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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음성군

음성...성주사지 부도

by 임병기(선과) 2017.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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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 부도

음성읍 감우리 137-3. "큰곰집 청국장 해장국"식당 

도로변에서 식당 향우측 좁은 시멘트 포장로로 진입하면 된다.

곧바로 포장로는  끊어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고갯길이 이어진다. 눈비가 내린 후에는 차량 통과가 용이하지 않으며 승용차는 더욱 어려움이 예상된다. 나는 고개 한참 못미쳐 승용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마을로 들어가야했다.

 

 

고갯길을 넘어 한참을 내려가 과수원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감우리 부도"를 말씀드렸더니

"내가 부도요!"라며 위치 설명과 더불어 과수원 끝 부분이 절터라고 했다.

오래전 이곳에서 철불이 발견된 이야기 등을 하시던 분이 차량으로 동행하겠다며 앞장을 섰다.

 

부도는

식당으로 진입하여 고개를 넘어 가면 민가가 눈에 들어 온다.

민가를 지나 진행방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담배건조장이 보이며 부도는 건조장 뒤편 20여미터에 위치한다.

 

 

성주사지聖住寺址

"성주사지는 창건과 폐사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 지만 『新增東國輿地勝覽』, 『湖西勝覽』, 『輿地圖書』, 『梵 宇攷』, 『忠淸道邑誌』, 『湖西邑誌』, 『朝鮮輿勝覽』에 보 현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전기에서 근대기까지 사찰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656년(효종 7)에 기록된 『承政院日記』에는 “~而陰城聖住寺 俗傳~ 兵之處 ~舊是巨刹~”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에도 명 맥이 유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에는 밭에서 크기가  동제불상이 발견되어 국가에 귀속되었고 B구역 내 능선부에는 승탑 2기가 있다."...문화재청.한국의 사지

 

위의 자료에는 승탑 2기가 있다고 하였으나, 하나는 부도비로 추정된다.

 

 

부도

복련이 새겨진 방형대좌위에 탑신이 결실된 상태로 보주가 올려져 있다.

그런데, 위의 책에는 원구형의 부도로 추정하였다. 탑신이라면 전혀 비례가 맞지 않다.

 

 

부도 탑신

개울가에 나뒹굴어진  탑신석.

상부가 평편하여 별석의 보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결실된 부도 탑신으로 추정된다.

 

 

 

부도비.

방형 기단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상면에는 1단 괴임이 표현되었다.

비신 사각 기둥 형태로 모서리에 연주문과 세호를 새겼다.

 

 

옥개석은 우진각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가 높게 표현되었으며, 마루 끝에는 용문양으로 마감하였다. 

 

 

측면에 부연, 하부에는 절수구와 2단 받침을 새겼다

 

 

비신 3면에는 각각 명문이 있다.

육안으로 구분 가능한 명문은 건륭19년12월乾隆十九年十二月으로 1754년 조성한 년도로 보인다.

 

 

 

 

내가 다녀온 며칠 후

우리카페 심충성님이 푸른바다님의 안내로 현장을 방문하여 명문을 확인하였다.

 

法弟 圓尙(법제 원상)

 

弟 資性(제 자성)

 

栗岩堂 大士(율암당 대사)

敬琳(경림)

 

乾隆 十九年 甲戌 十二月 日(건륭 십구년 갑술 십이월 일):1754년 12월

 

즉.1754년 조성한 율암당대사 부도비로 제자들이 세웠다.

한 분은 법제자(法弟 圓尙)이며, 한 분은 속가의 동생(弟 資性)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대사大師가 아니라 대사大士라는 표현도 이채롭다.

경림敬琳은 속가의 이름 또는, 법명으로 생각된다.

 

 

 

안내하셨던 분이 알려주신 부도 탑신석

민가 지나 삼거리 에서 부도로 향하는 왼쪽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30여미터 아래 왼쪽 개울가에 있다.

 

 

사리공이 하부에 있다.

능선의 보주만 남은 부도의 탑신석으로 보여진다.

 

 

 

제자리를 찾아주면 좋을텐데...

 

 

안내하였던 분.

담배건조장  뒤편이 고향이며, 직장에서 퇴직후 귀농하였다고 하셨다..

참 고마웁기 그지 없다.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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