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문경시

문경...갈평리 석조약사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8. 4. 12. 21:14
300x250
300x250

 

 

 

 

 

 

 

 

 

 

2018.03.17

 

2007.06.03 글

300x250
300x250

'경상북도 > 문경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립령(鷄立嶺)ㆍ마목현(麻木峴)ㆍ지릅재ㆍ한훤령(寒暄嶺) 등으로도 불렸던 하늘재를 처음 연 나라는 신라. 삼국사기에 ‘아달라 이사금 3년(156)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적고 있다.  죽령은 이보다 2년 뒤에 개척되었으니 기록상으로 볼 때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두대간 고갯길인 셈이다.


낙동정맥 동쪽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였던 신라는 험준한 백두대간 등줄기에 하늘재를 개척함으로써 비로소 한강 이북으로 향하는 숨통을 열 수 있었고, 이를 삼국통일의 디딤돌로 삼았다.

 

하늘재는 삼국의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기에 각국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고구려 온달장군은 “계립령과 죽령 서쪽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가지 않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후삼국 시대에 궁예가 상주를 칠 때도 이 고개를 넘었고, 망국의 한을 품고 길을 떠난 마의태자도 이 고갯마루에서 쉬어갔다."...다음


 

비록 전각속에 계시고, 석탑 부재도 도괴, 망실되고 기단만 남았지만 원망도 미움도 모두 삼킨 모습이다.

예전처럼 하늘재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을 자유롭게 맞도록 사방벽을 개방하면 좋을 텐데...

 

울고 웃으면서 이곳 관음리를 지나 하늘재를 넘어 충주 미륵리로 향했던 그시절의 님이 그립다.

역사에 이름 남긴 온달과 평강, 마의태자가 아니라도 숱한 사연을 품고 명멸해간 민초들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갈평리에서 눈물 훔친 나그네가 막 하늘재를 들어서면 만나는 부처님이다.

약사여래이든 미륵불이든 무사히 넘게 해달려고, 무탈하게 돌아오게 빌고 빌었다.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치고 계시지만 두 눈과 코 마져 자식을 원하는 님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대 집안 대를 잊는다면 무엇은 아니 주었겠습니까?

 

 

무너진 석탑 기단만 덩그렇게 남았다.

그옛날 지극정성으로 탑돌이 했던 선남선녀들도 눈앞에 펼쳐진 감자처럼 주렁주렁 자식을 거두었을까?

비록 육신은 피곤하고, 망가졌지만 마음만은 편한 표정이다.


 

하늘재를 넘나들던 나그네가 멀리서 참배를 했을 것이다.

하긴 과거 그시절에는 석불이 대로변이었는 지도 모를일이다.

전각 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간살로 둘러쳐진 모습은 영 아니다.


 

관음사의 절터라고 전하는 곳에 1985. 8. 5 지방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된 높이 3.33m, 폭 1m, 둘레 약 2.5m의 거대한 화강석 약사여래입상이다. 고려때 몽고족의 침입으로 불상의 머리가 떨어져 있던 것을 주민들이 붙여 놓았다고 한다.  마모가 심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석불입상에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충북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에 박(朴)씨라는 사람이 아내와 남매를 거느리고 살았는데 박씨가 중병에 걸려 아들이 문경읍으로 약을 사러 갔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서 아내가 마중을 나갔는데 아내마저 돌아오지 않게 되자 딸이 마중을 나가다 관음1리 중간쯤에서 죽었으며 어머니는 관음리 문밖에서, 아들은 관음2리 황정모리에서 각각 죽었다고 한다.

 

박씨의 병환을 고치기 위하여 약을 사러 갔던 아들과 모녀가 관음리에서 모두 죽자 이를 가엽게 여긴 부처님이 박씨의 꿈에 나타나 병을 고쳤는데 그 뒤 박씨가 부인이 죽은 문막에 미륵을 세워 평생을 죽은 부인과 아들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하늘재로 향하는 우측 문막 마을뒤에 계셨다.

불행하 건전지가 소진되어 겨우 사진 한장만 건졌다.

차를 도로변에 주차하고 걸어가면서 선민이 말처럼 올챙이도 보고, 도자기 가마도 체험하며 마을길을 거치는 동선이 좋을 듯하다.

 

고사리 꺽는 할머니의 손처럼 투박하게 보이지만 낯설지 않다.

어느님은 색약인 나를 희롱하듯 빨간 딸기를 가르키지만, 나는 선운사 동백꽃 에피소드(?)가 떠올라 쓴 웃음만 지었다.

 


관음리 석조 반가사유상...문화재청

 


하늘재를 바라보는 반가사유상은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선각의 대좌에 광배에는 희미하게 화불이 보이고 얼굴은 넉넉한 편이다.

관음리의 텃줏대감이다. 반가사유상은 어쩌면 계립령이 열리고 부터 조성되었을 것이다.

 

반가사유상 대좌와 오른발 중간 부분이 깨져서 넘어지고 난 후 장티푸스가 돌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다시 일으켜 세우니 병이 사라졌다고 한다.

 

2007.06.03

문경...황장산 봉산 표석  (0) 2019.02.25
문경...갈평리 오층석탑  (0) 2018.04.13
문경...관음리 석조반가사유상  (0) 2018.04.12
문경...봉정리 마애보살입상.마애약사여래좌상  (0) 2018.04.10
문경...대승사 오층석탑  (0) 2018.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