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마!! 드디어 영월 입성!!!! 진작부터 나를 제외한 전원이 도착했다고 아우성치는 넘들에게 큰소리로 폰을 날렸다. 사실 이번 경기.강원 답사의 목적은 서울에서 영월 김삿갓면으로 귀촌한 교교동기의 펜션 오픈 축하 모임 참석이었다. 겸사겸사 비지정 옛님을 뵙고,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법흥사에 들린 것이다. 글을 뒤져보니 2002년 법흥사를 마지막으로 들렸다. 물론 그 이전에도 두어차례 들렸지만 옛기억속의 풍광에서 크게 변화가 없어 보인다.
법흥사 홈페이지 소개 글.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위해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을 전수받았던 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澄曉折中)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여니 이것이 바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흥녕선원의 3개 석탑, 1기 수호석불좌상은 어디를 칭하는 것일까? 3개 석탑은 흥녕선원 이정표 역활을 했던 석탑을 칭한다.
제천 장락리 모전석탑...2008년
영월 주천 3층석탑...2010년
영월 무릉리 삼층석탑...2010년
영월 요선정 마애여래좌상...2010년
요선정 마애불을 그린 신경림님의 시를 참 좋아하며 자주 인용한다.
주천강가의 마애불...신경림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2002년 법흥사 글을 가져왔다. 대단한 배짱의 겁없는 톤의 글이다.
책 박물관, 한반도를 닮은 지형 표지판이 보이지만 법흥사 상원사 월정사를 들리려면 길을 재촉해야 한다.
영월징효국사부도 (寧越澄曉國師浮屠) 징효국사는 19세에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을 시작하여 효공왕 4년(901)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였으며 경문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아래윗변의 모서리를 약간 죽인 듯 처리하였는데, 앞 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안에 자물통 모양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높게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장식 위로, 공모양의 장식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으나, 두꺼운 지붕돌표현, 지붕돌의 높은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기단부
탑신
상륜부
징효국사 부도 옆. 조선후기 석종형 부도
당호가 마모되어 주인공 확인이 어렵다.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塔碑)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그 위에 용머리가 조각된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에 가깝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특히 발가락과 발톱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눈에 띈다. 반구형(半球形)에 가까운 등은 길쭉한 6각무늬로 채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비를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에는 네 마리의 용이 중심을 향해 마주보고 있다. 눈, 코, 입은 사실적으로 새겼으나 몸에 표현된 비늘은 약하게 새겨져 형식에 그치고 있다.
귀부
이수
중정 한쪽에도 비신과 이수가 결실된 귀부가 있다.
적멸보궁 가는 길
적멸보궁.
진신사리는 어디에... ()()()
법흥사 석분石墳 바깥부분은 낮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리 높지 않은 봉토를 이루고 있다. 내부 돌방의 벽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가려서 10단을 쌓았는데 6단까지는 수직이고 7단부터는 각을 줄여 쌓았다. 천장은 넓고 평평한 1매의 뚜껑돌로 덮어 놓아 내부전체가 거의 원형을 이루는 있다. 석분 뒷쪽에 돌로된 관이 있어서 이름 높은 스님의 사리 또는 유골을 모시던 곳일 수도 있으나, 기록에는 승려가 수도하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법흥사 홈페이지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는 장소로 소개하고 있다.
적멸보궁 뒤편 부도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추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넓고 네모진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의 몸돌은 앞, 뒤 양면에 문짝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6면에는 1구씩의 신장상(神將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높게 달았다. 꼭대기에는 축소된 지붕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가 8각을 이룬 모습으로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작품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으로 예를 올렸다. 뒤늦게 전각에 들리신 보살님이 촛불 공양을 올린 후 땀에 젖은 내모습을 지켜보시더니 숨 돌리고 내려가라고 권한다. 하지만 40년 지기 친구 놈들이 보고잡아서 뛰어서 적멸보궁을 내려 왔다.
2016.06.24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문화재청 글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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