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충주시

충주...미륵대원지

임병기(선과) 2014. 11. 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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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페 첫 공식답사지가 충주였다.

당시에 올렸던 아래의 답사기를 보니 2005년 거의 10년 전이었다.

함께했던

그분들 아직도 카페에 남은 분이 많이 계시다.

 

금년에 함께했던 사진 몇 장 올린다.

 

 

 

 

 

 

 

 

 

 

 

 

 

 

 

 

 

 

 

 

 

 

 

 

 

 

20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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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전남 장흥에서 출발한 한 분을 제외하고는 경향각지에서 문화유산 답사 동호회원들이
속속 미륵리에 도착하여 미륵대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십년지기 이상으로 친숙해 보이는 까닭은,우리 국토의 아
름다움을 찾고, 우리문화유산을 사랑한다는 공통된 관심사 때문이겠지?

이틀전 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걱정 보다는,탑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석양무렵과 함께
폐사지 답사의 최적 분위기로 회자되는 가랑비를 기대했건만,구름속에 숨은 해는 노을마져
월악의 품속으로 감추었어도, 폐사지에서는 넘침,채움 이상으로 모자람,비움의 미학을 느끼
는 것이기에 발걸음은 가볍다.

미륵리 절터는 멀리 신라시대부터 경북 문경과 충주를 잇는 고운 이름의 '하늘재'와 지릅재
를 좌우로 삼고 멀리 월악산 송계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넓지 않지만,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
는 곳에 갖가지 설화를 간직한 채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순수 아마츄어 시각으로 설명과,해석이 가능한 회원들이지만 내가 현지의 문화유산해설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책에서,자료에서 얻은 지식보다는 지역 특성과 환경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설화,전설을 가미한 맛나는 해설은 물론이고,흥에 겨우면 주현미가 노래한 월악산(?)이나
조영남의 마의태자를 주저없이 불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울님들 미륵리사지에서


"미륵리사지는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가, 월악산 덕주사 마애불을 남
향하여 조성한 누이 덕주공주를 그리며 북향하여 조성했다는 설, 고려를 건국한 후 고구려
의 고토를 회복할려는 염원의 발로라는 설이 있으며,조령과 이화령이 열리기 전에는 남북간
의 주통로이기에 하늘재를 확보할려는 전쟁이 치열했으며 승리자가 한반도를 지배하였다고"
이길순 충주 문화유산해설사 설명은 이어진다.

그외에도 설명이 있었지만 이제 나의 시각으로 미륵리사지를 보아야 겠다. 마의태자와 덕주
공주 오누이의 정은 아름다운 설화로 차치해두고,답사객의 입장에서 바라보아도 현재의 배치
가 최상의 구도이며 자연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여겨진다. 보편적인 구도인 남향 배치라
면,미륵불 뒷편을 무지막지하게 절개하거나 입구를 봉토하더라도 앞이 막히고 뒷편 송계계
곡 쪽이 허하기 그지없지 없었을 것이다.

물론,배수임산(背水臨山)의 배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경북 청도 운문사는 재앙을 예방하
려는 풍수의 비보책으로 모든 전각이 산을 바라보며 조성되어 있지만,대부분의 우리 옛 가람
터는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로 활용하여, 천연스런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이다.



 

허리가 부러진 당간지주

안태 자리를 잃고 허리가 잘린 채 누운 당간지주에 만개한 연꽃 향기에, 멀리 서라벌 보문들
녘 진평왕릉과 설총무덤을 바라보며 외로히 서있는 보문사지 연꽃 당간지주를 떠올리며,자연
암반 위에 조성한 돌거북의 사라진 비신과 내용을 더듬는 사이, "당당하고 의젓한 자세로 앞
을 향해 나가려는 모습의 돌거북은 새끼 거북을 등에 업은 것으로 보아 엄마 거북으로 생각
된다"는 해설사의 말씀에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다.



