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보리사 삼층석탑.석조여래좌상.마애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5. 6. 3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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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답사의 고전

미륵골, 탑골, 부처골

옛글을 뒤져보았더니 2003년 아래의 글이 보인다.

정제되지 않은 풋풋한 알음이 오히려 솔직해서 좋다.

 

석탑과 마애불 답사기는 대학 노트에 잠자고 있는 듯하다.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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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골

나의 답사 출발은 서라벌이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왠지 알 수 없는 두려움, 경외감이 서라벌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 정점에 남산이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남산골의 미륵골, 탑골, 부처골을 목전에 두고도 갈등은 깊어만 가는 것이다.

그래! 한번 뵈오러 가자.
비오는 길을 찾아온 나를 반겨주지는 않아도 외면이야 하겠는가?
새로이 불사를 마친 비구니 도량 보리사는 스님도, 객도 잠든 적막강산의 고요가 가람에 내려앉아 있고 어색한 3층 탑 마저 눈꺼풀이 무거운 듯 한가로이 졸고 있다.

대웅전을 그쳐 남산에서도 제일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고, 한 인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돌부처를 친견한 순간 숨이 막혀온다. 석굴사의 부처처럼 장엄하지도, 당당하지도, 힘이 느껴지지도 않지만 사람을 안아주는 포용력은 어디서 올까?

감실부처와 같이 한반도의 변방 서라벌에서 머물던 신라의 문화가 피비린내 나는 삼국의 전쟁 와중에서도 고구려의 힘, 백제의 부드러움을 수용한 선덕여왕의 재위 기간에 형성된 신문화사조의 부산물인가?

나발에 흘러내린 빗물이 빗방울이 되어 돌부처의 뺨에 흘러내린다.
마치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나를 위무 하듯이.....

거신광배를 올려 보는 순간 일순간 전율감이 몸을 휩싼다.

앞이 캄캄하다. 분명 예전에 친견 시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디서 뵌 부처의 거신광배 일까?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인가?

흐느적흐느적 서있기도 힘들어 쪼구려 앉는 순간 뇌리를 강타하는 돌부처의 얼굴과 거신광배......
맞어! 비로자나 석불의 원조 산청 내원사 비로자나불 거신광배와 쌍둥이 잖아!
자신만만하게 석조여래를 다시 올려 보자 "이 어리석은 중생아! 이제 알았어?
그래도 제법이군" 하는 표정으로 입가에 뚜렷이 웃음을 머금고 계신다.

크기, 100여 년의 시차, 수인이 다르지만 서라벌에서 산청으로 흘러간 장인의 계보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나의 몫은 오직 즐김에 있으니...

미륵골 돌부처는 항마촉지의 수인이지만 뒷면이 선각된 동방유리광불 약사여래이기에 서방정토의 아미타불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항마촉지의 수인이 군위 제2 석굴암에 나타나지만 군위 삼존불 역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어 아미타불로 알려져 석굴암 석조여래도 아미타불이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이곳을 미륵골이라 할까?
어느 시절에 골골에 미륵부처가 모셔져 있었단 말인가?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들 삶에 지친 민초들은 천지가 개벽하는 미륵하생을 염원하며 돌부처를 미륵불이라 여긴 까닭이겠지?

눅눅한 몸을 아랑곳 않고 멀리서 가까이서, 측면에서, 뒤에서 바라보아도 내려가다
말고 뒤돌아보아도 마냥 즐겁다 그냥 그렇게......

앎이 초급이요
좋아함이 중급이라면
즐김은 고급이라는 덜떨어진 시건방진 택도 없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2003.07.11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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