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답사기를 찾아보니 2008년 2월에 마지막으로 들렸었다. 어제 같은데 벌써 십년이라니...
옛글로 대신하며, 몇몇 특징만 살펴 본다.
대웅전 측면 띠살문 창살 우측 하부 작은 창살이 이채롭다
괘불지주. 경신庚申(1940년 추정)
금각역사상 업경대 좌우에 시립하고 계시며, 이 분은 흄금강 상이다.
삼층석탑 지대석, 저석이 없는 기단면석에는 우주,탱주가 생략되어 있다. 상층기단면석에는 우주,탱주가 모각되어 있어 하기단 면석은 본래 부재여부가 의심스럽다. 또한, 하층기단 갑석과 면석의 크기가 비슷한 점도 하층기단 면석이 본래부재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상층기단 갑석에는 호형이 나타난다 상층기단 면석에는 양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으며,우주가 면석의 일부와 일석이다.
상층기단 면석 감입식으로 결구되었다. 우측 탱주와 면석이 일석으로 조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구방식은 호남지역 석탑에서 주로 표현되며, 영남권에서는 통도사 사자목 오층석탑, 영양 서부리 삼층석탑에서 나타난다.
옥개석 처마의 반전이 급격하며, 처마가 사절되었다. 상륜부 노반이 높고, 상부가 오목하며,복발,보개,보주가 남아 있다.
탑신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층급받침은 전층 4단. 옥개석 상부에는 2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고려중기에 조성된 탑으로 추정된다.
부도전 근대에 조성된 부도는 극명,계행.상총스님의 당호가 새겨져 있다.
영파당대사영묵탑 影波堂大師 靈默塔 대좌위에 상륜과 탑신을 일석으로 조성한 부도 탑신에 양각으로 위패를 돌출시키고 당호를 새겼다. 상부에는 복련을 새기고 연화를 표현한 괴임위에 연봉형 보주를 올렸다.
영산나한양탑비 靈山羅漢兩塔碑.1938 일제강점기에 두 전각에 조성된 탑비는 무엇이엇을까? 명문을 확인하였으면 좋았을텐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부도. 대좌위에 종형 탑신을 끼웠으며, 일석으로 조성된 상부에는 괴임과 보주를 표현하였다.
당호를 새기지 않은 부도 탑신에 비해 옥개석이 너무 커서 탑신이 도괴될 것 같은 느낌이며, 암질도 서로 달라 본디 부재인지 의심스럽다. 대좌에 3엽의 복련을 표현한 흔치 않은 작례의 부도 탑신 하부에 앙련은 대좌 3엽 복련의 화려함을 상쇄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탑신에는 특별한 문양이 없으며, 호형 옥개석에는 연잎이 바람에 뒤집혀진 모습, 또는 전각부를 표현한 느낌이다. 보주는 망실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개관전에 뵈었지만 성보박물관이 닫혀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훗날, 우리님들의 인연이 닿기를 빌어 본다.
2018.01.20 |
답사기(2008.02.06)
초입의 찜질방, 청곡사 유료주차장을 피해 노변에 세워둔 차량 때문에 교행이 곤란해 등산객 마져 힘든 모습이다. 주차장을 이용하면 될텐데 자승자박인데 누굴 원망하랴. 게으른 중생은 주차장을 통과하여 청곡사에 잠입했다. 절집안에서 일주문을 촬영했으니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저지른 게으름은 즐거움인가?
그리고 또... 인연지은 수 많은 님들. 왠지 문득 나 답지 않은 감상에 젖어 본다. 길위에 서면 인간이 되는 모양이다. 어불성설, 언어도단? 그래 그렇다면 타락이라고 하지뭐!!
석연지?.전각을 세우고 연당이라 했다. 버려진 석조보다는 훨씬 멋지다.
청곡사의 산신각에는 할매산신을 중심으로 좌우에 다시 할배산신을 모셔 산신부부가 동거중이다. 지리산은 토산이며 토산은 여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할매산신을 모셨을 것이다.
