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산청군

산청...척지산 율곡사

임병기(선과) 2016. 5. 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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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사.

옛글을 찾아보니 2001년, 2002년에 들린 것 같다.

당시 다녀온 글을 옮겨왔다.

 

요즘의 지자체의 행태에 대해서는 지역패권주의, 님비현상, 이권개입, 지나친 전시행정 등으로 말이 많지만,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은 지자체에 감사패를 주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예전에는 제대로 된 이정표는 물론, 문화재 앞에 반듯한 안내문 하나 없었기에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길을 헤매고 빙빙 돌기가 비일비재 했었지만, 요즘은 그런 일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동리의 촌로들에게 약사여래불, 마애불, 절터 등을 물으면 곁에 있는 데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그냥 돌에 인격을 부여해서 미륵부처님이라고 불렀다. 돌부처에 대한 경외감도 있겠지만 억눌린 삶, 힘든 사바에서 미래의 메시아인 미륵하생을 염원하였기에 입에서 입으로 그렇게 불러 왔을 것이다.

 

아무튼 이정표를 따라 일사천리로 율곡사로 갔지만 입구 마을에서 가는 길을 알 수 없어 당산 나무 아래 계시는 어르신께 다가가니 묻기도 전에 알아 차리 시고 율곡사 가는 산길을 일러주신다.

 

옛 율곡사 대웅전...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율곡사는 대웅전, 특히 대웅전의 창살문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학이 비상하는 자태인 팔작지붕, 칸 사이에 2개의 간포가 갖추어진 다포식 공포이며, 착시 현상에 의한  귀처짐 캄프라쥐 용도의 귀솟음을 위해 처마 끝에 활주가 받치고 있고 내부는 우물천장에 가장 화려한 비단단청이 가득하여 장엄한 불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주전각이다. 강화도 전등사의 나녀 설화처럼 예의 금어(단청장이)와 이를 훔쳐보는 사람사이의 일로 금어는 새가되어 날아갔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 온다.

 

율곡사는 누가 뭐라 해도 대웅전 창살문이 압권이다. 중앙 어칸은 사분합문에 장엄한 불세계와, 꽃 공양을 의미하는 화려한 꽃 창살문 양쪽 협칸의 삼분합문은 네 개로 구분하여 가장 위로부터 장방형의 빗살문 (민가의 가옥처럼 빗살문은 잡귀 막이를 의미), 팔각의 빗살문(모서리에 卍자 문양), 정방형의 띠살문의 불발기 창과, 문벽선 하부에는 2중의 궁판이 구성되어 있어 보고 있노라면 말문이 막히고 입을 다물지 못하며 전율마저 느껴진다.

 

고건축에 조예가 깊은 사람과 동행한다면 안목을 높일 수 있고 하루로는 모자랄 것 같은 산속의 한적하고 꽃 창살문에 흠뻑 젖고 싶은 절집이다.

 

2001. 봄 마눌, 아이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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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근처에 갔다가 창살문이 보고 접어 들렸더니 절집은 간데없고 불사 때문에 대웅전은 철제 장막에 감금되어 있더이다. 혹 꽃 창살문이 보고 싶은 분은 내년 여름 이 후에 방문하시길...

 

 

햇수로 15년만에 다시 찾은 율곡사.

옛모습은 찾을 길 없지만 추억은 남아 있지 않은가?

첫사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첫사랑을 나누던 그시절이 그립다는 말처럼...

 

율곡사는 신등면 율현리 지리산 동쪽 자락에 있는 절로, 651(신라 진덕여왕 5)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930(경순왕 4)년에 감악조사가 중창하였다. 고려시대의 연혁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대웅전 기단 앞에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되는당시의 유물로 생각되는 석조팔각불대좌石造八角佛臺座 남아 있다. 조선 성종 때 간행된『동국여지승람』단성현조에 율곡사재척지산栗谷寺 在尺旨山 기록이 전한다.

 

 

 

 

목조아미타삼존불...출처/하늘사랑님

 

삼배를 올리고 대웅전 내부를 살피고 있는 중에 스님이 법당으로 들어 오셨다.

대웅전 앞. 석재, 삼존불 등에 대해 말씀을 하시며 어디서 왔으며,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

 

우리님들께 여쭈어 봅시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요?

 

사진 촬영을 원치 않으신 스님이라고 알려져 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사진 촬영 요청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기 대문이다.

