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익산시

익산...혜봉원 목조삼존불. 목조보살입상

임병기(선과) 2017. 7. 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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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혜봉원

모현동 부도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2번째 방문시에 뵈었지만, 법당은 항상 닫혀져 있어 삼존불을 뵙기 여의치 않다.

 

삼존불은 숙종 38년(1712)에 조각승 초오()와 신옥()이  석가여래삼존상을 제작한하여 부안 개암산 도솔암에 봉안되었던 불상으로알려져 있다.초오는 1700년에 수화승 경호와 곡성 도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제작한 조각승이다.

 

석가여래좌상과 보살좌상은 착의법 등에서 차이가 있어  동일한 삼존불로 봉안된 불상이 아니라 각각의 사찰에 봉안되었던 불상으로 추측되며, 실제로 재질과 필체가 다른 2장의 발원문이 있다고 한다.

 

우측의 관음보살은 도난후 근자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로 지정되었건만 왜 문수보살을 관음보살로 모셨는지 의아스럽다.

 

 

석가여래

나발, 중간계주,정상계주, 백호가 표현되었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으며 장방형상호이다.

걸친 대의()자락은 목에서 가슴까지 U자형으로 늘어져 있고, 그 옆으로 한 가닥의 옷주름이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지 않았지만, 배 부분에 반대쪽 대의자락과 접힌 부분을 표현하였다. 하반신에 늘어진 대의자락은 배에서 좌우로 몇 가닥 펼쳐졌다. 승각기는 상단이 연판형으로 접혀 있다. 무릎 위에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보현보살

높고 커다란 보관()에는 연화문과 화염문 등이 장식되었다. 목조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보살상의 신체 비율과 착의법을 하고 있는데, 각진 방형의 얼굴에 눈은 가늘게 뜨고, 코는 높고 가늘며,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 보살상의 이목구비()의 표현은 석가불과 차이가 많이 난다. 보살상은 본존에 비해 어깨가 당당하고, 오른쪽에 걸친 대의자락이나 하반신의 처리 등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색난이 만든 불상과 양식적으로 유사성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치켜들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무릎 위에 올렸다.

 

 

관음보살

 

 

혜봉원 목조삼존불

 

 

목조보살입상

이번 익산 답사에서 손태호님이 보물로 지정된 익산 관음사 관음보살입상과 함께 조성되었다고 하여 주의깊게 보았다.

그런데

나의 옛답사기에 이미 그러한 내용을 올려두고도 까마득히 몰랐으니...

 

 

아래는 익산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입상에서 올렸던 글이다.

 

 

발원문...출처/다음

 

최선일님의 '조각승 원오의 삶의 작품세계'에서 발원문 해석을 가져 왔다.

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산인山人 의암儀庵이 큰 원을 세워 1594년에 길을 떠나 명산을 두루 돌아보던 중 북암北庵에 이르러보니 1597년에 본사本寺가 병란으로 인하여 불전과 전각이 전부 불타서 흔적이 없고 … 1601년 정월에 법당을 시작하여 다음 해인 1602년에 법당에 모실 불상 삼존을 조성하고, 다음 해인 1603년에 영산도와 다른 전각에 단청을 다하여 마치니 모든 사람들이 와서 둘러보고 말하기를 새로 지은 모든 것이 옛날의 북암 같다고 하였으며, 1605년 8월에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등 존상과 약사도, 미타도, 지장과 시왕도 등을 마쳤고 …”라는 문구를 통하여 1605년에 의암스님이 1601년 정월에 법당 건립을 시작하여 1602년에 불상 삼존을 조성하고, 1603년에 영산회상도와 다른 전각殿閣에 단청을 칠하였다. 1605년 8월에 화사化士 의암과 김문의가 발원하여 조각승 원오元悟, 충신忠信, 청허淸虛 등이 문수文殊, 보현普賢, 관음觀音, 지장보살地藏菩薩像과 약사藥師, 미타彌陀, 지장地藏 등의 불화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만들어진 네 구의 보살상이 현재 익산 관음사, 익산 혜봉사, 완주 위봉사(도난)에 봉안되어 있고, 이들 보살상이 처음 조성된 북암은 위봉사에 딸린 암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각승 원오는 1570년을 전후하여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1599년에 석준釋俊과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중수하였으며, 1605년 전북 익산 위봉사 북암 보살상 등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원오가 1624년에 경남 합천 해인사 경판고經板庫(法寶殿) 중건에 시주자로 참여하여 1620년대 중반까지 생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599년에 상원사 문수동자 중수?개금에 수화승으로 참여한 석준이 17세기 전반에 김제 금산사 중창에 적극 관여한 스님이기 때문에 같이 활동한 원오도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

 

모현동 부도

옛답사기에서 하대석(?)으로 표현했던 부재를 달넘새님은 중대석 괴임으로 설명하였다.

그이유는 중대석에서 새겨진 안상 때문이라고 한다. 중대석에 안상이 새겨진 작례는 없다고 한다.

 

옛답사기 를 옮겨왔다.

"전북 군산 보천사에 주석했던 연화당 스님의 부도로 두어 차례 개인 민가에 모셔졌다가 혜봉원으로 이건된 것으로 전한다. 우리가 익히 접한 유형에서 벗어난 원구형 부도로 특히 기단부가 다른 부도와 차이가 뚜렷하다. 그래서 하기단은 본래 부재라기보다는 훗날 새롭게 복원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대석에는 두겹 복련을 새겼으며, 하대석(?)은  높아 마치 중대석처럼 보인다. 중대석은 상대적으로 낮고 상대석에는 앙련이 피어 있다.탑신은 원구형이며 지붕돌 물매가 급히다. 상륜은 거의 완전한 모습이다."

 

 

2017.07.15

(삼존불에 관한 내용은 내이버에서 발췌하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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