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한.산중일기 1686년 4월 16일 흐림
산중일기를 펼쳐 정시한이 기록한 안국암 부분을 옮겨올려고 했으나 게으런 성정으로 편한 길을 택했다. 위 일기는 지리 99 홈페이지에 등재된 발췌된 내용을 그대로 가져 왔다.
2008년 4월 13일 은광국사 부도를 뵙지 못한 안국사 답사는 미완이었다.
왜 그 기분 아는가? 불전함에 보시를 할려고 지갑을 꺼냈는데 만원, 오만원권만 들어 있을 때의 묘한 갈등을... 즐건 마음으로 올려야 할 보시인데,순간 망설이었다.
불전에 불경을 범한 이런 날에는 조심을 해야하기에 처사님이 알려준 산길을 조심조심 올랐다.
은광대화상 부도 두터운 방형 지대석.하대석.중대석.상대석. 탑신. 옥개석을 갖추었으나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하대저석이 없어 복련이 크게 보이며 괴임위에 한 돌로 팔각중대석을 올렸다. 중대석에는 부도의 주인공 '은광대화상' 명문이 있으며,복련을 조식한 상대석 상부에는 면마다 안상을 새겼다. 옥개석 상부에는 기왓골, 암수막새가 확연하고 하부는 겹처마(?)를 표현 한 것 같다.상륜부는 옥개석과 한 부재인 받침만 남아 있다. 우리카페 달넘새님은 고려초기에 부도에 나타나지 않은 아래 특징으로 미루어 조선초기 부도로 추측한다. -하대석의 상대석,하대석이 일석 -하대석,중대석이 일석 -상대석 앙련 상부를 갑석형으로 치석 -갑석형 면석의 안상 조식 불행이도 은광대화상에 관한 행장은 남아 있지 않다. 일설에는 안국사와 금대암을 창건한 행호조사의 부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행호行乎는 "선승(禪僧). 해주최씨(海州崔氏). 최충(崔冲)의 후손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계행(戒行)이 뛰어났고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법화경』의 이치를 깨달아 천태종의 지도자가 되었다. 태종이 치악산 각림사(覺林寺)를 짓고 창건대회를 베풀 때, 그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였고, 또 장령산(長領山) 변한소경공(卞韓昭頃公) 묘소 곁에 대자암(大慈庵)을 세우고 주지로 임명하였다. 세종이 즉위하자 판천태종사(判天台宗事)로 임명하였으나 얼마 뒤 벼슬을 버리고 두류산(頭流山)에 금대사(金臺寺)·안국사(安國寺)를 창건하였고, 천관산에 수정사(修淨寺)를 지었다.왜적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社)를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도움을 받아 1430년(세종 12)부터 중수하기 시작하여 1436년에 준공하였다. 조선 초기 유생들의 강한 척불론 속에서도 효령대군 등의 귀의를 받아 왕실에 대한 불교 보급에 힘썼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부도 앞 부재. 결실된 상륜재?
지대석
기단
상기단 안상
탑신
지붕돌 하부 기왓골
우리나라의 3안국(함양 안국사, 당진 안국사, 무주 안국사)사찰의 하나인 함양 안국사에 봉안된 은광대화상 부도는 실상사 약사여래처럼 나라의 정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비보하기 위한 부도라고 알려져 있으며, 일설에는 서산대사의 모친 부도라는 달빛에 물든 야사가 전해온다.
안국사 부도전 안국사 입구, 행호조사모전(김)탑비.행호조사모부도.금송당 부도. 부도비가 모셔져 있다. 탑신의 명문이 처음부터 새겨진 명문인지 불분명 하다. 그래서인지 문화재청홈페이지에는 주인공을 밝히지 않고 있다.
금송당사리탑琴松堂舍利塔. 행장이 전하지 않는다. 장방형 지대석 위에 앙련을 조식한 원형 기단석을 놓았다. 탑신에 琴松堂 명문을 새겼다. 팔각 옥개석의 낙수면 물매가 깊고 전각의 반전은 희미하다.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행오조사모탑 行乎祖師母塔. 명문에는 그렇게 새겨진 것 같다. 문화재청에 홈에는 주인공을 밝히지 않았다. 팔각원당형 부도로 하대석과 상대석에 복련과 앙련을 조식하였다. 탑신 아래에 북모양의 괴임을 끼웠다. 괴임의 볼록한 부분에는 꽃이 새겨진 띠를 둘러 놓았다. 팔각 옥개석 상륜은 결실된 상태이다.
행호조사모전탑行乎祖師母全(金)塔. 명문은 그렇게 보인다.
부도비. 명문 식별이 어려운 상태이었다. 서상대사 부도비? 금송당 부도비?
부도전에는 안국사 경내에 4기 부도가 있다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1기는 은광대화상 부도, 2기의 부도는 부도비와 함께 부도전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서상대사 부도는? 혹 육안으로 구분이 힘든 맨 우측 부도비 앞에 서상대사 부도가 있었을까?
1686년.4월 17일 저 산을 바라보며 정시한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지세가 높고 광활하여 바로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금대암과 차이가 없으나 어제 금대암에서는 구름이 잔뜩 끼어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늘어선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상봉에 눈이 녹지 않아서 보는 눈과 느끼는 마음이 모두 후련하였다"
2016.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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