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과천시

과천...연주암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6. 8. 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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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산행 목적이든, 답사 목적이든 대구에서 등정 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 관악산 삼막사,2015년 봉천동마애미륵보살좌상을 뵈었지만 연주암, 연주대, 관악사지,남태령마애불은 인연 짖지 못했었다.마침 동호회에서 수도권 답사가 계획되어 있어, 하루전에 상경하여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금년들어 서울의 온도가 가장 높게 올라간 대서 폭염,설상가상으로 점심을 미쳐 준비하지 못했었고,관악사지에서 길을 잘못 들어 산길 왕복 600여미터를 헤매이었다.

이제 관악산의 몇몇 마애부도와의 만남은 언제일지 기약없지만 감모여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부과천청사역에서 과천항교로 도보 이동하여 등반 시작 후 1시간 30분만에 연주암에 도착하였다.

 

 

연주암戀主庵

연주戀主?을 그리워한다?

연주암은 신라 677년(문무왕 17) 의상대사가 현재 절터 너머 골짜기에 관악사로 창건했으며, 1396년(태조 4)에 이성계가 신축했다. 그러나 1411년(태종 11)에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뜻을 알고 유랑하다가 이곳 연주암에 머물게 되었는데, 암자에서 내려다 보니 왕궁이 바로 보여 옛 추억과 왕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 한 나머지 왕궁이 안 보이는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 연주암이란 이름은 이들 왕자의 마음을 생각해서 세인들이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패망한 고려 충신들이 고려가 멸망하자 관악산에 은신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머문 곳이 관악산 의상대였으며 여기서 멀리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 왕조, 즉 주군을 그리워했으므로 연주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웅전 불단

본존불은 소조여래이며 좌우 호분을 입힌 석조여래좌상과 보살좌상은 조선후기에 봉안된 불상이다.

연주암에는 1929년 많은 불화가 조성되어 현재는 불교중앙박물관, 용주사효행박물관 등으로 옮겨져 갓고 일부 탱화만 남아 있다.

 

 

무량수無量壽

완당阮堂. 김정희의 낙관이 보인다.

 

 

단층 기단의 삼층탑이다.

지대석(?)에는 복련을 새겼고 3단의 괴임을 두었다. 4매 판석으로  결구한 기단면석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다. 기단 갑석에는 부연을 표현하여고 상부에 3단 괴임을 두었으며 맨위의 괴임은 별석 느낌이다. 탑신에도 양우주를 새겼다. 옥개석 물매는 깊고 상부에 2단의 괴임을 받쳤고, 절수구를 새긴 옥개석 받침은 위로부터 3*3*4이다. 상륜에는 노반, 앙화, 보주가 남아 있다. 고려 중기 이전 탑 아닐까?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 효령대군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계승한 후 이곳에 머무르며 수도할 때, 효령대군이 세운 탑이라는 달빛에 젖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대석(?).복련과 괴임

밑을 파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단갑석.초층 탑신

 

 

절수구

3*3*4의 옥개석 층급받침

 

 

노반.앙화.보주

 

 

 

 

 

땀으로 범벅이된 몸

마음은 깨운 하기 그지 없었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참. 인간적인 중생 아닌가?

 

201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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