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태백시

태백...본적사지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7. 6. 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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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사지 삼층석탑. 황지동 467-10

2010년 태백석탄박물관 지하수장고에서 뵌 님이다

그리곤

복원되었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동호회 영월답사

숙소에서  편도 57KM. 전후사정 팽개치고 아침 해장거리 답사로 뵈었다.

 

 

캬~~~!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몇개 없었던 부재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된 모습이다.

복원에 관계했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과연

본디부재, 후보재를 구분할 사람이 있을까?

 

 

 

본래 부재를 살펴보자

탑신부는

초층 탑신,2층 탑신 일부.1.3층 옥개석

기단부는

하기단 면석 2매(검은 암질). 하기단 갑석 1매(검은 암질) 상층기단 면석 1매(검은 암질).상기단 갑석1매(검은 암질)

 

 

2층옥개석.3층 탑신이 후보물

 

 

하기단면석, 갑석.상층기단 면석. 검은 암질이 본래 부재.

각호형 괴임이 뚜렷하다.

 

 

지대석은 매몰

하기단 저석과 면석이 한 개 부재이다.

 

 

초층탑신.옥개석은 본래부재

4단 옥개박침. 절수구가 표현되었다.

탑신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었다.

 

 

기단부.

검은 암질이 본래 부재

 

상층기단갑석 하부에 부연이 보인다.

 

원형 찰주공.

3층 옥개석 상부

 

 

 

 

2층기단의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 하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지대석은 매몰, 하층기단 면석과 저석은 한 개 부재이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1개 탱주, 양우주가 모각되었고, 4매 판석으로 결구된 갑석 상부에는 각호형 2단 괴임을 두었다.

상층기단 면석은  감입식으로 1개탱주, 양우주를 새겼고, 은장홈이 남아 있는 2매 판석의 갑석에는 부연을 표현하였고 2단 각호형 탑신괴임을 조출하였다.

 

탑신에는 탱주가 생략되었고, 양우주를 모각하였으며, 특별한 조식은 없다. 초층 탑신 상부에는 원형 사리공이 있으며, 3층 옥개석에는 풍탁공이 남아 있고 상부에 원형 찰주공이 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깊고,절수구와 각각 4개 층급받침, 상부에는 2단 각형 괴임을 두었으며 추녀는 수평을 이루고 처마에는 반전이 있다.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해장거리 답사로 뵌 석탑

열흘 후 날라온 과속 과태료 딱지 마져 싫지 않더라.

 

다시 한번

태백시 관계자 여러분에게 갈채를 보낸다.

 

2017.05.21

 

아래는

2010년 태백석탄박물관 수장고에서 뵌 본적사지 석탑부재 글이다.

 

 

 

거의 10년만의 발걸음인가? 아이들과 낙동강 발원지 황지못, 고냉지 채소 밭, 여기 석탄 박물관을 들렸었다. 이번에는 박물관 답사가 아니라 본적사지 탑재를 보기 위해서이다. 전화로 사전 약속한 학예사님의 도움으로 지하 수장고에 보관중인 탑재를 보았다.

 

 

본적사의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전해오지 않으나 산사에서 발견된 와편으로 볼 때 신라말기에 창건된 사찰로로 보이며 인조실록(인조26년, 1648년)과 척주지에 본적사가 소개되었고 1916년에 발간된 삼척군지에는 "본적사는 숙종(재위기간 1679~1719년)때 마을 서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석탑만 남아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300여년 전에 폐사하였다고 한다.

 

 

수습된 석탑재는 신라석탑의 양식을 비교적 잘 계승하고 있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남아 있는 부재는 완전하지는 않으나 원형복원이 가능하고 태백지역의 불교문화 양상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998년 4월 태백시·태백문화원·태백향토문화연구회 공동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수습하여 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었다.

 

몸돌

기단면석과 옥개석

 

 201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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