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남양주시

남양주...내원암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15. 10. 2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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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점심을 먹을 장소가 없어 파전에 곡차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제법 산길을 올랐다.

하지만 눈치껏 차량으로 진입하여 마지막 체육시설까지 오르면 내원암까지는 20여분이면 족할듯 하다. 절집 목전에는 산행객을 위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면 간단한 요기가 가능하다.

 

"내원사는 봉선사 말사로 창건 내력은 전하지 않지만 신라시대로 추정한다. 그후 조선 1693년 숙종은  꿈속에 나타났던 팔공산  파계사 영원스님을 에게 수락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게 한 뒤에 영조를 얻었고, 그 뒤 순정왕후가 왕손을 얻고자 용파를 시켜  300일기도를 올린 뒤, 1790년(정조 14)에 순조를 출산하였으므로 1794년에 칠성각을 짓고 관음전이라고 쓴 어필을 내렸다.

 

(원당사찰에 왕실과 관련한 전각이 왜 관음전일까? 영조의 원당사찰인 파계사의 원통보전, 순조의 원당사찰인 순천 선암사의 관음전, 내원암의 관음전 현판?)

 

1795년에는 성사라고 칭호 하였는데, 지금까지 내원암의 다른 이름으로으로 불리고 있다. 1796년 사성전을 지었고, 1825년(순조 25)에는 왕실의 자금인 내탕금으로 지족루를 지었다. 1831년에는 상궁 최씨와 하경호가 순원왕후에게 청하여 건물을 모두 중창하고 극락보전 현판을 사액받았다. 1851년(철종 2)에는 용암이 광응전을 중수하였고, 1880년(고종 17)에도 내탕금을 받아 모든 당우를 중수하였다.

 

그러나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55년 인법당을 지어 중건하였다. 1959년에는 칠성각, 1966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1970년에는 영산각, 1973년에는 요사 2동을 새로 지었다. 1991년 미륵전이 복원되었고, 1993년에는 새로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내이브 백과사전 발췌

 

 

대웅보전 옆 석불입상

원래 대웅보전 앞쪽에 있었던 불상을  대웅보전 축대를 조성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두광과 신광이 돋을새김된 주형거신광배와 불신이 한 돌로 조성되었다. 소발, 육계는 높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다.법의는 통견으로  U자형 의문은 무릎아래까지 흘러 내렸다. 상호는 근엄한, 자비로운 모습 보다는 애틋한 여인상 분위기 같다. 조성시기는 려말선초로 추정한다.

 

다 좋은데 아래 위의 왜색풍 석등 4기가 눈에 거슬린다.

 

 

 

 

 

 

중정의 석탑재

옥개석 3개만 남아 있다.

석불과 동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절집 아래 식당가 계곡을 따라 5분여 거리에 석종형 부도.

방형 기단위에 종형 탑신과 보주가 일석으로 조성된 조선 후기 부도다.

 

 

 

 

 

내원암에는 1885년 조성된 괘불탱, 주지실의 석불좌상, 인법당의 목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지만 일정에 밀려 뵙지 못햇다. 설령 여유를 부리더라도 많은 산행객의 내왕으로 저자거리 같은 분위기 때문에 스님들이 쉽게 친견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은

나도 몰래 다가오는 것이기에...

 

201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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