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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인제군

인제...운흥사지 황장금표석.석조대좌

by 임병기(선과) 2017.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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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지雲興寺址.인제군 설악로 3737-33

몇년전 양양에서 한계령을 넘어와 들렸던 한계사지에서 인제로 향하는 도로변에서 진입하였으니  초행길은 아니었지만  이미 다녀 온 우리카페 노랑나비님과 시나브로님의 꼬리를 잡고 쉽게 찾았다.기실 폐사지 답사는 성공 확률이  높지 않지만 앞 선 답사객들의 답사기는 크게 도움이 된다.

 

위의 주소는  민가이며, 집앞에 주차공간이 충분하다.

그래도 주인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으며,알고 봤더니 집주인이 운흥사지 아래 밭 주인이었다.

 

주차 후 차량 진입금지 길로 들어서서 첫갈림길 우측으로 가면 위 사진의 장면이 보인다.

즉, 좌측 높은 축대와 아래 밭 사이로 농로길이 있으며, 뒤에 보이는 길 우측 나무 아래에 돌무더기와 축대가 있다.

 

 

위사진 길을 올라서면 밭이 보인다.

밭 중앙  뒤편 전나무 아래에 사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가장자리로 진입하는 것이 좋다.

 

 

운흥사지.

운흥사에 관한 기록은 백담사 사적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백담사는 최초에 한계사로 개창하였으며, 화재로 운흥사로 옮겼다가 다시 여러번 사명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가.

 

 

 

한계사지...2012년 7월 31일 촬영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이 절은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라 했다고 한다. 창건한 지 50여 년 만인 690년(신문왕 10)에 실화()로 소실되어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다.

 

「심원사사적기」에는 이 때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낭천현()에는 비금사()가 있었으며, 주위의 산은 짐승들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곳의 산수가 매우 더러워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그와 같은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의 대승폭포 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그 사실을 모르는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고 전후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은 이전과 달랐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노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그 신이함을 알렸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방 사람들 사이에는 춘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을 통하여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종연()·광학()·각동()·영희()·법찰()·설흡() 등이 중건을 서둘러 790년에 한계사 터 아래 30리 지점에 이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그러나 984년(성종 3) 다시 불탔으므로 승려 동훈()·준희() 등이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라고 개명하였다

(하략)...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즉, 운흥사지는 한계사지 30리 지점에 위치하며, 백담사의 전신인 사찰임을 보여 준다.

사지에는 축대, 황장 금표석,방형대좌 등이 남아 있다.

 

 

황장금산黃腸禁山 각자

운흥사지 축대 중앙에 있다.

황장목은 속이 누렇고 단단한 소나무를 칭하며, 궁궐 건측등에 사용되어 민간의 입산을 금하는 표지석이다.

 

 

황장금산黃腸禁山

자서고한계自西古寒溪

지동계이십리至東界二十里

 

황장목 벌목을 금하는 산으로, 옛한계사지로부터 동쪽 2십리까지 경계이다

 

 

사지 축대와 방형대좌

황장금산석이 있는 축대 아래에 방형대좌가 있다.

 

 

방형대좌의 지대석 처럼 보였다.

 

 

지대석

이부재 측면에는 안상이 표현되어 있다.

 

 

지대석

 

 

방형대좌 하대석.

하대저석과 일석으로 복련을 새기고 3단 각형 받침을 조출하였다.

 

 

지대석의 안상,

하대저석과 일석, 복련. 3단 받침

 

어디서 본 방형기단석인데...

검색을 해보았더니.

 

 

합천 안정사지 석불좌상...2016년 5월 21일 촬영

 

 

지대석?

 

 

지대석?

 

 

방형대좌 상대석

뒤집한 상태이며 앙련과 간엽이 표현되어 있다.

 

 

 

 

운흥사지

운흥사에 관한 기록은 김수증의 한계산기(169156~515일)에도 실려 있다

우리카페 여름날님이 카페에 올린 한계산기 일부를 발췌 해왔으며,여기서 언급한 한계사는 운흥사를 의미한다.

 

5월 8. 맑음.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식사를 하고 7~8 리를 걸었다. 작은 고개를 넘고, 또 몇 리를 가서 부령동(富嶺洞) 입구에 들어섰다. 돌길이라 큰 돌이 많고 꼬불꼬불 올라가서 몇 구비인지 알 수 없다. 큰 나무와 깊은 숲이 길 양쪽에 있어 해를 가린다. 고개 위에 이르러 멀리 설악산(雪嶽山)을 바라보니, 구름 속에 가려져서 환하게 볼 수 없다. 고개를 내려가 동쪽으로 갔다. 몇 리 되지 않아 산골짜기가 나온다. 나무 그늘 속에서 꾸불꾸불 갔다. 반정(半程)을 지나는데 마을이 물을 마주 보고 있다. 앉을만한 곳을 찾아 말을 쉬게 하면서 식사를 한 후, 자다가 출발했다. 산을 에워싸고 있는 물은 굽이치며 흘러 한 구비를 지나면 또 한 구비가 있다. 이런 길이 30리이다. 교탄(交灘)을 건넜는데, 이곳은 서화(瑞和)의 하류이다. 깨끗하고 넓어서 좋기는 하나, 여울물이 깊고 급하게 흘러내려 작은 비만 와도 여행객은 오고가지 못한다. 물가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시내 위를 건너지른 긴 다리를 바라보았다. 이 다리는 인제현(蹄縣)으로 가는 길이다. 원통역(圓通驛)에 이르러 역졸(驛卒) 박승률(朴承律)의 집에서 잠시 쉬었다. 5리를 가면서 큰 내를 세 번 건넜는데, 이곳은 남교역(橋驛)의 하류다.

 

고원통(古圓通)을 지나 한계사(寒溪寺)로 들어섰다. 모래 길에 소나무 숲이라, 풍악산(楓嶽山) 장안동(長安洞) 입구와 비슷하다. 여러 차례 냇물을 건너자 북쪽에 골짜기가 있다. 비스듬히 꺾어지면서 절에 도착했다. 절이 있는 곳은 둘러싸여 있어 볼만한 곳이 없다. 그러나 뒤편에 있는 산봉우리는 깊고 아득하여 멀리서 볼만하다. 좌우에 있는 승방(僧房)은 새로 지은 판옥(板屋)이고 법당(法堂)은 이제 막 차례대로 짓고 있다. 스님들 10여명이 바쁘게 일을 하느라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동쪽 요사채에서 잤는데, 이날은 80 리를 갔다.

 

 

사지에서 바라본 전경.

 

골은 깊고, 길은 멀며

객의 앎의 허기짐은 더해만 간다.

 

20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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