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삼천사 마애여래입상

임병기(선과) 2016. 6. 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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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답사.

진관동 석불입상 답사 후 구파발역에서 연신내역으로 되돌아 나와 3번 출구에서 7211번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삼천사 입구에 하차 하여 도보 15분 정도 소요된다. 예상보다 번잡하지 않은 사하촌을 지나면 군사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1968년 청와대를 공격한 김신조 일당 침투 이후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었다고 한다.

 

 

삼천사 계곡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삼천사를 경유 승가사로 하산하는 산행 코스 또는 역코스로 답사 동선이 있다.

이런 답사이어야만 삼천사 마애불,심천사지 대지국사 탑비 이수, 석등 옥개석,탑재, 석등재를 만날 수 있는 올바른 동선이다.

하지만

언강생심 지방에서 올라온 답사객에게는 꿈에 불과하다.

 

 

운포 정병철 雲浦 丁炳哲 선생의 글씨

전남 순천 출신으로 사찰 편액 작품을 많이 남긴 분이다.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 대사가 개산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북한지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마애여래불에서 바라 본 계곡

현재 마애불의 예배공간이 처음에는 협소하여 계곡을 복개하여 넓은 참배공간을 마련한 것을 알 수 있다.

 

 

1988년 봉안된 석종형 진신사리부도와 마애여래불

 

 

 

 

삼천사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은 삼천사 경내 대웅전의 위쪽 병풍바위에 나투시어 계신다.

불신 위의 뻗어나온 바위가 마치 보개처럼 보인다.

불상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 구멍은 마애불 앞에 목조가구의 흔적이다.

고려시대에 봉안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상호와 상반신은  돋을 새김,  하반신과 광배,대좌는 볼록한 선각으로 새겼다.

두광은 겹동선이며,소발,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다.
살짝 뜬 눈은 눈꼬리가 귀 가까이 닿았으며, 두툼한 코,작은 백호공을 표현하였다.목에는 삼도를 두었다.

신광은 한 줄로 새겼다. 법의는 통견이며, 넓게 'U'자 모양으로 트인가슴에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비스듬히 걸친 내의와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내려뜨려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쪽으로 무엇을 가볍게 받들어 쥔 수인이다.

대좌는  앙련의 연화좌이며, 꽃잎은 단판 중엽이고, 꽃잎 사이에는 간엽이 표현되어 있다.

 

 

 

 

 

 

병풍바위 우측 하단의 명문.

일붕선사좌선대一鵬坐禪坮

 

향공양대에 가려 전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갈 길 바쁜  발길

마음 한켠에는 머물고픈 마음이 스믈스믈 자리 잡는다.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주천강가 요선정 마애불처럼

별빛 내리면 바위속에서 걸어 나와 속세 순례를 떠나시지는 않을런지...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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