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산청군

산청...보암사지(보문암지) 부도전

임병기(선과) 2016. 6. 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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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암지(보암사지).

지리산 자락의 사지는 창건과 폐사가 전하지 않으며 문화재청 사지총람에 번지 표기 없이 시천면 신천리에 위치해 있고  부도가 있다는 몇 줄 기술된 내용이 전부이었다.

 

또한

많은 동호인들이 보문암지를 찾았지만 한 팀을 제외 하고는 모두 실패했다는 글과, 사진이 넷상에 올려져 있다. 

산악회, 지리산 폐사지 탐험, 조선시대 선비들의 산행 루트 탐방 등등의 동호인들이 보문암을 찾는 근거 자료인 조선시대 기행문을 살펴보자.

 

 

1463년 이륙. 지리산기  

 

"살천 마을에서 20여 리를 가면 보암사(普庵寺)가 있는데, 그 살천 마을 이내는 내산(內山)이라 이르고, 이외는 외산(外山)이

 

라고 한다. 보암사(普庵寺)에서 곧장 올라 빨리 가면 보암사(普庵寺)에서 곧장 올라 빨리 가면 하루 반에 천왕봉에 당도할 수

 

있다."

 

 

 

 

1487년 남효온. 지리산 일과

1487년 9월 27~ 10월 13일. 승려 의문 및 종 5인

"산길 40리를 걸어 보암(普庵)에 닿았다. 암자는 감나무∙대나무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지승 도순(道淳)이 감을 따서 나에게 권하였다. 도순은 문자를 배우지 않고 도를 닦아 불법을 깨친 것이 정밀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나밖에는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불경을 외거나 염불하는 것을 그만두고 늘 음경(陰莖)을 드러내놓고 생활하였다. 그는 여러 가지 계책으로 승도(僧徒)를 모아 선림(禪林)의 종주(宗主)가 되려고 하는 자였다. 내가 처음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약간 마음이 맞았으나, 대화를 거듭할수록 허무맹랑한 말을 마구 하면서 윤회설을 고집하였다. 밤이 깊어지자 나에게 편히 자라고 축원하는데 그 말씨가 매우 공손하였다."

 

주지승 도순 스님은 괴짜 선승이었던 것 같다. 음경을 드러내 놓고 생활하였다니...

여기까지 산행기에는 보암사普庵寺로 나오지만 이후의 산행기에는 보문암으로 등재되어 있다.

근거는 없지만 임란, 정유애란의 전화를 입고 폐사후 다시 중건한 것으로 추측된다.

 

 

1719년 신명구. 유두류일록(遊頭流日錄)

"오후에 보문암에 머물렀다. 암자는 허중산(虛中山)의 산허리에 있고, 중수한 지 오래 되지 않아서, 요사(寮舍), 횡루(橫樓)는 나뉘어 뛰어오름을 다투고 있으니, 구부러진 난간에 기대어 있어서, 마치 속세를 벗어날 생각이 있는 듯했다. 사방의 산들을 묶어 세워 하늘에 꽂아 놓은 듯해서 멀리서 살필 수 없었다. 오직 묵계(墨溪) 뒤에 일지산(一支山)이 남쪽의 구름에 은은히 비칠 뿐이었다. 

 

저녁에는 취일노사(就逸老師)의 조그마한 요사에서 머물렀다. 밤중에 갑자기 깨닫고 창문을 열고 보니, 하늘이 맑고 달이 비치어 빛을 내고 있고, 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들이 대낮처럼 밝았다. 문득 영대(靈臺) 가운데에 한 점의 티끌도 없었음을 깨달았고, 야간까지도 정신이 상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면서, 어제 하늘에 구름이 진 윤곽이 형산(衡山)에 구름이 걷힌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오늘밤 맑게 갠 후의 오르는 모습은 하늘기둥에서 달을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혹은 하느님이 나를 시켜 경치를 맑게 하고, 십 년의 때가 묻은 가슴을 씻으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인하여 늙은 스님(老師)과 더불어 산을 유람하면서 뛰어난 경치를 이야기하였고, 4운 1수를 짓기에 이르렀다"

 

 

이즈음의 보문암에는 취일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으며 사세가 궁곤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1724년 정식. 두류록(頭流錄)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 산으로 들어가니, 산길이 아주 험하였는데, 바위 아니면 물이었다. 맑은 샘물은 눈과 같이 하얗고 단풍은 절벽 여기저기에 들어 있었다. 보다가 걷다가 하니, 다리가 아픈 줄도 정신이 피곤한 줄도 알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마음에 얻는 것은 무한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붓이나 먹으로 형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옆에 사람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날은 보문암(普門菴)에서 잤는데, 이 암자는 겹겹의 산속에 있었으므로 좌우로 둘러 싸여 있고 소나무 박달나무가 해를 가려 매우 그윽하고 깊숙했고, 넓게 트인 곳이 적었다.

