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청도군

청도...호거산 운문사(2)

임병기(선과) 2016. 3. 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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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면 3칸*옆면 3칸 겹처마 다포계 팔작건물이다. 어칸은 5짝 협칸은 4짝 꽃살문을 달았다.

숙종 44년(1718)에  네 번째 보수하면서 세운 전각으로 추정한다.

 

비로자나불이 봉안된 전각이다.

분명 비로전 현판으로 교체한 것을 본 듯한데...

나도 헷갈린다.

 

 

우째 된 것일까?

위사진은 1977년 대학시절에 찍은 사진으로 희미하지만 대웅보전 현판이 보인다.

 

그리고

2004년 4월 나의 운문사 답사기에는 비로전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로전 전각에 석가모니부처가 계신다기에 눈을 돌려 보았지만 이제 비로자나불이 제자리를 잡고 있어 삼배라도 올리고픈 맘 가눌길 없었지만 법회의 법문을 알리는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청법가가 울려 발길 돌릴 수밖에...."

 

2016년 2월

다시 대웅보전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단서를 운문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운문사 신앙공간의 중심역활을 하였으며 문화재청 등록당시 "운문사대웅보전"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옛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언즉시야言卽是也?

 

즉 1990년대에 위사진 대웅보전 뒤쪽에 대웅보전을 새롭게 지으면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비로전으로 현판을 교체하였으나 문화재청에서 지정당시(1985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라는 몽니를 부려 비로전 현판을 내렸다는 야그이다!!!

 

내가

뭘 안다꼬?

 

 

소조비로자나불좌상(조선후기)

 

그나저나

오늘도 인연이 없는 듯

비구니스님의 낭랑한 염불이 이어져 그 좋은 솜씨에 도촬을 하였으니...

 

부득히

문화재청 사진을 가져 온다.

 

출처...문화재청

 

삼신불회도는 1755년 처일(處一)의 주도로 총 19명의 화승이 모여 제작한 불화이다. 18세기의 삼신불화는 비로자나와 석가, 노사나를 세 폭으로 나누어 그리는 3폭 형식이 유행하였지만, 이 불화는 거대한 화폭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등 삼신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을 함께 그린 1폭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물론 1650년에 제작된 갑산 삼신불괘불탱에서 확인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유행한 형식이다. 특히 보살형의 노사나불은 특유의 설법인을 취하지 않고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연꽃을 든 노사불의 수인은 수도사 노사나괘불탱(1704년)과 통도사 노사나괘불탱(1792년) 등 괘불화에서 확인될 뿐 후불도에서 표현된 예로는 유일하다.

 

사족

청도군홈에는 대웅보전, 문화재청에는 보광명전, 디지털청도문화대전에는 엉뚱한 사진을 올리고 비로전에 모셔져 있다고 했다. 또한 문화재청을 제외한 두 곳의 자료에는 주도한 화승이 처일이 아니라 "수두 화사(首頭畵師) 임한(任閑)의 주도로 총 19명의 화승(畵僧)이 모여 제작한 것"으로 등재 되어 있다.

그 참!!!

 

출처...문화재청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淸道雲門寺大雄寶殿觀音菩薩達摩大師壁畵)’는 거대한 흙벽의 화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온화하고 화려한 관음보살과 호방하고 대담한 달마대사를 조화롭게 그렸다. 한 화면에 관음과 달마를 나란히 표현한 벽화의 유일한 사례로,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전통을 잇는 선찰 운문사의 성격을 잘 대변해 준다.

관음보살의 보관 표현과 연꽃 위에 합장 배례한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복식 표현은 1628년의 국보 제296호 ‘칠장사 오불회괘불탱’ 및 17세기 후반 경의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벽화의 선재동자와 비슷하고, 이후 18세기 전반경 의겸(義謙) 계통의 관음보살도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경의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악찰보살

(안보이면 마음 나쁜 사람)

 

 

운문사 악찰보살상(울카페 이재준님 사진)

 

대웅전 천장 밑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무 조각상.

사연은 이렇다.

극락정토로 향하는 반야용선이 출발할 때 한발 늦은 보살에게 사공이 밧줄을 던져줬다.

항해 내내 보살은 '악착같이' 매달려 끝끝내 정토에 닿았다.

생사가 갈리는 상황을 이렇게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석조제화갈라보살.석조석가여래.석조미륵보살

 

 

오백전?

나한전의 또다른 이름이다.

 

 

소조제화갈라보살.소조석가여래좌상.소조미륵보살좌상

 

 

소조나한상(조선후기)

 

 

만세루

"2006년 구대웅보전 해체 수리 시 상량문과 함께 「순치 십이년 대웅전 중건시 가람 현상 등본(順治十二年大雄殿重建時伽藍現狀謄本)」[1655년(효종 6)], 「경상북도 청도군동 호거산 운문사 사적(慶尙北道淸道郡東虎距山雲門寺事蹟)」[1718], 「소화 십년 사월 일 대웅전 중편시 가람 현상표(昭和十年四月日大雄殿重編時伽藍現狀表)」[1935] 등의 기록이 확인되었다. 이 중 만세루라는 전각명은 1935년 기록에만 보인다.

 

1655년의 「순치 십이년 대웅전 중건시 가람 현상 등본」에는 현 위치에 미륵전 건물이 표기되어 있다. 현 건물의 구조 및 양식이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어, 미륵전이 현 만세루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디지털청도문화대전

 

 

 

 

범종.조선후기

 

 

용뉴에는 한 마리의 용이 있으며, 상대 유곽 윗부분에 범어가 새겨져 있다.

종신에는 2분의 보살상과 유곽과 9개 유두가 표현되었다.

 

 

부도전.사리암 길목에 위치

 

 

표충건사주태허대사남붕탑 表忠建祠主太虛大師南鵬塔(1717년)

 

 

종정진계당대사신서탑 宗正晋溪堂大師伸瑞塔(1780년)

 

 

퇴암당대사자여탑 退庵堂大師自如塔(1719년)

 

 

부종수교명암당석제대사탑 扶宗樹敎銘巖堂釋霽大師塔(1658년)

 

 

자도대선사양종정사설송당연초탑 紫都大禪師兩宗正事雪松堂演初塔(1750년)

 

 

연파당대사탑 蓮坡堂大師塔(1704년)

 

 

반운당탑 伴雲堂塔(1742년)

 

 

양종정사도봉당대사유문탑 兩宗正事道峯堂大師有聞塔(1800년)

 

 

양종정사성파당대선사현척탑 兩宗正事聖坡堂大禪師賢陟塔(1751년)

 

 

 

대선사긍파당대연사리부도비大禪師肯坡堂大淵舍利浮屠碑(1915)

 

 

그리고

운문사 원응국사 비각옆에도 한 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 분도 부도전으로 옮기면 좋을 것이다.

 

 

우리님들은

자박자박 걸어 다녀 오시길...

 

나?

문명의 이기를 향유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2016.02.14

(문화재청,청도군청. 운문사 홈페이지, 디지털청도문화대전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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