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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양양군

양양...부사 이광식 철비

by 임병기(선과) 2017.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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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공원 비림.

양양군청 옆 의회 주차장에 주차후 공원 산책로 10여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부사 이공 광식 영세불망비府使 李公 光埴 永世不忘碑

 

이광식(1749년∼1812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화여(華如), 호는 청리(淸里)이다.
정조 7년(1783년) 증광시에서 진사 2등으로 합격한 후, 정조 21년(1797년)부터 선전관(宣傳官)ㆍ액외장용위(額外壯勇衛)ㆍ가주서(假注書)를 지내고, 순조 3년(1803년) 문과에 급제 종부주부(宗簿主簿)ㆍ도총도사(都摠都事)ㆍ감찰(監察)ㆍ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후, 1805년 훈련부정(訓練副正)으로 승차하였다. 1806년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있다가 같은 해 7월 18일 함평현감(咸平縣監)으로 제수 되었지만 7월 26일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고, 1808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승차하였다.


 순조 8년(1808년) 6월 21일  襄陽府使로 제수 받고 부임하였으며 순조 10년(1810년) 훈련첨정(訓練僉正)으로 이임하였다. 같은 해 장진부사(長進府使)로 제수되었다가 약 한 달 후에 우림장(羽林將)으로 임명된 후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었다. 1811년 부산첨사(釜山僉使)와 곽산군수(郭山郡守)를 역임하고, 1812년 헌납으로 제 기용되었다가 같은 해인 1812년 6월 용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이 후 관직이 종2품 이조참판(吏曹參判)과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에 이르렀는데, 卒年이 1812년으로 되어 있어 추증(追贈)된 벼슬로 보여 진다."...양양문화원

 

 

선정을 베푼 내역을 새긴 명문은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양양문화원 자료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언행이 신중하고 선치(善治)함으로 관민(官民)이 열복(悅服)하고 원만히 행정을 실시하여 관내가 안태(安泰)하여 불망비를 세웠다"

참 모호하다.

 

 

 

양양문화원 자료에는 현위치에 자리한 경과를 기록하고 있다.

불망비는 당초 남궁억선생님이 양양초등학교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일제강점기에 양양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었던 것을 李光植 府使의 후손인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 이종성씨와, 양양군 손양면 주리 이건주씨 집에 보관되었다가, 1960년 이후 양양군 손양면 상양혈리 7번국도 도로변에 세워져있었으며, 1995년에서 1999년경에 현산공원으로 이건(移建) 하였다고 이광식 부사의 6세손인 이건주(1938년생)씨가 증언하였다.

 

 

숭정 기원후 사 무인 칠월 일 崇禎 紀元後 四 戊寅 七月 日.1818년 7월에 세웠다는 명문이 뒷면에 새겨져 있다.

선정비, 불망비가 대부분 재위기간이 끝날 무렵, 또는 직후, 심지어는 재위기간중에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광식 부사의 재위기간은 순조 8년(1808년) 6월 ~ 순조 10년(1810년) 1월 이며, 1812년 운명하였다.

따라서 불망비는 양양을 떠난지 8년 6개월 후, 운명한지 6년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배경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20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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