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하동군

하동...지리산 신흥사지 부도

임병기(선과) 2016. 6. 3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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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와 의신사로 나누어지는 3거리 신흥마을에서 칠불사 방향 바위에 삼신동三神洞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삼신은 의신골에 있었던  영신사靈神寺,  신사義神寺, 신흥사神興寺를 칭하며, 화개동의 삼신사라 불렀다. 주변의 풍광이 뛰어나 예로 부터 고운 선생 이래로 시인 묵객, 선사들의 유람처로 자리 잡았고, 조선 후기 많은 유학자들의 지리산 산행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절집이었다.

 

 

왕성초교가 자리하고 있는 신흥사지는 풍수지리의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의 형국으로, 서산대사는 ‘하늘이 숨겨둔 아름다운 곳, 신선의 땅’이라 극찬하였으며, 많은 선승들이 머물렀다고 전한다. 하지만 창건과 폐사에 관한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사지에 등재된 내용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창건되어 19세기까지 향화를 피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신흥사지 암굴(岩窟)에서 통일신라시대 철조여래좌상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또한 사지에서 발견된 대석불大石佛을 1915년 창덕궁 비원으로 옮겨갔다고 하며, 1970년대 탑신에 2행의 세로로 ‘만력십년삼월일판 조계종사노한당입탑(萬曆十年三月日判 曹溪宗師盧閑堂立塔)’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노한당(盧閑堂) 부도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석종형 부도 1기가 전해지고 있다.

 

문헌에 신흥사는神興寺’, ‘神凝寺등으로 확인되며 사세에 따라新興庵으로도 불렸다. 최초의 기록은 고려중기 문인 李仁老 신흥사를 찾아갔다는 내용이 『破閑集』에 있으며, 15~16세기에는 金宗直, 李陸, 金馹孫, 曺植, 柳夢寅 등의 문인들이 신흥사를 방문하여 남긴 글이 있다. 또한 서산대사는 신흥사에 머물며 「頭流山 新興寺 凌波閣記」를 남겼다. 成汝信의 『晉陽誌』와浮査集』에는 신흥사가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어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李柱大冥菴集』에는 사명이신흥암으로 변화되어 있어 18세기에는 사세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宋秉璿淵齋集』에 신흥사의 옛터를 확인하였다는 글로 보아 신흥사는 19세기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반출된 철불과 석불, 팔각원당형 부도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신흥사 사세의 일면을 엿 볼 수 있는 서산대사의 능파각기를 보자

능파각은 현재 왕정초교 앞 계류에 조성된 전각으로 추측되며, 곡성 태안사 능파각이 오버랩 된다.

또한 기문으로 미루어 신흥사의 진입동선은 오늘날 과 달리 계류 건너편에서 능파각을 통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서산대사 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1564년)...지리산 99골 지리99에서 발췌


산에 사는 스님이 이곳에 이르면 선정에 살고
소객이 이르면 시에 고민하고
도사가 이르면 뼈를 바꾸지 않고 바로 가벼운 바람을 탄다.

그리하여 마음을 먼 하늘에 붙이고 몸을 뜬 구름에 맡긴 채
지팡이를 집고 나와서 그 사이에서 한가로이 읊조리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며
혹은 기대어 눕기도 하면서 늙어가는 줄 모른다.

또한 능파각은 매우 높아서 백척 위에 올라 별을 따는 정취가 있고
눈이 천리에 트여 하늘에 오르는 정취가 있다.

외로운 따오기와 떨어지는 노을은 가지런히 나는 것 같고
세 산은 반쯤 푸른 하늘 밖에 떨어져 있는 정취가 있고
맑은 시내와 꽃다운 물은 학이 노니는 것 같고

물에 떨어진 꽃이 흘러가는 모습은 무릉도원의 정취가 있고
가을엔 비단에 수 놓은 듯한 단풍의 아름다움이 있고
좋은 손님을 맞고 보내는 기쁨은 그지 없다.


서산대사에 앞서 탁영의 글도 보인다


1489년 4월14일~4월 28일(성종 20년)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 1464~1498)이 정여창(鄭汝昌), 임정숙(林貞叔)과 두류산을 여행하고 기록한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에 기록된 신흥사 풍광이다. 글 중에는 범패 시연을 묘사하는 내용도 있어 흥미롭다.


4월25일

二十五日癸丑.

及到神興寺.

신흥사神興寺에 이르렀다.


寺前澄潭盤石. 可以永夕.

절 앞에 맑은 못과 널찍한 바위가 있었는데 저녁 내내 놀 만하였다.  


寺臨澗而構. 最勝於諸刹. 遊人足以忘歸矣.

