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태면 송곡리 정반대 방향으로 안내하는 내비양 보다 나의 눈썰미로 길가의 이정표를 발견하였다. 그도 잠시 길이 없을 듯한 길을 들어가서야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매향비埋香碑 매향비는 1982년 7월 목포대학교 부설 도서문화연구소의 암태도 공동학술조사에서 발견되었다. 본래는 약간 높은 산사면에 있었으나 수로공사로 현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매향비에는 7행의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조성 절대년도(1405년)가 표기되어 있다. 埋香處伴巳島 東岩置 南今隱哉 西岩泰島 北尾山 熟飯女二 永樂三年四月卄四日埋 金施主永伊 香万仏香徒 □□香徒等埋香令有如可 □□良慈[惠]□夲少□[等]立碑 비문 내용은 제1행에 ‘매향처반사도埋香處伴巳島라 하여 매향의 위치와 방위가 명시되어 있다. 또 동암치東岩置 서암태도岩泰島 남금은재南今隱哉 북미산北尾山이라 명시되어 있는데, 곧 동쪽은 암치도岩峙島를 가르키며, 서쪽은 암태도岩泰島, 남쪽은 팔금면의 거문지마을을 지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의 미산尾山의 위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매양처․사방기준기․매향시기․주도집단․매향과 비석을 세운 경위․참여자․시주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암태도 매향비의 특징은 매향의 주도층으로 향도香徒와 매향처埋香處를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올렸던 당진 안국사지 매향비의 글에서 인용했던 이해준 교수의 글을 발췌하여 옮겨왔다. 이해준교수는 암태도 매향비를 발견한 분이다.
천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무슨 연유로 향을 갯벌에 묻고 천 년 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살랐던 것일까? 또 당시 그들이 느꼈을 현실감은 과연 오늘의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을까? 매향에 담긴 선조들의 깊은 마음을 더듬어 보자.
민중의 염원이 담긴 "매향 의례"
조사단에 따르면 이 유물선은 개펄에 침몰하였기 때문에 선체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목재는 개펄 속에 묻혀 오래되면 마치 강철처럼 단단해진다. 더욱이 신안 해저 유물선에 화물로 실려 있던 목재 자단목은 일종의 향나무였다.본래 목재로 수출된 것이었으나 이 자단목은 천년 가까이 개펄에 묻히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침향이 되었다. 매향의 결과 얻어진 침향목이 바로 그 모습 아니었을까?"
요즈음 살만한 세상인가? 향나무 한 조각 가슴에 묻고 싶지 않은가? 그간 답사한 우리나라의 매향비
예산 효교리 매향비
영암 채지리 매향비
당진 안국사지 매향비
사천 매향비
영광 입암리 매향비
2016.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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