 

아미타삼존에 대하여 문화재청 설명문에서 발췌했다.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본존인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머리는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고, 나발의 표현이 촘촘한 편이다.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턱선을 비교적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삼도를 뚜렷이 표현하였다. 법의는 통견으로 두꺼운 대의를 입었고, 가슴 아래로 수평의 군의자락이 보인다. 옷주름은 어깨와 소매, 반가부좌한 발목 아래를 중심으로 간략히 표현되었고 그 흐름이 불신을 따라 매우 자연스럽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웠고 제1지와 제3지를 맞대고 있는데 그 사이에 작은 구슬을 쥐고 있다. 오른팔은 구부려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채 어깨부위까지 들어올린 상태이고, 왼손은 반가부좌한 오른발 위에 얹고 있다.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자세·손모양·얼굴·옷차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본존인 아미타여래상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두 보살상은 장신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으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얼굴 표현은 아미타여래상과 같고, 다만 본존불에 비해 조금 길고 갸름한 편이다. 옷차림은 대체적으로 본존불과 같으나, 관음보살상은 오른쪽 어깨에 반쯤 걸친 소위 반단형식이며, 등 쪽에는 왼쪽 어깨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보이는데, 이러한 표현은 아미타여래상과 대세지보살상의 경우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복장 유물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조선전기에 제작된 작품이라 추정된다.

 

괘불탱...출처/문화재청

 

문화재청 설명문을 발췌했다..

 

보관의 중앙에는 5구의 작은 화불이 모셔져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치켜 뜬 듯한 눈썹과 긴 코, 작은 입, 적당히 큰 귀 등 이목구비가 매우 단정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옷은 부처가 입는 법의 형태로 속옷의 끝단과 소매자락, 윗부분 등에 걸쳐 여러 형태의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겉옷의 왼쪽 아래 끝자락을 황금색실을 이용하여 처리하였다..

두 손으로는 흰색과 붉은색의 꽃송이가 피어난 연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당당한 양 어깨 위로는 귀를 감싸고 흘러내린 머리칼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넓은 가슴에는 큼직한 연꽃을 매단 가슴장식이 되어 있고 국화모양의 귀고리를 하고 있으며, 연꽃 받침을 딛고 서 있는 두 발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바탕의 좌우로는 8열로 대칭되게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데, 녹색 잎사귀에 붉은색, 흰색, 분홍색, 회색, 주황색 등 다양한 꽃색을 하여 화면의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 숙종 10년(1684)에 그려진  그림의  아랫쪽에 화기가 마련되어 있어  그림을 그린 사람과 조선 영조 5년(1729) 중수된 기록까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두 발 사이에 왕과 왕비와 세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이 있다.

 

 

이번 산청답사의 주목적이 가술리 석불입상이지만 율곡사 대웅전 앞 팔각석조부재를 살피고픈 마음도 목적의 하나이었다.


대좌위의 탑신석 2개

 

 

대좌

방형하대석 면석에는 안상이 2기 표현되었고, 복련이 새겨져 있다.

팔각형 간주석

상대석은 좁고 팔각이며 복련이 조식되어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이 일석이다.


 

하대석 면석의 안상


 

옥개석 3단의 층급 받침


 

옥개석과 상위 탑신석이 일석이다.


 

대좌는?


우선, 불상대좌를 생각해 볼수 있다.

하지만 상대석이 좁아 소형 불상도 겨우 봉안될 정도의 크기이다. 즉 대좌와 불상이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째, 석등 대좌일 가능성이다.

이 경우에는 간주석이 너무 낮고 두터워 난장이 석등이 되어 효과적인 석등의 기능에 애로가 있어 보인다.

세번째, 상부에 올려져 있는 석탑의 대좌 즉,불대좌형 석탑의 기단부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3번째로 생각했지만 불대좌형 석탑에서 중대석이 팔각인 작례는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괘불지주

 

 

내려오는 길

잿빛 부도전이 연록으로 단장을 했다.


 

 

서광당대사부도 瑞光堂大師塔.1728년


 

 

 

 

징하당대사부도 澄河堂大師塔.1724년

 

 

 

 

호월당처명월당담식부도 湖月堂妻明月堂曇湜塔

 

 

천파당대사부도 天坡堂大師塔.1732년

 

 

 

 

 

보운당대선사부도 寶雲堂大禪師塔

 

 

그 시절을 반추해보았지만

나는 보이지 않고

송홧가루만 휘날린다.


20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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