이 절은 시냇가에 세워져서 여러 사찰 중에서 가장 빼어나 유람 온 사람이 돌아가기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昏投寺中. 云. 此作法道場.

어두워질 무렵 절 안으로 들어가니, 이 절은 불법을 닦는 도량이라 하였다.  


鍾鼓喧聒. 人物鬧擾. 茫然若有所失.

종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고 사람들이 떠들썩하여 멍하니 정신을 잃을 듯 하였다. 


是日約行四十餘里. 山路險阨.

이 날 약 40여 리를 걸었는데 산길이 험준하였다.  


寺僧皆以爲健步健步云.

절의 승려들이 모두 말하기를, “잘 걸으십니다. 잘 걸으십니다.”라고 하였다.  


余平日. 見郵童走卒. 行及奔馬. 自以爲事之甚難.

나는 평소 역졸이나 심부름꾼이 달리는 말을 뒤좇아가는 것을 보고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比山行初若重步. 爲日多而兩脚漸覺軒擧.

이번 산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발걸음이 무거운 듯 했는데 날이 갈수록 두 다리는 점점 가벼워짐을 느꼈다.


始知凡事在乎習成耳.

그제서야 모든 일이 습성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二十六日甲寅.

26일, 갑인일.  


余每拄雙筇而行.始舍筇騎馬.

나는 항상 쌍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이 날에서야 지팡이를 버리고 말을 탔다.  


有雲中興,了長老二僧. 相送出洞.

운중흥雲中興․요장로了長老 두 승려가 동구 밖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신흥사에 대한 옛사람들의 글 몇 편을 보자.

고려조의 이인로는 청학동을 들릴 예정이었으나 찾지 못하고 신흥사에 묵었다는 내용이 있다.

즉 1170년대에는 신흥사가 운영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170년대 이인로 파한집

(元)나라 영내의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봉오리와 꽃받침처럼 잘 어우러진 봉우리와 골짜기가 면면(綿綿)이 이어지어 내려오다, 대방군(帶方郡에 이르러서 수천 리(里)에 서리어 맺히었다. 이 산 주위에 10여 고을이 있는데, 한 달 이상 걸려야 그 주위를 다 구경할 수 있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이 산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다. 구부리고 엎드려 몇 리쯤 가면 넓게 트인 동네가 나타나는데, 사방이 모두 좋은 농토(農土)다. 토질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기에 알맞다. 


푸른 두루미[靑鶴]만이 그 안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청학동이라고 이름하였다.대체로 옛날 세상을 피한 사람들이 살던 곳인데, 무너진 담장과 집터가 아직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예전에 나의 집안의 당형 최상국(崔相國)2)과 영원히 함께 속세(俗世)를 떠날 뜻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이 곳을 찾기로 약속하였다. 살림살이를 담은 대고리짝을 두세 마리 소에 싣고 들어가면 속세와 멀어질 수 있으리라 여겼다. 


드디어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서 묵었다

지나는 곳마다 선경 아닌 곳이 없었으며, 천만 봉우리와 골짜기가 다투듯 빼어나고 다투어 흘러내렸다.

대울타리 안의 초가집이 복사꽃, 살구꽃에 보일 듯 말 듯하니, 자못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청학동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바위에 남기고 돌아왔다 .


頭流山逈暮雲低      두류산은 아득하고 저녁 구름 낮게 깔려,

萬壑千巖似會稽      천만 봉우리와 골짜기 회계산과 같네.  


杖策欲尋靑鶴洞      지팡이를 짚고서 청학동을 찾아가니,

隔林空聽白猿啼      숲 속에선 부질없이 잔나비 울음소리뿐.  


樓臺縹緲三山遠      누대(樓臺)에선 삼신산이 아득히 멀리 있고,    

苔蘚依俙四字題      이끼 낀 바위에는 네 글자가 희미하네.


試問仙源何處是      묻노니, 신선이 사는 곳 그 어디메인가?

落花流水使人迷      꽃잎 떠오는 개울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남명 조식 선생이 지리산 유람기(1558년 4월10일~4월 25일)에도 신흥사가 등장한다.

즉 이시기에도 신흥사는 향화를 피우고 있었다.


신응사에서 글을 읽다讀書神凝寺...남명 조식

요초춘산녹만위(瑤草春山綠滿圍) 아름다운 풀 봄 산에 가득한데
위련계옥좌래지(爲憐溪玉坐來遲) 시냇물 좋아 늦게까지 앉았다
생세불능무세루(生世不能無世累) 세상 사는 데 번거로운 일 없지 않아
수운환부수운귀(水雲還付水雲歸) 물과 구름을 물과 구름에 되돌려 보낸다


 

신흥사지 부도

범왕리 왕성초교 뒤편 대밭에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 홀로히 신흥사터 지킴이로 남아 있다.


