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운곡리 은행나무

임병기(선과) 2016. 6. 11. 13:32

 

 

은행마을 돌담장

옛그림자도 잠시 시멘트 골목길이 유년의 추억을 앗아간다.

 

어쩌겠는가?

그들은 삶이고

나는 나그네인 것을...

 

 

은행銀杏마을은 팔백여년전 마을 아래 개장천변開場川邊에 마씨가 살았는데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개장천은 평야가 되고 광대한 평야는 하천으로 변하였다. 그는 지금의 은행촌으로 이사를 하여 흙으로 집을 짓고 돌로 담장을 쌓아 살았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마을 운주형 풍수형국 비보책으로 은행나무를 심어 돛대로 삼았다고 한다.

 

은행마을은 다른 운주형국 처럼 배가 침몰한다는 믿음 때문에 우물을 파지 않는다.

우물을 팠다가 송아지가 우물에 빠져 죽어 그 우물을 메우고나니 그자리에 은행나무가 났다고도 한다. 그 후에 해주오씨가 들어오고 김해김씨가 들어와 대성을 이루며 마을이 커졌다. 그리하여 마을 이름을 은행정이라 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8백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마을 수호신목으로 숭앙을 받고 있다.

또한 여타 지방 노거수에 전해오는 비슷한 전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배를 만든다는 구실로 공출을 강요할 때 은행나무를 매각처분 하자고 모의한한 마을 유지들은  모두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었으며,사람들은  은행목신의 벌을 받아 병사한 것이라도 여기고 있다

 

 

 

금년에도 동제를 모신 듯 금줄과 소지가 걸려 있다.

 

 

 

 

 

 

은행나무는 3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열매가 열렸다고 한다.
당시 송계마을에 숫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가 없어진 후로는 열매가 맺혀지지 않고 속절없이 가지만 무성하게 펴져 나가고 있다.  애닲은 주민들은 마을 초입의 운정초등학교(지금은 운정연수원) 교정에 은행나무를 심어 늙은 은행나무의 회춘을 시도해 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늦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돌담장

그리고

은행알이 가득 떨어진 마을길...

 

우리모두

새생명 잉태의 그날을 기원드리자.

 

20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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