 

1775년 유문용

"을미년(乙未年, 1775년, 영조 51년) 음력 8월 16일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천왕봉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세심정(洗心亭)에 모였는데, 모두 25명이었다. 약목(若木)에서 오신 신씨(申氏) 어른이 최고령자로 71세였다. 경의당(敬義堂) 에서 잤다.
17일에 사당에 배알(拜謁)하고 마침내 짐을 꾸리고 말을 줄지어 길을 나서서 약 20리를 가다가 진주담(眞珠潭) 가에서 쉬며 김삼함(金三緘) 유지(遺址)를 살펴보았다. 보문암(普門庵) 승려를 불러다가 길 안내를 시켰고, 저녁에 동당동촌(東堂東村)에서 잤다.

 

이 분 들은 덕천서원에서 집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자료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다음에서 검색한 자료 입니다.**

 

법화사(해탈선원)

 

많은 분들이 실패한 보문암지 탐방

지리산에 문외한인 내가 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검색에서 찾은 "강호원의 山이야기" 블로그에 법화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법화사는 지난 주에 다녀온 내대리사지 가는 방향에서 중산리 방향 도로변에 이정표가 서 있고, 내비에서도 검색되어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법화사.지리산대로 1033번길 67-21

그런데 말이다.

나의 기대와 달리 스님이 출타중인 듯 달리 적막강산이었다.

스님에게 문의하면 쉽게 찾으리라는 나의 계산이 한 참 빗나가버렸으니.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불현듯 위 블로그에 실린 양수 발전소 사진이 스쳐 갔다.

 

 

그분들이 부도전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과 비슷한 풍광이다.

무식하게 용기를 내어 찾아 보기로 작정했다.

첫번째 길은 법화사 직전에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계곡옆으로 난 소로를 이용하는 것이 올바른 루트로 생각되었지만 헤쳐나가기 용이하지 않을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 중에 법당 뒤편으로 임도가 보였다.

 

즉, 법당뒤의 임도로 올라가면서 양수발전소가 보이는 우측 개을 건너 숲속을 유심히 관찰하면 부도전이 있을 것이라는 타고난 옵티미스트의 기질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결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법화사 뒤편 임도 500여미터 진행

좌측에 작은 고사리가 무리지어 있고 우측변에 임도 개설하면서 캐낸 바위 2개가 보인다.

 

나는

이곳을 통과하여 위쪽에서 건너편 숲속의 부도 보주를 발견하고 다시 내려왔다.

 

 

2개 바위

뒤편으로 길 아닌 길로 내려가 개울을 건너면 바로 보암사지이다.

 

 

찾았다는 안도감 보다

무모한 결정에 대한 후회가  먼저 전신을 휘감았다.

 

지리산 자락에서

어쩌자고 대책없이 이런 용기를 내었는지!!!

 

 

층단을 이룬 사지는 가람터 보다는 부도만 없다면 화전민들의 주거지 처럼 보였다.

 

 

석축도 남아 있다.

 

 

부도전

다른 곳에서 옮겨 온 듯한 조선후기에 봉안된 5기 석종형 부도가 봄볕을 즐기고 있다.


유생들의 산행기에서 언급한 괴짜선승 도순스님과 취일선사의 부도는 어느 부도인지.

 

 

보문당普門堂

당호가 너무 낮은 위치에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높은 대좌가 땅속에 매몰 되어 있지는 않을까?

 

탑신 상부에 복련을 두고  2단의 높은 괴임위에 보주를 표현하였다.

 

 

 

 

 

백미당 白眉堂

뛰어난 선승의 상징?

아니면 흰 눈썹을 휘날리던 선승이었을까?

 

음경을 드러내놓고 생활하신 도순스님 부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뭐지?

 

 

  

 

 

유지당 兪指堂

보주가 약간 높은 것 외에는 보문당 스님 부도와 흡사하다.

 

 

 

 

 

0眞당

탑비까지 있으나 테크닉과 디카의 한계로 당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대좌는 매몰되었고

연속적으로 피어나는 연꽃 속에 보주를 표현하였다.

 

 

탑비


 

 

 

 

청련당 靑蓮堂

상륜이 결실되고 하부는 매몰되었으며 이끼로 덮여 있다.

 

 

靑蓮청련

나는

왜 이부도 앞에서 조동탁의 승무에 등장하는 파르라니 깍은 머리의 비구니스님을 떠올렸을까?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뒤돌아 나오는 길

나지막히 한 분 한분  스님의 당호를 불러주었다.

훗날

잊혀지지 않고

누군가가 다시 불러주기를 염원하면서,


보문당 시님

백미당 시님

유지당 시님

청련당 시님

그리고

당호를 알 수 없는 스님 부도 앞에서는

길게

시~~~님예!!!


()()()

 

 

니르반하에 드신 부도전의 스님도

이 산사에서

뻐꾸기 울음소리 벗 삼아 녹음 짙은날을 나셨을텐데.

 

우리는...

 

20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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