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남원시

남원...실상사 경내외 부도

임병기(선과) 2017. 10. 9. 07:25
728x90

 

 

 

실상사.

우리카페에도 내글 뿐만 아니라 많은 답사기가 실려 있다.

그래서, 조계암지 부도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오늘은 실상사 부도 순례 안내 목적의 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실상사 경내에는 실상산문 개창조인 홍척과 수철화상의 부도가 있다.

아직까지 정설로 자리잡지 않았지만 부도 주인공이 서로 바뀌었다는 학설도 있으나 현재 기준으로 보았으며, 이미 여러차례 언급하엿기에 양식의 세세한 묘사는 생략한다.

 

 

증각대사응료탑證覺大師凝寥塔

실상사 개산조 홍척국사(생몰년 미상) 부도, 극락전 향좌측에 위치

 

 

홍척국사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경상북도 문경 봉암사(鳳巖寺) 지증대사탑(智證大師塔)의 비문에서 “북산(北山)에는 도의(道義)요 남악에서는 홍척”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한 그보다 5년 앞서 821년(헌덕왕 13)에 귀국한 도의는 설악산을 근거로 하여 신라의 북방에서 선법을 펴고 있었고, 그는 남쪽인 지리산에 자리잡고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도의와 더불어 당시 남북을 대표하는 고승이었으며, 우리나라 선불교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828년 지리산 실상사(實相寺)를 창건하였는데,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경덕전등록≫ 권11에 그의 법통을 이은 이로 흥덕대왕과 선강태자(宣康太子)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왕족의 귀의를 받아 선풍을 크게 드날렸음을 알 수 있다. 문하에 수철(秀澈)이 있어 실상산문을 크게 일으켰다. 시호는 증각(證覺), 탑명은 응료(凝寥)이다.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홍척국사의 제자로, 실상사의 제2대조인 수철화상의 부도. 극락전 향우측에 위치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碑)...비문해설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유당(有唐) 신라국(新羅國) 양주(良州) 심원사(深源寺)의 고(故) 국사(國師) 수철화상(秀澈和尙)의 능가보월령탑(楞伽寶月靈塔) 비명(碑銘)과 서(序)

당(唐)에 입조(入朝)하여 봉하(奉賀)하고 왕을 따라 동도(東都)에 갔던 검교우위장군(檢校右衛將軍)이며 사궁대(司宮臺)의……인 <신(臣) ……가 지음>
……원사(院使)이며 조청랑(朝請郞)……인 동정원(同正員) <신(臣)……가 씀>
문하 제자인 비구 음광(飮光)<이 새김>


이르기를 “왕도(王道)를 도모하다 이루지 못한다 하여 도리어 패도(覇道)가 될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중생이 얻고 얻지 못함은 그 다음이 ……. 위대하게 능히 스승의 덕을 빛나게 하는 것은 …… 위대하지 아니한가. 진실로 칭찬할 만하도다. 도(道)의 본체를 찾고자 노력하고 위 없는 깨달음을 구하니 어찌 대우주를 지향하여 영원에로 힘써 나아간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 양무제(梁武帝) 때에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선법(禪法)을 전하여 …… 불가(佛家)의 으뜸되는 바른 것으로 삼은 바이니 어찌 잘못을 따르겠는가. 가을 매미는 울지 않는 것이어서 문수대성(文殊大聖)과 같은 보살도 말하기 어려웠거늘 제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이에 …… 저 대사가 바로 그런 분이시다.

덕(德)은 선인(仙人)이라 부를 만하니 증조부는 위계가 소판으로 집안이 진골(眞骨)로 빼어나서 경사가 후손에까지 미쳤다. 조부는 일신(日新)이고 부친은 수정(修靜)인데 벼슬하고자 하지 않아 대대로 좋은 법도를 전하여 집안을 온전히 하고 세상을 피하여 보전하고자 하는 맑은 뜻이 있었다. …… 도의 경지로 들어오기를 잘 하셨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허망한 꿈과 같음을 문득 깨달아 잠깐 눈먼 거북이 불법(佛法) 만나기 어려운 인연을 듣고, 불법을 보고는 지체하지 않으셨다.

 

나이 십오세 남짓에 불법을 배우고자 뜻을 두어 연허(緣虛)율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천종(天宗)대덕에게서 경전을 배우셨다. 얼마 있다가 …… 동원경(東原京) 복천사(福泉寺)에 가서 윤법(潤法)대덕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으셨다. …… 이내 불법을 믿어 …… 복덕(福德)과 지혜(智慧)가 모두 엄정하니 어머니는 반드시 하늘에 나실 것이다.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녀 설악(雪岳)에도 들르고 운봉(雲峰)에도 발을 옮겨 실상사(實相寺)에 이르르셨다. 스승이 원하던 바와 들어맞아 대사가 제자되기를 청하니 하락하셨다. 이에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하고 물으니 “스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하고 대답하셨다. 이미 신묘한 경지에 들어 …… 국사(國師)가 이르기를 “도를 붙이는 것은 오랜 인연으로 말미암은 바라. 서당(西堂)의 가풍을 잘 짓는 일은 (너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라고 하셨다. 이때 …… 스승이 부름에 응하여 거동하여 서울에 가시니 (왕이) 배례하였다.


