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옥산리사지 부도,정혜사지 13층석탑

임병기(선과) 2015. 7. 7. 06:59
300x250
300x250

 

 

옥산서원.독락당 담장 끝부분에서 정혜사지 석탑 못 미쳐 사진에 보이는 좌측 마을로 진입하여 '옥산서원길 315-26' 민가를 지나 주차하면 된다. 길옆에 주차후 우측 길로 접어들면 민묘가 보이고 냇돌 울타리로 둘러 쌓인 대추나무 과수원이 나타난다. 부도와 비좌는 과수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대추나무 밭. 정혜사 12암자의 하나인 남천사지南川寺址로 구전되고 있으나, 정확한 사적이 전하지 않아 불명확하다.

 

 

부도, 부도비좌(?)

 

 

원형의 부도이며 상부에 방형 괴임을 두고 위에 사리공이 노출되어 있다. 부도 하단에 앙련의 연판문이 조식되어 있다고 하지만 마모가 심하여 확인할 수 없었다. 부도의 주인공 당호는 없지만 비구니스님의 부도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조선후기 부도로 생각했는데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에는 고려후기로 등재되어 의아스럽다.

 

 

 

 

 

 

 

돌아오는 길 정혜사지 13층탑을 아니 들릴 수 있겠는가?

 

 

 

 

 

 

 

안강에서 옥산서원 집입도로 좌측의 소나무 3그루.

동행한 2사람은 2000년 이전부터 현재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기억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2000년 이후에 옮겨온 소나무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며 답을 구한다.

 

이런!!

물을 것을 물어 봐라!!!

어케 그것을 기억하겠노?

 

2015.06.29

 

===============================================================================================

답사를 하다보면 처음 들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익은 정경에 깜짝 놀란 경우 가 종종있게 마련인데, 정혜사지 역시 내게 그런 느낌을 준 답사지였다.

자옥산과 도덕산이 병풍처럼 서있는 사이로 좁은 소로길을 따라가면 왕버들이 늘어선,머리속에 정지되어 각인되있는 유년의 외갓집 가는 방천이 나타날 것 같은 착각에 허우적 거리며 멋적은 빈웃음을 지었을 때가 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25년이 더 지난시절이었다.



비 내리는 날이면 훌쩍 떠나고픔을 충동질하는 답사지가 정혜사지로 자리잡은 것은지금까지 3번의 탐승 모두 비가 내리는 날이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오늘은 매서운 산골 바람이 자옥산을 타고 내려와 유년의 달콤했던 추억을 되새김할 한가로운 여유마져 앗아가버린 것이 겨울바람의 심술로만 전가하기엔 내가 살아온 일상이 그렇게 맑고, 밝지 않았기에 편치않은 맘으로, 스님에게 대학졸업선물로 받은 '處染常淨' 서예 한점을 떠올려 본다.

정혜사지 13층 탑
신라의 정형에서 한참이나 먼 이형의 탑, 통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당나라와의 치열한 외교의 한자락으로 사천왕사지 대타로 나서 역전 만루홈런을 기록했던 망덕사의 13층 목탑의 그림을 유추해 볼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탑으로, 언젠가 초딩이던 울 아들이 아이스크림 '수박바'를닮았다던 표현처럼 신라 이형탑의 정점에 서 있는 탑이다.

수박바 보다 더 체감율이 급격한 것을 파격으로 치부하기엔 맘 편치않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우선,신라 탑에서 잘 보이지 않는 흙으로 조성한 기단위에 전탑,모전석탑의 한 특징인 4면에 감실을 갖춘 1층 몸돌이 유난히 커서 상기단으로, 3개의 큼직한 지붕돌 받침을 갖춘 옥개석이 기단 갑석으로 착각하게 한다.

또한, 2층 몸돌 받침은 장방형의 고려 탑의 특징을 보여주며, 2층-13층 까지의 지붕돌은 거의 느낄 수 없는 몸돌 때문에 마치 포개놓은 듯하며, 상륜부 역시 노반석만 남아 있어 초심자들에게는탑의 층수가 헷갈리게끔 하는 탑이다.

조선조에 억불책으로 파괴된 사찰에 비해, 옥산서원의 재산으로 귀속되어 살아 남았다니 아이러니도 이만저만이 아닌 슬픈 역사의 정혜사를 그려 보지만 텅 빈 머리엔 춥다는 현실적인 생각밖에 없으니,역시 나란 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 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좋은 천진한,아니 덜 떨어진 놈이 틀림없다.

어린 회재 이언적이 학문의 기초를 움 튀우던, 낙향한 유학자 이언적이 학문적 깊이 이 농익혔던, 정혜사에 주석했던 고승의 모습을 13층 탑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하서 김인후가 노래한 싯구의 '해당화' '동백꽃'이 가람에 향기를 내품었던 시절에는
오늘의 선암사보다 못할바도 없지 않았을텐데...

2003.12.26 사진...나문답에서 가져옴

 

================================================================================================

 

월요일 오후 5시
대구에도 추적추적 비가 나리고 있었지만
진짜 불현듯 정혜사지 13층 탑이 미친 듯이 보고접어
애들,마누라 꼬셨다.

야들아 방학이라도 낼 하루 밖에 시간이 없다면서
포항 이모집에 갔다가 해수욕이나 가자고

헐헐 마누라는 벌서 낌새 채리고 뭐가 보고 싶지? 란다
(눈치 한번 빠르군)

길은 맥히고,날은 어두워지고
가는 길에 애들에게 5대서원의 하나인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보여주고 싶은디...

그냥 쳐다 보고만 있었다
애들도 말이 없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이놈의 탑은 볼수록 의혹만 쌓인다
백제,통일신라,고려,신라초의 특징을 골고루 지니고 있다
그래도 좋더이다
나처럼 미친 일행이 탑을 맴돌며 설을 풀지만 감실은 미소만 짓고
토축은 긴 한숨만 짓는듯 하다

멍하니 발을 옮기지 않는 나를 향해
탑이 나를 향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눈을 다시 뜨고
못내 아쉽지만 다가오는 어둠,정적 만큼이나
미혹에 휩쌓여 발길을 돌렸다

그래 상상만 하자
감추고 싶은 영화 남겨놓자
구태여 알려고도 하지 말자...

영암사지가 그렇듯이
혼자만의 소설을 한편 땡겨 뿔자
만화라면 더욱 택도 없이 진도가 잘 나가 겠지만...

영암사지 석등의 무지개 다리
오르는 것에 주안 점을 두었을까?
내려오는 데 중심을 두었을까?

어제 오후
아이들의 성화에 불국사에 들러
김혜수 주연의 영화 촬영으로 시끌법적한 틈속에서

혼자 대웅전 법당에 앉아 다보탑을 내려 본 순간
아하! 다보탑의 계단이 법을 펼치기 위해서
즉 법이 내려오는,전파하는 의도의 구조물이라면
영암사지의 돌계단도 그렇치 않을 까라는 생각에
혼자 피싯 웃음지었었지
영암사지 돌 계단의 사라진 동자주의 법수도 혼자서 그려 넣고..

모르는 것 만큼 즐거운 답사는 없지 않을까?
자유로히 상상의 나래를 피고...

아!!!
또 어디로 튈까?

2002.7.24

 

300x250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