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원주시

원주...부천사 석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6. 7. 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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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사 일주문.

부천사 석불좌상에 대한 글은 지난해 우리카페 시나브로님의 답사기를 통해서 인지 하였다. 그 이전 부천사에 관해서는 2008년 김환대님이 문화유산자료실에 올린 원주 지역문화재에 석불에 대한 언급없이 사찰명이 소개되어 있었으며, 석불좌상에 대한 자료는 2007년 원주시에서 발간한 '원주불교와 유적' 책자에 실린 몇 줄의 설명이 유일한 것 같다.

 

 

부천사.

원주의 지명 유래와 원주불교유적에 소개된 사찰에 관한 기록을 발췌하였다.

"흥업면 사제리 308번지 무봉산 중턱 봉미 뒤에 있는 태고종 사찰이다. 신라말 경순왕 때(927-935) 백운선사가 창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50년 전에 권치원이라는 처사가 창건하여 살고 있는데 밤중에 현몽하기를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절에서 10발자국을 걸어가서 파보라고 하여 파 보았더니 한 쌍의 금불상과 청기와장이 나왔고 거기에는 "개국 4년 10월 창건"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청기와장에 "阜川(부천)"이란 글씨가 나와 절 이름을 부천사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1984년) 이영선 스님이 한국불교 태고종으로부터 주지 발령을 받고 불사를 하고 있다."

 

 

 

석불좌상

연지에 봉안되어 계신다.

훼손이 심한 상태이어서 상호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쉽지 않다.

뒷면에서 보면 머리는 나발, 원만형 상호는 도톰하다

불신은 미완성 불로 생각될 정도로 조각수법이 떨어지며, 특히 뒷면은 본래 석질을 전혀 다듬지 않은 모습이다.

결가부좌, 법의는 통견(?).왼손은 배꼽아래, 오른손은 항마촉지 인으로 존명은 석가여래좌상일 것 같다.

 

 

그런데

이불상 불두를 자세히 보자.

처음에는 불신에서 떨어져 나간 불두를 접한한 상태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불신의 목부분을 마치 괴임처럼 올린 모습이 보인다.

또한 절단된 불두가 너무도 정연한게 보인다.

다시 한 번 보자

어떤가?

부천사 석불좌상은 처음부터 불신과, 불두를 별도로 조성하여 불두를 불상에 끼운 석불로 봉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가 촉촉히 내리는 한적한 절집

잘 뵙고 간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석불은 1970년 대웅전 불사중에 발견된 2분 중에 한 분이며 한 분은 판부면 운향사에 모셔져 있다고 말씀하셨다.(다행히 운향사는 이번 답사 동선에 포함되어 있다.)

스님이 하신 말씀은 위에서 인용한 2007년 원주시에서 발간한 '원주불교유적'에도 등재되어 있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스님에게 기회가 되면 불상대좌를 바로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요사에서 나오면서 설명을 부탁하셨다.

 

 

좌측 석불좌상 대좌.

본래 대좌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하부에 연화문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런데, 대좌가 뒤집혀져 있어 연화문은 앙련이 아닌 복련이 되어 버렸다.

스님께서는 후일 기회가 되면 대좌를 바로 잡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나 하셨다.

재미 있는 것은

부천사에 설치된 안내문에 대웅전 불사중에 "석불 2기와 떡판"을 발견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좌를 떡판으로 표현한 듯 하다.

 

 

 

 

처사님.

저희들은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가지만 문화재는 까막눈 입니다.

좋은 인연 많이 지으십시요.

 

인사를 마치고 촘촘히 요사로 사라지는 비구니 스님의 말씀이 천근만근 무게로 짓누른 것은 왜일까?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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