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산청군

산청...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6. 5. 1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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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

아이들과 들린 후의 나의 글에는...

 

"스님도 한 분 뵈이지 않고 인적이 끊긴 내원사 비로자나불 앞에서 전각을 넘나드는 말벌 날개짓에 아이는 나의 소매를 잡아끈다. 석탑의 주종을 이루는 화강암 재질이 아닌 검붉은 색을 띠고 있는 모서리 기둥, 받침기둥, 4개의 지붕주름이 남은 신라 석탑 주위의 흩어진 석물로 보아 큰 규모의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누구 한 사람 눈길 주지 않는 적막강산의 고요가 뜰 가득히 쌓여 있다." 

 

2016년 봄

비로자나불이 국보로 승격된 후 많은 사찰 순례단과 답사객이 줄을 잇고 있다.

이제 한적하고, 구애 받지 않던 절집의 한 곳으로 간직했던 내원사에 대한 나의 욕심도 버려야 하겠다.

 

 

지리산  동쪽 자락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한 내원사는  657년(신라 태종 무열왕 4년)무염無染국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시에는 덕산사이었으나  이후 화재로 소실되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1959년 폐사지에 새로이 내원사가 창건되었다고 전해온다.

 

 

비로전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 비로자나불상
마멸로 인해 세부표현은 분명하지 않으나 당당한 모습이다. 나발, 육계는 높고, 상호는 마모가 심하지만 볼륨감이 있다.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 법의는 통견, 수인은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이다.


대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납석 사리호舍利壺에 명문을 통해 766년(혜공왕 2)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불상이다.

 

 

 

대좌는 상대,중대,하대로 루어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복련을 새겼다.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  앙련을 표현하였다.

 

 

 

일부가 결실된 광배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를 표현하였다.

 

 

 

삼층석탑

하기단에는 저석과 면석이 같은 돌 4이며 높은 편이뎌, 면에는 양 우주와 두 개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에는 2개 괴임을 두었고 상기단 면석에는 양우주와 1개 탱주를 표현하였다.상기단 갑석 상부에는 별석 2단의 괴임을 드었으며 부연은 깊게 새겼다. 탑신과 옥개석은 한개의 돌로 조성되었다. 옥개석 받침은 4단, 물매는 얕고 추녀에는 반전이 보인다. 옥개석 상면에 2단의 받침을 조출하였고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통일신라시대 하대의 작품으로 전한다.

 

 

기단부

 

 

 

탑신과 옥개석

 

 

 

대웅전

하이라이를 받는 비로자나불을 조모님으로 모시는 듯 대웅전 부처님은 효부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변한 것은 간사한 나의 마음일뿐

 

예나지금이나

서두르지 않고 흘러 내린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지 않았던가.

 

20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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