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주시

영주...순흥향교 석탑재.연화대좌

임병기(선과) 2017. 6. 2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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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향교.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로, 처음에 순흥부 북쪽 금성에 창건되었다가 1718년(숙종 44) 동쪽 위야동으로 이건하였다.

1750년(영조 26) 남쪽 석교리로, 1770년(영조 4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71년에 중수하고 1975년에 누각과 단청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와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와 주사,영귀루, 중문이 있다.문 닫힌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영귀루歸樓

영귀는 우리나라의  정자명으로 널리 사용되는 명칭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며 살겠다는 의미로 논어에서 유래되었다.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막춘자 춘복기성 관자오육인 동자육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의 뜻을 말해보라 하였다.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서 벼슬을 하고 싶어 했으나, 

증점(曾點 증자의 父)은

늦은 봄 날씨 따뜻한 때 봄옷이 다 마련되면 대여섯 명의 어른과 예닐곱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나가 목욕하고 무우(舞雩)의 제단 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다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명륜당.동,서재

 

 

명륜당

 

 

동재

 

 

서재 겸 관리사

 

 

명륜당 계단의 연화대좌

 

 

대성전. 동,서무

관리사에 계시는 분이 문을 열어주어 들어갈 수 있었다.

 

 

대성전 기단, 주초에는 많은 불교석조문화재 부재가 사용되었다.

순흥향교 자리가 숙수사의 산내 암자이었는지 다른 사찰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

 

 

석조부재

 

 

연화대좌

 

 

석조부재

 

 

석탑기단갑석

 

 

석탑 옥개석

우동이 굵고 높다.

 

이런 작례는 백제지역과 경주 지역에서 몇몇기가 있으나 그 외 지역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즉, 익산 왕궁리 5층탑, 서천 비인리 5층탑, 공주 계룡산 남매탑, 김제 귀신사 3층탑, 곡성 가곡리 5층탑, 남원 만복사지 오층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 3층탑, 공주 마곡사 5층탑, 군산 발산리 5층탑에서 보인다.

 

경주일원의 동일한 작례는 옥룡암 석탑, 안강 정혜사지 13층탑, 배동 민가 옥개석 부재, 늠비봉 오층탑, 탑곡부처바위 삼층탑, 진현동 사지 석탑부재, 황룡골사지 석탑재(부도재)에서 나타난다.

 

혹 숙수사 또는 산내 암자의 석탑은 백제계 장인이 조성하지 않았을까?

 

 

석조부재

 

 

석조부재

 

 

폐사지

순흥향교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현장에 그 답이 있겠지.

 

201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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