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이천시

이천...산내리 소나무.권균묘

임병기(선과) 2016. 7. 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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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면 산내리 산33-1. 산내리 소나무

산내리는 우리가 익히 인지하고 있는 소고리 마애여래삼존과 이웃한 곳이었다.

소나무를 찾아왔더니, 신도비각과 묘소 아래에 위치하여 묘지 주인공과 관련있는 소나무로 보인다.

 

 

짐작한대로

우의정을 지낸 권균 묘역 조성시 신도비를 세우면서 심었다고 전한다. 권균(1464~1526)의 생몰년대를 고려하면 수령 500년이 되어가는 소나무이다. 이소나무를 중심으로 안동 권씨 묘역 좌우측에도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그루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나갔다.

일반적인 소나무, 도는 아래로 처지는 계열의 종류는 아닌 듯 하다.

또한

묘역으로 향한 가지가 더 길고 잎이 우거져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묘역의 좌향이 남향 아닌가?

 

 

 

 

안동 권씨 묘역?

소나무 바로 위에 권균의 묘역과 신도비각이 자리 하고 있어 잠시 묘역을 둘러 보았다.

 

권균(1464(세조 10)∼1526(중종 21)...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경(正卿), 호는 유연당(悠然堂). 할아버지는 미(彌)이고, 아버지는 현감 형무(逈武)이며, 어머니는 박윤문(朴允文)의 딸이다.

 

1486년(성종 17) 생원·진사가 되고, 148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를 지내면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연산군 때에 장령·사간·도승지를 역임하며 연산군을 잘 보필하였다 하여 금대(金帶)를 하사받는 등 신임이 두터웠다. 연산군의 실정이 심해지자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고, 영창군(永昌君)에 봉해졌다. 그 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1508년(중종 3) 형조판서를 지내고 좌찬성에 올랐다.

그러나 신진 사림의 진출과 함께 훈구파(勳舊派)로 지목되어, 연산군 때 아부, 순종하며 벼슬하였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그 뒤에도 계속된 탄핵으로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중종의 만류로 예조판서에 체직되었다. 15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사림파가 주동한 정국공신의 위훈삭제로 공신호가 삭제되었다.기묘사화로 다시 관직에 진출하여 좌찬성·이조판서·영경연사(領經筵事) 등을 거쳐 1523년(중종 19) 우의정을 역임하고, 영창부원군(永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엄격하고 재주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권균 신도비

귀부와 이수를 갖추었고 비신은 대리석 같다.

 

 

귀부는 약화된 모습으로 비신에 비해 크기가 왜소하다.

어?

귀부와 조화롭지 못한 팔각지대석에 눈길이 머문다.

 

답사 매니아라면 분명 스쳐가는 석조물이 있을 것이다.

에비던스가 없으니 머리속에 간직하고 판단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 두겠다.

 

 

대리석비신,이수

 

 

문무인석,석등, 망주석

 

 

상석,동자석,봉로석

 

 

 

가끔 받는 질문중에

나무도 찾아 다니는지 묻는 사람이 있다.

답사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문화재를 망라하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석조물 위주 특히 불교문화재가 주요 관심사이다.

하지만

동선 지근의 나무는 가능한 들릴려고 동선 수립시 포함시키는 편이다.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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