청곡사 업경전 금강역사상은 조선후기에 나무로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칠성각, 나한전
본래 제자리일까? 나한전 옆에 위치한 이중기단 삼층탑이다. 고려초기 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도선국사 창건사찰에 자주 등장하는 비보탑이라고 한다. 즉 학이 알을 품고 있도록 하기위하여 탑을 품속에 살그머니 놓아둔 자리이며 지금의 탑이 있는 곳이라 한다. 그런데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둥지에 석물을 조성해도 되는가?
박물관에 전시중인 보물 302호 괘불탱이다. 안내문에 영산회상도를 영상회상도로 표기한 것은 옥에티일까? 경종 2년 1722년 금어 의겸스님 작품이다. 의겸 금어의 작품으로는 고성 운흥사, 합천 해인사,여천 흥국사(이 작품은 스님 설명을 들어며 오래전 보았다),순천 송광사,남원 실상사 등에 전해오며 불화에 '의겸류파' 일가를 이루었다고한다. 아래 설명은 전통사찰 자료에서 가져 왔다.
"이 괘불도는 높이가 10.4m나 되는 대형으로 거대한 화면에 삼존불입상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더욱 장대하게 보인다. 화면 중심에 꽉차게 배치한 본존불은 키형 광배를 배경으로 정상 계주에서 흰빛이 위로 뻗치고 있고 육계는 팽이형을 하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원만상을 하고 있어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석가불의 계통을 따르고 있는데, 상체는 짧은 편이지만 어깨가 넓고 가슴이 당당하며 하체 역시 우람하고 건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 어깨에 걸친 불의는 중후한 편으로 가슴을 과감하게 노출시킨 점이 눈에 띄며, 내의는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되고 하의는 연한 분홍색이며 옷깃도 변화를 주어 전면에 걸쳐 묘사된 꽃무늬들과 함께 밝고 선명한 색감을 강조하고 있다."
"거의 흡사한 모습의 좌·우 보살상은 불상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불의같은 중후한 천의, 정면을 향한 자세 등에서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보살상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천의의 채색에 코발트 계통의 청색과 연한 하늘색, 아름다운 연분홍색 등 화려한 색감을 다양하게 나타내었고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가 호화롭고 번잡한 장신구 치레가 이 보살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와 함께 두 보살상을 본존불뒤로 약간 물러나게 배치하여 원근감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고자 하였다. 보살의 머리위 키형 광배 좌우에 아난, 가섭과 각 3구의 불상, 1구의 천부상 등이 대칭되게 그려져 있어 화면 구성상 상부에 지나치게 치우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처럼 이 괘불화는 삼존불을 화면 가득히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존용〈尊容〉),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등으로 18세기 초반기의 불화 가운데 수작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석가, 문수, 보현의 삼존불로 생각되는 삼존입상의 불화는 예천 용문사 괘불도와 비교되는 귀중한 자료라 평가된다. 더욱이 화기가 있어 이 불화가 경남과 전남일대에서 활약했던 가장 유명한 화사 의겸일파의 작품이고 의겸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걸작이라 보여져 불교회화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괘불에 버금가는 청곡사의 보물 청동은입사 향로로 이 곳 출신 신덕왕후 강씨의 명복을 빌기위해 만들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강탈 현재는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조선 태조 6년 1397년. 향완은 향을 피우는 향로의 일종이다. 이 향완은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입의 가장자리가 벌어진 완(?)을 올려놓은 형태로서 조선 초기의 것이나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향완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몸체 6곳에 동심원 안에 범자 한 자씩을 넣고 그 여백에는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은입사하였다.
옆으로 벌어진 넓은 입 윗면에 연꽃과 넝쿨무늬를 곁들여 입사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고려시대 것에 비하여 좀 더 육중한 느낌이 강하며, 입사기법은 더욱 정교하고 화려한 멋을 풍기고 있다. 넓은 입의 뒷면에 “大明洪武 三十年丁丑 朝鮮國開國祖聖朝 中宮神德王后本鄕···“라는 명문이 있어, 홍무 30년인 1397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환학루에 걸려있는 퇴계의 시를 가져온다.
청곡사...이퇴계
琴山道上晩逢雨 금산도상만봉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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