 글

오류도 보이지만 그시절 역시 냐의 안목이었기에

 

일사천리로 방향을 잡고 한치 오차 없이 움직였는데 강릉시내에 진입하고서는 진도가 더디고 오락가락이다.

누구나 신복사지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도가 지나치다. 결국 중국집 문을 두드린 연후에 길을 잡고 신복사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지 발굴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현재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큰 가람터는 아닐거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석탑 뒷 공간 즉 금당터가 좁아 보이기 때문이다.

 

신복사는  850년경에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적이 전해오지 않는다. 1936년 절터에서 '신복' 명문이 새겨진 기와 발견으로 신복사지라 칭해지고 있다

 

삼층탑 앞에 공양보살상이 석탑을 향해 배례하고 있다. 둥그런 얼굴, 어깨넘어 늘어진 머리카락, 옥개석 같은 관을 쓰고 연화좌에 앉아 계신다.석탑 앞에 보살상을 존치한 사찰이 평창 월정사 등 이지역에서만 나타나는 배치지만 지방적 특색 그 이상의 의미는 추측할 수 없을까?

 

고려석탑의 가장 큰 특징인 방형의 몸돌 받침이 뚜렷한 삼층탑은 이기단, 하기단에는 안상이 양각, 지대석 복련이 이채롭다.

옥개 받침은 3개,초층 탑신에는 감실이 보이고 2,3층 몸돌의 체감이 급격하고, 상륜은 비교적 온전하다. 
 

2006.03.14

 

(2006.03.14)

(2006.03.14)

(2006.03.14)

 

삼층석탑

 

지대석

1매 판석으로 상면에는 복련을 새겼으며,그 위에 1단 각형 괴임을 두었고, 모서리는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하층 기단

면석은 낮으며, 각 면에 3구씩의 안상을 새겼다.

갑석은 물매가 있으며,합각선이 뚜렷하다. 상부에는 각호각 3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상층 기단

별석괴임을 두었으며, 하부에는 깊히 낮은 부연을 새겼고, 상면은 낮은 각형, 높은호형, 낮은 각형 3단 괴임을 조출하여 상층 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기단 면석은 2매석으로 구성된 각 면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어 있다.기단 갑석도 2매석이며, 깊게 낮은 부연을 새겼고,상부에는 3단 괴임을 표현하였다.

 

탑신

각층 탑신 하부에는 별석의 괴임을 두었고, 초층탑신 괴임에 물매가 있어 합각선이 뚜렷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별개 석이며, 양우주를 모각하였다.

초층 탑신 한쪽 면에 장방형의 감실을 마련하였다. 초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체감률이 급격하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지 않으며, 옥개받침은 3단, 절수구를 새겼고 전각의 반전이 경쾌하다.

 

상륜부 
노반,복발,앙화,보륜,보주가 남아 있다.

앙화에는 연화문이 조식되었다.

 

고려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전한다.

 

 

 

지대석,하층기단

 

 

지대석 귀꽃

 

 

상층기단

 

 

하층기단 면석의 안상, 갑석의 부연

 

 

초층 탑신의 감실

 

 

탑신

 

 

상륜

 

 

공양보살상

 

 

 

 

공양보살좌상

사굴산문의 한송사지, 월정사 보살상과 더불어 단독 공양상이다.

하지만, 2곳의 보살상에는 천개가 없다.

개태사지를 비롯하여, 단독으로 조성된 우슬착지의 공양상은 전국에 다수 분포하지만 보관을 쓴 보살상은 3구만 기억된다.

 

 

대좌

지대석은  결실(매몰)되었으며, 팔각 하대석 상부에 2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낮은 중대석에는 안상을 새겼다.
상대석에는 복판의 앙련을 표현하였으며 상부를 둥글게 파내어 원형 대좌 받침위에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정면 철주 2개는 본래 대좌 촉공 속에 들어가 노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천개와 원통형 보관

천개 모서리에는 귀꽃을 새겼고, 하부에는 팔각 받침 안에 연화문을 조식하였다.

천개와 보관에는 장식용 금속을 달았던 홈이 남아 있으며, 귀에는 귀걸이를 달았던 홈이 있다.

 

보관 아래로 보발을 둥글게 흘러 내리게 표현하였다.

 

 

상호는 풍만하고, 복스러우며, 둥근 눈썹, 반개한  눈, 작은 코와  다물었지만 미소를 머금은 입, 턱은 둥글다..

백호를 표현하였고,귀는 어깨까지 내려 왔다.

 


삼도를 새겼고 목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다.

두꺼운 천의를 어깨와 가슴에 둘렀다. 왼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가슴에 모은 두 손에는 지물의 철주가 남아 있다

 

삼층석탑과 동시대에 조성된 보살상으로 전한다.

 

 

12년 만의 해후

짧은 만남, 긴 여운

 

201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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