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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고창군

고창...부곡리사지 석불입상

by 임병기(선과) 2017.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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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사지

고수면 부곡리 302번지 마을 뒤편에 위치한 사지이다.

창건과 폐사에 관한 문헌은 없으나 백제시대에 창건하여 조선초까지 운영되었던 사찰로 구전된다.

동행한 주민의 말씀으로는 한국전쟁 즈음에 많이 훼손되었으며 근자에 많은 석조물이 반출되었다고 한다.

고창디지털문화대전에는 성산사城山寺,한국의 사지에는 성산사聖山寺로 표기되어 있어 통일이 필요하겠다.

 

현재는 민묘.경작지 등으로 유구 확인이 어려우며, 상반신 이상이 결실된 석불입상이 유존한다.

한국의 사지에 등재된 석탑 갑석은 찾지 못했다. 

 

 

민묘 나무 아래 석불입상

 

 

가슴부위 이상은 훼손되었고

하반신은 묻혀 있는 모습이다.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지명유래편에 등재된 성산사 이야기를 옮겨 왔다.

성산사 절터의 뒷마을 이름이 증산인데, 승려들이 붐벼서 증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아주 오랜 옛날 증산마을에 봉씨 한 사람이 높은 벼슬을 지내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승려들이 문안 인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나 둘씩 절을 버리고 멀리 떠나버렸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높은 벼슬을 했다는 봉씨는 조선 시대의 세도가로서 당시 숭유척불사상을 떠올리며 승려들을 괴롭힌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절터 주변의 들판을 성산이라고 하며, 절터에 있는 연못을 성산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사찰 이름이 성산사로 생각된다. 이 절은 이름 높은 사찰이어서 고승들의 수도처였다고 한다. 예부터 고승이 거주하는 곳에는 돌로 만든 말을 세워 절의 입구를 밝히곤 했다. 그런데 약 40여 년 전에 일본 사람이 이 석마를 가져가고 현재는 말고삐를 매는 돌로 만든 말뚝만 남아 있다. 이 절터에는 상반신이 없는 석불이 있는데, 상반신은 증산마을에서 학독을 만들었으며, 이 학독을 만든 이는 눈이 멀었다고 한다.

이 절을 처음 세운 사람은 고구려의 고승으로서 고구려 장수왕의 오해를 사서 남으로 피신해 왔다고 한다. 그때 비둘기 한 마리가 고승을 안내하여 성산에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터만 남은 이곳은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유적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곳으로 지금도 많은 기와 조각이 나오고 있다. 이 기와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상반신이 없는 석불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 조사팀이 채록한 기록에는 "사지에 있던 석불을 1974년 성송면 초내리 오씨사당으로 옮겨 갔다"는 내용이 등재e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송면 초내리 포상정(오씨 사당)에는 성송면 무송리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진 삼층석탑이 유존한다.

또한 삼층석탑 옆에는 석불좌상이 남아 있어, 주민들의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다.(아래 석탑.석불 사진 참조)

 

 

초내리 포상정 삼층석탑,석불좌상

 

 

삼층석탑

 

 

석불좌상

 

 

초록의 향연이 시작되기 전에 들렸으면

석탑 부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2017.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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