이미 이치를 풀어냈으니 거처에 걸림이 있겠는가. 이로부터 명산(名山) 승지(勝地)의 탑에 예배하러 돌아다니시니 …… 참선(參禪)에서 꽃술을 드날리고 화엄(華嚴)에서 향기를 모으셨다. 마침내 다시 곧바로 가서 지리산(知異山) 지실사(知實寺)를 홀로 쌓으시고 여러 장소(章疏)를 남김없이 보시니 이는 나면서부터 뜻을 아는 이로서 날로 부처님이 천명한 가르침을 높여가신 것이다. 그 힘은 중생을 교화하는데 돌리시고 부처를 이롭게 하므로 고요하게 무리를 이끄시니 말없이 절로 알려져 정법대덕(正法大德)인 홍(弘)▨와 전(前) ▨주(州) 승정(僧正)인 순(順)▨, 종자(宗子)선사 등이 제자가 되어 모두 마음을 닦았다.

 

(중략)

 

돌아가신 것은 경복(景福) 2년(893) 5월 4일이다. 문도들을 불러 이르시기를 “죽음이 이제 이르렀다. 나는 떠나갈 것이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힘써 반드시 불법의 뜰에서 노닐어라. 비와 바람이 미친듯 날뛰나 뜬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모름지기 밝은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이치를 알아라” 하고 말을 마치고는 입적하셨다. 향년이 79요, 법랍이 58이다. 이상하도다. 물이 쌓이고 고기가 되돌아가며 숲이 기울고 새가 흩어지는구나. 대사께서 돌아가심을 듣고 영원사(瑩原寺)에 있던 추모하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진성왕께서 하늘이 철인(哲人)을 남겨놓지 않음을 돌아보고 문밖에서 울며 동궁관(東宮官)의 봉식랑(奉食郞)인 왕로(王輅)에게 왕명을 전해 위문하도록 하여 남기신 가르침을 따라 은덕에 보답이 되도록 수철(秀澈)이라는 시호와 능가보월(楞伽寶月)이라는 탑호를 내리셨다. 그 후에 여덟차례나 재(齋)를 베풀어 백일(百日)의 예를 갖추었으며 갖가지 향들을 모두 왕실에서 내주었다. 처음 낳을 때는 …… 돌아갈 때는 ……. 아아 푸른 연꽃 피는 절에서 멀리까지 덕의 향기 드날리고 대중의 목마름을 고루 적셔주며 스승의 도를 드높이셨다. 사방에서 우러름을 받아 만년토록 사실 것을 바랐으나 사람은 죽는 법이라 우린 누굴 본받을 것인가. 이제 …… 재상은 재상의 집안에서 나는 법이라 문인 관휴(款休)와 음광(飮光) 비구는 해를 쫓아가고 바다를 뛰어 넘을 만큼 뛰어난 분들이다. 그래서 능히 구름…… 눈앞의 아름다운 경계를 고르고 붓끝으로 용(龍)과 같은 행장을 적어 성스러운 거북의 신령스러움을 보여 천년 만년 이르고자 하였다. 나는 꿇어 엎드려 …… 추모하여 시를 지어 올린다.


동방에 어짐을 심어 불교를 법칙으로 하니
누더기 겉치레는 신하의 극치라.
허깨비와 같은 이 한몸에 여섯 흉악한 마구니들
남들은 …… 스님은 능히 …… .
지혜의 날카로움 더욱 세워서 ……배움을 이루며
덕의 물로 씻어서 요망한 번뇌 가라앉혔네.
할아버지는 서당지장(西堂智藏)이요 아버지는 남악홍척(南岳洪陟)이라 시방 대중 교화하여 한 나라의 스승 되셨네.
임금의 마음 말씀으로 적시고 부처님의 힘 감응하여 합치고
불법을 잘 닦아 …… 가르치셨네.
크나큰 보배 버려 두시고 ……
예나 이제나 헤아려 …….

(음기)강희(康熙) 53년 갑오년(1714년) 4월 일에 중건함.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보광전 옆 산길로 향하는 부도 순례길 상에 위치

 

 

회명당대선사탑晦明堂大禪師塔

자연 암반위을 대석으로 삼아 촉공을 두고 위에 보주와 일석인 탑신을 올렸다.

