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하동군

하동...화개 탑리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6. 7. 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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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우리카페 유현이랑 다녀온 글이 남아 있다.

탑전 우체국은 카페로 바뀌었고

"미소"식당은 현대식 주막으로 단장하였다.

 

그시절이 그리우면

추억 반추가 잦으면

난...

 

 

봉상사지奉常寺址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경덕왕 재위(742~764)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1900년 초의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화개면 탑촌리에 남아 있는 절로 도괴된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

왠 노반?

탑이 한 기 더 있었나?

 

 

벚꽃놀이

화개장터와 쌍계사는 상춘, 관광 인파로 발디딜 틈 없지만

 

예나지나

화개장터, 면사무소 옆

봉상사지 삼층석탑은 한적하기 그지 없다.

 

우리만이라도

가끔

눈길 한 번 주자.

 

잊혀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에...

 

2016.06.11

 

 

 

 



 

 

광양 농부님댁에서 매실주 곁들이며 사람의 정을 먹고, 새벽 일찍 중흥산성을 거쳐 하동읍내로 방향을 잡았다.재첩국(정말 맛 없었다)으로 요기를 하고 송림에서 유현을 만날 시간까지 소요하며 솔향기에 젖었다.

 

하동 송림은  영조 21년(1745)에 당시 도호부사 전천상이 방풍,방사용으로 심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풍, 방사 목적 외에도 우리의 마을 숲은 그 기능이 다양하다. 모진 세파를 건너온 선조들의 문화, 삶이 옹건히 녹아있는 마을 숲은 우리에게 조상의 지혜와 얼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공간이다.

동리의 대소사를  의논하던 참여와 자치의 공간, 정월보름 당산제를 올리때는  마을과,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던 놀이마당이며 마을의 사악한 기운이 접근 하는 것을 방지하는 1차 수호신이었던 숲은 숲이상의 상징성을 가진다.
 

또한 마을 숲은 마을에서 허약한 기운을 비보해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안동 하회, 경북 성주 성밖숲 처럼 숲은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데, 그 활용형식은 비보림과 염승림이 있다. 비보림은 풍수상의 흠, 즉 부족한 점을 북돋아주며, 염승이란 풍수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눌러서 제압하는 의미의 풍수용어로서 주로 마을숲을 조성하여 이러한 불길한 요소가 있는 방향을 가로막아 마을이 불길한 기운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다. 

 

전통이 사라지는 것처럼 마을숲도 이제는 자꾸만 사라진다. 숲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골 문화, 놀이 문화, 상생의 문화가 잊혀져 가는 현실이 가슴 아리다. 우리를 잊고, 정체성을 잃는 세태, 결국 우리의 정신의 황폐화를 초래하여 우리의 정신,민속은 우리땅에서 영원히 멸종(?)의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화개장터에 도착하니 네비도 보채고 불혹 넘은  중생도 보챈다. 배는 고프고 탑은 보이지 않고 민생고 해결을 위해 차를 주차할려는 순간 멀리 탑상륜이 보인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옆에 앉은 중생은 길가에 주차하라고 난리부루스지만 범칙금은 지가 내나? 안전하게 면사무소에 정확하게(?) 주차하고 우체국내에 위치한 탑리의 탑을 만난다.

 

 

마을에 흩어진 부재를 모아 복원하였으며  봉상사탑이라고도 부른다. 단층기단에는 탱주가 보이고 우주만 새겼다. 1층몸돌에는 괴임을 두었고 옥개받침은 4단이며,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다. 신라 하대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으로 답답해 보이지만 그래도 최근에 조성한 풍탁은 강바람 산바람과 더불어 웃고 울었겠지.

 

민초들의 애환과 곡절을 위무하면서...

 

 

 

1층 옥개석 받침을 4개로 조성하면서 몸돌위에 2개 받침은 별석으로 끼워 넣었다. 마땅한 식당을 찾지못해 허름한 "미소" 식당 간판을 보고 들어 갔는데 예상외로 먹을 만했다.

 

하긴 시장이 반찬이고 두 중생이 워낙에 먹성이 좋아 세상에 맛없는 먹거리가 있었을까마는...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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