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의 주포인터인 의신사지 법해당(?) 부도를 뵙기 위해 의신마을에 도착하였으나 피서인파로 뙤약볕에 주차공간 찾기가 부도 찾기보다 더 어렵다. 도로변에 불법 주차 후 동리 아주머니에게 탐문하였더니 개략적인 위치와 부도를 잘 아는 분의 집을 알려주었다. 부도는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우측으로 난 희미한 길(위사진 상단 소나무 아래)로 들어서면 10여미터 전방에 위치한다.
부도로 향하는 의신마을 마지막 집(의신길 26-11)에서 부도 까지는 넉넉잡아 15분 미만의 거리이다. 사진 아래편 경작지 위쪽 우측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었지만, 주민이 안내한 길을 택했다.
소나무 아래를 통과하자 가시덤불이 가로막아 제거 후 진입하였다. 의신사지 법해당法海堂 부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나 역시도 그렇게 인지했고 여기저기 자료,답사기에 법해당으로 표기하였다.결론적으로는 나의 치밀하지 못한 성정으로 인한 오류이었다. 하지만 그냥 두련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을 반성 할 때 부끄럽지 않은 법이다.
디지털하동문화대전의 의신마을 소개글 이다. "의신마을은 처음에 마을 터에 있었던 의신사 등과 같은 여러 암자들이 생기면서 사하촌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신사 혹은 의신암은 17세기 초반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전해지며, 1611~1680년 사이의 어느 때에 폐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신마을에는 의신사 외에도 대승암, 고대승, 상대승, 동암 등의 절이 있었다.
아쉽게도 디지털 하동문화대전 탑과 부도 목록에는 지리산 화개골의 대부분 부도(칠불사,신흥사지.의신사지, 사리암지 등등)를 누락시켰으며 유일하게 쌍계사 진감국사 부도는 등재되어 있다. 그로 인해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리산 산행기 검색중 또다시 찾아야 할 부도 1기를 발견했다. 이거야 원!!!
방형대좌위에 탑신과 보주가 하나로 조성된 석종형 부도이다. 법해당法海堂 부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석
보주
O每堂.탑신에 새겨진 명문 맨위 글씨는 확인 되지 않고, 중앙의 글씨도 부수가 훼손되어 해海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즉 온건한 글씨는 당堂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디지털하동문화대전, 하동문화원의 하동의 문화유적 등에 비롯 각종 자료에 법해당法海堂 으로 공인(?)되었을까?
1489년 탁영 김일손의 속두류유록續頭流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계축에 산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가는데 능선 북쪽은 함양(咸陽) 땅이요, 능선 남쪽은 진주(晉州) 땅이다.
의신사에는 30여명의 스님이 정진중이었으며 "요주(寮主) 법해(法海)는 무던한 중이었다."내용이 있다.
즉,김일손의 속두류유록이 아니고는 법해스님의 법명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인지하는대로 스님의 법명과 부도의 당호를 같이 사용하는 작례는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속두류유록에 등장하는 의신사 주지 법해스님이 부도의 주인공 법해당이라고 확신할 근거는 없으며, 오하려 다른 스님의 부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화개동천. 선유동 계곡의 바위 각자. 그리고 사리암의 부도
단풍이 곱게 내려 앉으면 찾아 뵈리라.
2016.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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