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충주시

충주...충렬사

임병기(선과) 2014. 11. 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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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나의 직계 할아버지를 모시는 제향 공간이다. 집안의 어른들이 연례행사로 참배를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나는 충렬사 앞을 여러번 통과하면서도 참배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막연히 뵙고 인사만 올리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는 어른들도 많이 돌아가시고 집안 대소사 진행의 중심에  자리한 위치를 생각하면 할아버지 영정 앞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단호사 건너편 충렬사. 충렬사는 충민공忠愍公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임경업 장군은 충주 풍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훗날 1646년 억울하게 피살된 뒤 고향에 묘소가 세워졌는데, 임경업을 기리기 위해 1697년(숙종 23) 처음 임충민공 충렬사가 건립되었다. 1726년(영조 2)에 임경업의 유상을 모셨으며, 1727년(영조 3)에는 충렬사란 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791년(정조 15)에는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가 세워졌다. 제사는 봄과 가을 두 차례씩 행하고 있는데, 평소 참배객들은 사당 바로 앞에서 향을 올리고 방명록에 서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870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유지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임충민공 충렬사는 본래 목조 기와지붕을 한 3칸의 맞배지붕 형태였으며, 강당은 목조 팔작기와지붕에 10칸이 단청되어 있었으나 너무 퇴락하자 1978년 완전 해체하고 새롭게 단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임충민공 충렬사는 콘크리트 기둥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형태로 앞면에 전퇴를 두었고, 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으며, 정면에 걸린 충렬사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내삼문인 진무문振武門은 콘크리트 기둥에 기와 맞배지붕을 한 솟을삼문이다.

 

외삼문인 갈성문竭誠門 역시 콘크리트 기둥에 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으며,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의 공간 왼쪽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목조 기둥에 팔작기와지붕을 한 강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어제 달천 충렬사비’ 및 완산이씨 정부인 정렬비와 비각, 그리고 이은상이 쓴 달천 충렬사비가 있다.

 

 

임경업(1594∼1646)은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1594년(선조 27)  충주 대림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출중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1620년 소농보권관을 거쳐 1622년 중추부첨지사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서훈되었다. 정묘,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 의주성 등을 수축하여 국방강화에 전력하는 한편, 일관되게 반청친명反淸親明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청의 요청으로 명을 공격하기 위하여 출병하였으나, 명과 내통하여 오히려 청을 공격하려다가 청의 포로가 되었다. 이때 국내에서 좌의정 심기원의 모반(1644)에 연루되었다는 말이 나돌아 1646년 인조의 요청으로 청나라에서 송환되어 친국을 받던 중  김자점의 밀명을 받은 형리에 의해 장살되었다. 1679년(숙종 23) 복관되었다. 

 

 

어제달천충렬사비.임경업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비문은 정조가 지었으며, 글씨는 예조판서 이병모가, 전서는 이조판서 윤동섬이 왕명으로 썼다.

 

 

전주 이씨 정렬비. 임경업의 처 전주이씨는 임경업이 명나라와의 내통 사실이 발각되어 청나라로 압송 중에 탈출한 사건에 연좌되어 가족과 함께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갔다. 청나라에서 고초가 날로 심해지던 중인 1644년 9월 “나의 남편은 대명大明의 충신이고 나는 오로지 충신의 아내임을 알 뿐이다.”라고 말한 후 심양의 감옥에서 자결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추련도. 유물 전시관에는 현재 임경업 장군 유상과 교지, 유필, 추련도, 임충민공 충렬사 사액 현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추련도는 임경업 장군의 보검으로 용천검과 추련도가 있었는데 용천검은 전쟁 시 직접 쓰던 검이었으나 6.25때 분실되었고 한다. 추련도가 남아 있는 단검이 유일한 유물로 평상시 보호용으로 애용한 보검으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된 문헌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충렬사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칼과 칼집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도신은 철, 손잡이와 칼집은 목재,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과 동으로 되어 있다.또한 칼 코 등을 얇은 철판으로 제작도어 있으며, 그 위에 주석·납으로 합금하여 도금하였다. 도신 좌우측면에 명문이 남아 있다. 보관함은 후대에 제작한 것이다.

秋蓮刀라는 칼의 이름은 이 검에 새겨진 싯귀에서 따온 것이다. 秋蓮 즉 가을 연꽃은 다른 연꽃이 피지 않을 때 의연하게 핀 꽃 즉 지조가 있는 대장부를 상징한다고 본다.2005년 7월 15일부터 동년 9월 9일까지 보존처리를 실시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한 장시도이다.

이 秋蓮刀 양날에는 다음과 같은 검명시劒銘詩 28자가 새겨져 있다.

時呼 時來 否在來 시절이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一生一死 都在筵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 모두 여기 있도다.
平生 丈夫 報國心 대장부 한평생 조국을 위한 마음뿐이니
三尺 秋蓮 磨十年 석자 추련검을 십년동안 갈고 갈았도다.

 

 

집안에서 충렬사 참배가 끊어진지 여러해가 된 듯하다. 11월 23일 집안 모사를 올리는 날 집안 어른들과 종손, 형님들과 상의하여 조만간 참배를 도모해야겠다. 아울러, 충주 답사 동선에 충렬사를 포함시켜준 이상기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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