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주시

영주...초암사

임병기(선과) 2015. 9. 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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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사

석륜암지 석탑 답사를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절집이다.


그보다도

오래전 초암사 답사기를 올리면서 부도가 잘못 복원되었다고 지적했었는데, 그후 영주의 진당님으로부터 바로 복원하였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확인하고 싶었다.


어라?

부도전이 없어졌다!

스님께 확인하였더니 입구로 옮겼다고 말씀하시었다.



견보살의 상징?

아래 답사기에 기술되어 있다.







사진 좌측 부도를 지난 답사기와 비교해보길 바란다.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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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대웅전

 

죽계구곡을 따라 올라가면 소백산 기슭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사찰을 볼 수 있다. 이 사찰이 신라시대 의상 대사가 호국사찰을 세우고자 산수 좋은 이곳에 초막을 지어 임시 거처를 정하고 명당자리를 골라 부석사를 세운 뒤 초막을 지었던 곳에 절을 지은 초암사다.

 

초암사는 의상 대사가 창건한 이른바 5부석(축서사,비로사,초암사,흑석사,성혈사)의 하나로 부석사에 사용하려던 서까래가 날아간 곳이 바로 초암사라고 전해온다. 


 

어제 내린 비에 죽계계곡 물소리가 산 아래서부터 초암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초암사에는 스님도 보이지 않고 절을 훔쳐가도 모를정도로 적막하여 발걸음마져 조심스럽다. 근래에 중수한 듯한 대적광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죽계계곡은 고려 충숙왕 시절 안축이 노래한 경기체가 죽계별곡의 탯자리로 안축은 고향인 풍기군 죽계의 아름다운 산수와 미풍 속에서 흥에 젖어 있는 모습을 읊었다. 5장으로 구성된 1장에 죽계의 경치를 읊었다.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        

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   

他代無隱 翠華峯 天子藏胎      

爲釀作中興 景幾何如               

淸風杜閣 兩國頭御                  

爲 山水淸高 景幾何如


 

죽령의 남쪽과 영가의 북쪽 그리고 소백산의 앞에,

천 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 신라가 망하는 동안 한결같이 풍류를 지닌 순정성 안에,

다른 데 없는 취화같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왕의 안태가 되므로,

아! 이 고을을 중흥하게끔 만들어 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청백지풍을 지닌 두연(杜衍)처럼 높은 집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함을 지니매,

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삼성각

 

어? 삼성각 옆에 개의 동상(?)이 보인다. 틀림없이 화재를 당한 스님을 구한 충견이거나 호환을 예방하기 위한 당신앙(성황당)으로 판단했는데 전혀 다른 목적이었다.

불전함이 털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그 원인이 소백산 국망봉 쪽의 한 작은 봉우리가 도적봉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 여겨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도적봉을 향해 돌로 개를 형상화한 일종의 비보책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유쾌하지 않은 까닭을 모르겠다.


 

대나무 울이 옛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는 요사 앞 삼층석탑.  방형 지대석 위의 하기단 갑석에는 우동이 보이고, 몸돌에는 우주, 옥개석 받침은 4단이다. 옥개석 모서리의 반전은 급해 보인다. 


 

댓돌위에 하얀 고무신이 여러켤레 놓여 있어 요사에 계신 것이 확실한데도 인기척을 듣고 내다보지 않는 스님네들. 여느 절집도 다를바가 없지만 절집을 찾아온 객에게 문을 먼저 열어보자는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겠다. 줄어든 크기. 탱주, 옥개석 받침, 창건 시기 등으로 미루어 신라하대 탑으로 생각된다.


 

부도전. 이건 복원하였나? 동부도가 이상하군요?


동부도

 

동부도. 명문, 탑비가 없어 주인공을 알 수 없다.  안상이 새겨진 육각형 지대석위에 기단을 올린 약화되고 단순해진 팔각원당형이다. 하대석은 복련을 새겼고,  팔각 중대석  4곳에 문비(門扉)가 보이고 자물쇠를 양각하였지만 이건 틀림없이 잘목된 복원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상대석에는 앙련을 새기고 위에 팔각의 몸돌받침.몸돌을 조성하였다.

 

우리님들 견해는 어떠한가? 몸돌과 몸돌받침 그리고 중대석이 서로 바뀌어 복원된것으로 보이지 않은가? 기단에 문비도 사례가 없거니와 몸돌 받침이 뒤집혀진 것으로 보인다.  


 

서부도. 동부도의 아류이다.


 

200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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