탑신 중앙에 당호를 새기고 상부에 범어을 원안에 새겼다.

 

 

 

 

부도 순례길에 위치한 석종형부도.팔각원당형 부도

 

 

자운대화상탑慈雲大和尙塔

회명당대선사탑晦明堂大禪師塔비와 비슷한 작례이다.

다만 자운화상 탑에는 범어문이 상하로 새겨져 있다.

두 부도는 동일 계열의 장인 또는 도반, 법제자 관계임을 추론 가능하겠다.

 

 

실제로 부도에 범어문을 새긴 작례가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남원에는 실상사에 2기와 더불어 파근사지에도 1기가 전해 온다.

 

 

 

실상사 부도.

당호가 전하지 않는다.

지대석에서부터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8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그나저나 문화재지정 명칭(실상사 승탑)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디 실상사에 부도가 1기 밖에 없는가?

 

 

하대석

운문이 고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상부에 3단 중대석 받침을 두었다.

 

 

팔각 중대석

특별한 문양을 표현하지 않았다.

 

 

상대석

앙련과 화문을 조식하였으며, 하부에는 괴임을 두고, 상부는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화문과 탑신사이에는 연지를 표현하였으며, 배수구가 있다.

 

 

탑신

한면에만 문비를 저부조로 새겻다.

 

 

옥개석

하부에 절수구를 새겼고, 팔각 옥개석의 물매는 깊으며 모서리마다 귀꽃을 장식하였다.

 

 

상륜부

복발과 보주에 운문과,화문을 새겼다.

 

 

고려초기에 조성된 팔강원당형 부도로 전한다.

홍척, 수철,편운의 뒤를 이은 선사의 부도이리라.

 

 

 

용담대화상탑 龍潭大和尙塔

탑신과 보주가 일석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전에서 되돌아 나와 논길을 건너 조계암지 부도전으로 향하는 부도 순례길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으나 현재는 편안하게 답사할 수 있다.

 

용담조관 龍潭 慥冠禪師 ...출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1700(숙종 26)∼1762(영조 38). 조선 후기의 승려.편양문파()의 승려. 전라북도 남원 출신. 성은 김씨(). 자는 무회(), 호는 용담(). 어머니는 서씨()이다. 용이 승천하는 태몽을 꾸고 낳았으며, 생일은 사월초파일이다.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지내면서 인생의 무상을 느껴 출가를 결심하였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1718년(숙종 44)감로사()상흡()에게 나아가 머리를 깎고, 태허()에게 구족계()를 받았다.1721년(경종 1)부터 화엄사()상월() 문하에서 수업하다가, 1723년 영남과 호남의 고승을 찾아 두루 편력하였다. 이때 영해()·낙암()·설봉()·남악()·회암()·호암() 등을 만나 선교()를 궁구하여 명성을 얻었다.

 

행각을 끝낸 뒤 반조(: 고요히 삼매에 들어 자기를 돌이켜봄)에 전념하다가 지리산 견성암()에서 『기신론()』을 읽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때 월저()의 고제(: 제자를 높여 부르는 말) 수일()이 찾아와 서로 문답하여 신기(: 정신과 근기)가 투합하였다.1732년(영조 8) 지리산 영원암()에 들어가 토굴()을 지어 가은암()이라 이름하고 만년의 안식처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사방 승려들의 간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회문산 심원사(), 동락산 도림사(), 지리산의 여러 암자에서 『선문염송()』과 원돈교()의 요지로 20년 동안 묘법()을 선양하였다.

 

1749년 겨울에 상월의 의발을 받았다. 1751년 겨울에 강석을 파했다가 문인들의 간청에 못 이겨 1758년 봄 지리산 대암()에서 강석을 열었지만, 다음해에 다시금 파하였다. 1762년 6월 실상사()에서 나이 62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수습한 사리 5과를 감로사·실상사·파근사() 등에 탑을 세우고 나누어 봉안하였다.50세 이후 의해지견(: 이치, 이해, 지식, 견해 등 논리적인 것)을 싫어하고 오로지 반조에 몰두했으며, 특히 만년에는 정토문()을 즐겨 언제나 사람을 접할 때 ‘유심자성()’이라는 말을 하였다. 제자로는 성암()·혜암()·죽암() 등 수십 명의 고승이 있다.)

 

 

중앙에 패를 선각 후 중앙에 당호를 새겼다.

 

 

탑신 상부에는 앙련을 두고 앙련 위에 보주를 낮게 표현하였다.

 

 

조선후기 부도이다.

 

 

실상사 부도 순례길을 따라 가면

경내외 부도 답사가 가능하며, 여유롭게 약수암과 백장암 부도까지 순례하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2017.09.30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