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신안군

신안...팔금도 읍리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6. 3. 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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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하룻밤을 묵고 압해대교를 거쳐 송봉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암태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송봉항에서 암태도 까지는 약20분 정도 소요되며 암태도.팔금도.안좌도.자은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어 차량을 이용한 답사가 가능하다. 여객선에는 차량 허용 중량 때문에 좌석은 여유가 있어도 차량을 승선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출발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먼저 도착하여 예매하는 편이 좋다.


 

팔금八禽면 홈페이지에 따르면 3가지 지명 유래가  있으며 현재 641 가구로 인구는 1,159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여덟마리의 날짐승 지명설

대체로 본도의 주산인 닭메산(금당산), 장촌의 백기도白騏島(흰 되강오리), 원앙鴛鴦구지(원앙새), 원산의작두 鵲頭지(까치머리), 비로飛鷺지(나는 백로), 오만烏灣이(까마귀), 이목의 부소鳧巢지(물오리), 진고의 조림烏林이(까마귀) 라고 에서 유래.


여덟개의 유인도설

본도本島, 백기도白騏島, 원산도元山島, 아도芽島, 거문도巨文島, 매도梅島, 고산도高山島, 거사도巨沙島. 옛날 사람이 산 섬의 팔八과 날짐승 지명이 많아 금禽을 합쳤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단, 원산元山의 속도屬島인 청룡靑龍 끝과 북진변北津邊, 대심大深의 소드랑섬 수문안, 장촌長村의 소근 해변海邊 등 4개 마을은 인가 흔적이 사라진지 오래됐다.

여덟개의 명당설

여덟개의 날짐승 이름이 들어간 팔명당八明堂 유래설이 전한다.


 

사적이 전하지 않은 폐사지(원래 위치 여부도 불분명)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으로 모래가 많이 섞인 재질 때문에 박리가 심한 편이다.


방형 지대석 2기단 위에 3층 석탑이다. 지대석은 4매 판석 조합이며, 하기단 면석도  4매 판석으로 결구하였고 그 위에 갑석이 놓여 있다. 하기단 갑석은 중간에서 꺽이어 사선을 이루며 기단면석을 받치고 있다.(하기단 면석을 갑석이 생략된 하기단으로 보면 갑석은  상기단 받침이 될 것이다). 다시말해 2기단으로 생각된다.하기단 면석에는 양우주를 조출하였고 갑석에는 부연이 없다.


상부에는 2단 각형 괴임을 조출하여 탑신석을 받치고 있으며 2층 탑신에만 양우주가 조출되어 있어 1.3층 탑신석은 후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초층에 비해  상층 탑신의 체감률이 급격하다. 옥개석 낙수면의 물매는 비교적 급하며 전각의 반전은 날렵하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초층 2단, 2,3층 3단이다. 상륜부에는 보륜과 앙화가 순서가 뒤집혀 있다. 하기단 면석의 둥근 암석은 오래전 석탑에서 동제를 올렸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기자, 풍농을 기원하는 제의 도구로 보인다


여러자료에 따르면 1942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석탑이 5층이라고 조사 보고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5층탑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위의 내용이 내가 바라 본 석탑의 특징으로 조성시기는 최소한 고려 중기 이후 탑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팔금도 신안 읍리 석탑의 엉터리 자료들을 열거 해보자.

(개인적인 판단으로 나의 오류일 수도 있다)


문화재청

오래전 사진이 올려져 있다.(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탑의 주소를 팔금면이 아니라 안좌면으로 표기

단층 기단, 고려 후기(이것은 옳을 수도 있지만 다른 자료와 비교하기 위해 올린다)

옥개석 층급받침 4단(위층부터 3.3.2다)


신안군청

문화재 명칭 팔금삼층석탑으로 표기(신안읍리 삼층석탑으로 지정)

문화재 분류를 보물로 표기(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옳은 분류)

설명문이 너무나 간략한 것에 비해 지금부터 1025년 전에 절이 있었고 그때 석탑을 조성했다고 표기

석탑 조성시기를 고려초기로 표기

(그 단서는 탑 주변에서 평형국平興國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것에 따른 듯 하다. 즉 태평흥국太平興國으로 太태가 결실된 명문으로 간주하였다. 태평흥국은 송나라 연호로 976~984년이다)


신안 문화원

상륜을 노반과 앙화로 표기(앙화와 보륜이다)


현장 안내문

팔금삼층석탑으로 표기(신안읍리삼층석탑으로 지정)

옥개석 층급받침을 전층 4단으로 표기


그외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1355년에 조성된 석탑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현장 확인 및 자료 수정을 기대해 본다.


 

지대석과 기단부


 

갑석에는부연이 생략되었다.

네모서리의 기자석(?)


 

2층 옥개석의 3단 층급


 

초층 옥개석의 2단 층급, 전각의 반전


 

2층 탑신의 양우주. 1.3층에는 우주가 생략


 

상륜의 보륜과 앙화


  

 

  

 

찾아 보는 사람도 드문 곳

안내문이라도 바로 잡아 주면 좋을 듯.


2016.03.13


***우리카페 달넘새님의 의견을 부연합니다.

 

읍리 삼층석탑을 2중기단으로 보시기보다는 단층기단으로 보시는게 좋습니다.그래야만 부재설명에 무리가 없습니다.
2단의 지대석, 기단저석, 기단중석(면석), 기단갑석으로 기단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탑의 특징은
1.지대석이 2단으로 치석되어있습니다.이렇게 지대석이 2단으로 조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11세기 초중반 입니다.
2.단층기단이며 2단의 지대석 위에 기단저석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단층기단 지대석 계보 중에서 중후기에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이 이후의 지대석 계보는 환수된 학고재 삼층석탑처럼 지대석이 1단으로 아주 높게 나타납니다.

3.희귀한 층급받침을 가진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옥개석 층급받침이 초층은 2단, 이층과 삼층은 3단으로 2,3,3으로 조성된 특이한 석탑입니다.이렇게 초층 층급받침이 적은 석탑은 매우 희귀하며 3기(개인자료) 존재하는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 석탑입니다. 위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중기 이후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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