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울산광역시

울산...병영성.석탑기단갑석

임병기(선과) 2017. 11. 24.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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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성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영使이 있었던 곳으로 1417년(태종 17)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 성이다. 고려 때부터 진이 설치되어 군사가 주둔하였고, 조선 태종 때에  경주로 옮겼다가 1415년(태종 15)에 다시 제자리로 옮겨와 경상좌도의 병마도절제사의 주둔처가 되었다. 처음에는 옛 울산읍성과 병영이 한 곳에 있다가 분리와 합병을 되풀이하였다.

 

사방에 성문을 두었고, 문에는 옹성을 두었던 흔적이 있으며, 사방 8m 크기의 치성 이 군데군데 있었음이 확인된다. 성돌은 임진왜란 이후에 왜성을 쌓을 때 많이 없어졌으나 기단부는 대부분이 남아 있다.성벽은 구릉의 정상을 안쪽으로 하고, 바깥 경사면에 7m 두께로 기단을 둔 다음, 기단에서 50㎝쯤 안쪽으로 성벽을 쌓아올렸으며, 내부는 잡석으로 채웠다. 바깥쪽 가파르지 않은 곳에는 해자를 팠던 자취가 남아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당시에는 병마첨절제사의 진으로서 군관 399명과 수성군 40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때의 성은 군치소의 북쪽 거마곡에 있었는데 바다로부터 3리쯤 떨어진 지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둘레는 621보()이고 성안에 우물이 세 곳 있었다. 당시의 방어전략에 따르면 염포·개운포·서생포西 등으로 상륙하는 왜적을 수군이 막고, 육지로 상륙한 왜적을 이곳 병영성에서 막았다.성은 조선 초기부터 계속 쌓았던 듯 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 규모를 둘레 3,723척의 석축()이며 높이 12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성 안에는 우물 7곳, 도랑 2곳이 있고 군창·동융루·선위각·조련고 등이 있었으며, 그 뒤 절도사 박원종이 이사정을 짓기도 하였다....네이버 발췌

 

전체를 둘러보지 못하고 북문지에서 동문 방향 치성 3곳, 서문지 옹성쪽으로 둘러 보았다.

 

 

북문지

사진 중앙에 옹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 위가 동문 방향, 아래가 서문 방향이다.

 

 

북문지에서 서문 방향, 성벽

 

 

동문과 북문사이 성벽

3곳에 치성城을 축조하였다.

 

 

치성城.

북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3곳 치성중 2곳이 보인다.

사진 우측 상부에 1곳의 치성이 복원되었다.

 

 

당집

성내 북문쪽에 위치

 

 

 

북문에서 서문방향 성벽

 

 

서문 옹성지城址

 

 

옹성지 하단에 눈에 익은 석부재

석탑 하층기단 갑석으로 추정된다.

 

 

낙수면 물매가 깊지 않으며

중앙 괴임이 높은 3단 괴임을 상부에 조출시켰다.

괴임에서부터 흘러 내린 내림마루가 처마 끝까지 이어져 있다.

 

 

3단 괴임

 

 

 

현재 병영성 둘레길(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역사문화탐방로)

병영초교.삼일사.서문지.북문지.동문지.외솔 최현배 기념관.병마절도사 비석군.남문지.병영초 코스이며 약  2시간 미만이 소요된다고 한다.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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