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사 보현사지에 중건한 사찰이다. "보현사는 1306년(충렬왕 32) 승려 만항萬恒이 짓기 시작하여 1314년(충숙왕 1)에 완공했다. 전각으로는 법당과 나한전, 약사전, 문수전, 조사전, 시왕전, 정루, 승당 등이 있었고, 소속 암자만도 30여 개나 되었다고 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1799년(정조 23)에 나온 범우고에 절 이름이 보현사로 기록되어 있다.
1692년(숙종 18) 승려 처능이 중창했으나 이후 한국전쟁 때 불에 탄 뒤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1931년 이봉기가 다시 중창하였고 1973년에는 법당과 요사를 지었다.1991년 태고종 승려 정봉이 이봉기로부터 절을 인수 받았다. 그 다음 해 정봉이 죽자 부인인 경환이 정봉의 뒤를 이어 2007년 현재까지 절의 주지를 맡고 있다. 현재 사찰 경내의 불사는 대부분 경환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디지털남원문화대전
만항萬恒( 고종 46, 1249~충숙왕 6, 1319) 송광사(수선사 )제10세 사주 혜감국사慧鑑國師이다. 5세 원오국사의 제자로 현재 부도와 비는 남아 있지 않고,이제현(李齊賢)이 지은 비문만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실려 전한다. 혜감국사가 공주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승과에 급제하고 금강산, 지리산과 낭월사, 운흥사, 선원사 등에서 수학하며 가르치다 중국의 몽산덕이와 서신으로 교유하고 충렬왕의 우대를 받았으며 입적후 시호를 내려 ‘혜감국사(慧鑑國師)’라 하고, 탑을 '광조지탑(廣照之塔)'이라 하였다. 국사의 탑은 절의 동북방에 세웠다 한다.
현재 사찰에는 부도 탑신석과 옥개석, 맷돌 등이 남아 있다. 대웅전 앞 정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조선후기 석종형 부도. 당호는 전하지 않으며, 대석은 결실되고,옥개석은 경내 돌탑위에 있다.
대웅전 옆 돌탑
돌탑 상부에 부도 옥개석으로 추정되는 부재가 보인다.
선원사 동종(좌측)...2008년 촬영
남원시내의 선원사 대웅전에는 보현사에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종이 전해온다.
"첫째 칸에는 작은 원 11개를 나열하여 각 원내에 범(梵)자 문양 1자씩을 넣었다. 둘째 칸은 띠 위로 두원광(頭圓光)을 가진 보살입상 4구를 배치했으며, 이 보살상 사이에는 보상화(寶相華)ㆍ연화(蓮花)ㆍ보개(寶蓋) 등이 2개씩 불규칙하게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띠를 따라가며 네 방향에는 유곽(遊廓) 4개가 배치되었는데, 네 개의 유곽 테두리에 당초문(唐草文)을 두르고, 그 안에 꽃무늬로 장식된 유두(乳頭)를 세 개씩 3열로 배열하였다. 유곽과 보살상 아래에는 명문판(銘文板)이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
다만 보살입상과 그 아래 연화당초문ㆍ보상화문이 있는 중구와 하대상구에 ‘보현사 중종(普賢寺中鐘)’이라는 글씨가 두 줄씩 세로로 돋을새김되어 있어 종이 봉안된 곳을 알 수 있다. 이 종은 조선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주조법이 불량하여 수법은 거칠지만 문양배치는 다채롭고 특이한 모습이다. 크기는 전체높이 66㎝, 견대까지의 종신높이 51㎝, 입지름 47㎝로 조선후기 범종 중 중형에 속한다."...한국전통사찰
남원 폐사지 순례 기회가 있으면 저 산속 보현사지에도 들릴텐데.
2017,09.30 |
'전라북도 > 남원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원...지리산 파근사지 (0) | 2017.10.15 |
---|---|
남원...석조여래좌상 (0) | 2017.10.14 |
남원...관음사 부도 (0) | 2017.10.12 |
남원...귀정사 부도 (0) | 2017.10.11 |
남원...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석등.부도 (0) | 2017.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