 

방형 지대석,탑신과 연봉형 보주가 일체형이다.

탑신 하대를 한 줄 돌대로 구획하고 탑신에는 작례를 보지 모산 기하학 문양을 커튼처럼 선각으로 표시하였다.

탑신에는 불비형 패를 조성하고 주인공의 당호를 새겼지만 육안으로 구분이 힘들다.

 

 

 

 


여름날의 폐사지

부도와 개망초의 숨박꼭질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 왔고 스쳐 지날 것이다.


 

범왕리 푸조나무

부도와 더불어 신흥사지의 터줏대감으로 왕성초교 정문앞에 있다.

수령 500년이상으로 추정되며 마을 당산으로 보인다.

이 나무는 고운 최치원이 신흥사로 들어갈 때 꽂아 두었던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자랐다는 달빛에 물든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운 최치원은  나무가 살아 있으면 자기도 살아 있고 나무가 죽으면 자기도 죽을 것이라 했다고한다.


이런 이야기가 위의 탁영의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선생은 "상고해 볼 가치도 없지만 기록해둔다"라고 하였다.


二十六日甲寅.

26일, 갑인일.  


余每拄雙筇而行.始舍筇騎馬.

나는 항상 쌍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이 날에서야 지팡이를 버리고 말을 탔다.  


有雲中興,了長老二僧. 相送出洞.

운중흥雲中興․요장로了長老 두 승려가 동구 밖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至一略彴. 了長老云. 近世有退隱師者住神興. 一日語其徒曰. 有客至. 當淨掃除以候.

한 외나무다리에 이르러 요장로가 말하기를, “근세에 퇴은退隱 선사가 신흥사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문도에게 말하기를, ‘손님이 오실 것이니 깨끗이 소제하고 기다리거라.’라고 하였습니다.


俄而有一人騎白駒. 結藤蘿爲鞅轡. 疾行而來. 履獨木如平地. 衆皆駭之.

잠시 후 한 사람이 등나무 덩쿨을 엮어 걸이와 고삐를 한 흰 말을 타고 빠르게 건너오는데, 외나무다리 건너는 것을 평지와 같이 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至寺迎入一室. 淸夜共話. 不可聽記.

절에 도착하자 스님이 방으로 맞아들여 밤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슨 말인지 듣고 기억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明朝辭去. 有姜家蒼頭者. 學書於寺. 疑其異客. 執鞚以奉之.

다음날 아침 작별하고 떠나려하니, 절에서 공부하고 있던 강씨姜氏 성姓을 가진 젊은이가 그 특이한 손님을 기이하게 여겨 말의 재갈을 잡고 그를 따라가려 하였습니다.  


其人以鞭揮去. 袖落一卷文字. 蒼頭急取之.

그 사람이 채찍을 휘두르며 떠나는 바람에 소매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는데 젊은이가 황급히 그 책을 주웠습니다.


其人曰. 誤被塵隷攬取.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내 잘못으로 속세의 하찮은 사람이 취하여 보도록 하였구나.


珍重愼藏. 勿以示世.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고 삼가하여 감춰두고 세상에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言訖急行. 復由略彴而逝.

말을 마치자 급히 떠나 다시 외나무다리를 지나갔습니다.  


姜蒼頭者. 今白頭猶居晉陽之境. 人有知者. 求觀不與.

젊은이는 지금 백발 노인이지만 진양의 경계에 살고 있으면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 책을 보여달라고 해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蓋其人. 崔孤雲不死在靑鶴洞云.

그 사람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인데, 죽지 않고 청학동靑鶴洞에 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其說雖無稽而亦可記也.

그 말은 비록 상고해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기록해둘 만하다.


 

 

 

 

노익장을 뽐내며 신흥사지를 지키고 있는 푸조나무

고운 선생도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서 신선으로 계시지 않겠는가?


2016.06.11

 

기실

부도만 뵙고 온 신흥사지 글은 미완 아니 부끄러운 답사기가 되었다.

사전에 조사하였던 고운선생의 유적과 바위글씨 등을 건너 뛰고 돌아온 까닭에...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다른 자료 검색중에

하동 지역 지리산 자락의  3기 부도 소재를 파악하였다.

7월중

기쁜마음으로

신흥사지 앞길을 경유하여 놓친 옛님과 새롭게 다가온 부도 1기를 뵙고, 다른 2기도 찾을 생각이다.

근데

1기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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