 

미륵리 석불

어느 누가 그랬던가? 답사의 끝은, 최종 종착지는 폐사지라고...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디쯤 걷고 있을까? 자문하여도 공허한 메아리만 폐사지에 울려,미륵불
을 올려다 보니,미륵불은 손을 가슴에 대고 엄지손가락을 세운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고,석굴
의 흔적인 주변에 얼기설기 둘러 있는 돌담은 포근한 정감을 갖게 해주며, 그속에서 멀리 송
계계곡을 향해 서있는,검은 빛을 띤 몸에 비해,천년 세월의 풍상을 잊고 살아온 듯,백련처럼
하이얀 얼굴의 미륵불은 명멸해간 정복자,피지배자 모두를 가슴에 아우르는 듯한 표정이다.





 

미륵리 석등과 오층석탑

미륵불에서 내려다 본 절터에는, 부석사 무량수전 뜨락의 석등을 시원으로 하는 신라전형의
팔각원당형 석등과,적어도 아마츄어인 내눈에는 편년이 모호한(대부분 자료에서 고려탑이라
고 하지만 고려탑의 가장 큰 특징인 별석의 방형 몸돌받침이 없지 않은가?) 낙수면의 기울기
가 심한 오층탑이 일직선상에서 있으며 오른편 석축 위에는 주추의 흔적과 고려 정형의 방
형 석등이 펼쳐져 있다.





 

팔각원당형 석등



 

방형의 고려석등

폐사지의 분위기에 몰입해 있는 일행에게 공주에서 답사에 참가한 '해아리'님이 저음의 매혹
적인 톤으로 김지하의 '바람 1'을 폐사지에 운무처럼 드리운다.



 

해아리님의 詩낭송


         바람 1- 김지하

         내
         다시금 칼을 뽑을 땐
         칼날이여
         연꽃이 되라

         죽을 싸움 싸우다 죽어
         피투성이 피투성일지라도
         손에 쥔 것은 칼이 아닌
         연꽃이 되라
         연꽃이 되라

         반쪽만 남은 돌미륵
         모로 누운 채 잠든 내
         주검 곁에서 웃어라
         너는 크게 웃어라

         아아아
         이 커다란 품.


여기서 미륵리사지 답사를 마치기엔 모두들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기에, 광해대왕님을 선두
로 우리는 옛님들이 정과 한,승리와 패배,성공과 좌절을 품고 오르내렸을 하늘재로 발길을
옮기니 너른 터에 석재부재가 어지럽게 산재해 있다.



 

하늘재로 향하며


그랬겠지! 작전상 중요한 거점인 이 곳에 병영,나라가 안정된 후에는 역참,오고가는 상인을
유혹하는 작부의 노랫가락이 울려퍼졌을 주막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그 알알이의 사연들은
어디로 흩어졌단 말인가?



해질녘의 미륵리 삼층석탑

무심코 바라본 명경지수의 하늘재 초입의 계곡물에 마음 맡겨버리고 하늘재를 향하는 도중
진주에서 오신 님이 "탑이 너무 귀여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는" 3층 탑은 주위의 가람
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미륵리 절터의 오층탑 보다 오히려 신라 전형
의 유형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음에도 진신사리나 법사리를 모신 불탑 보다는 오히려 비보탑
으로 받아 들여진다.



 

하늘재의 부처머리



처음의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우리님들은 가슴을 열고 자연스럽고, 진솔
한 대화가 하늘재를 넘나들 즈음에 동호회원들이 만화 주인공,삼장법사,원숭이라고 칭하는
정체불명의 부처님 얼굴 옆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포즈를 잡던 님이 "좋은데, 참 좋은데 너
무 모르겠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님아!
아는 것 만큼 보인다고?
과연 그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님아!
무지의, 아니 모르는 만큼의 자유로움의 희열은 영원히 리바이벌 불가한 오르가즘이라오!!

그냥
즐기자고요!!
아는 것 보다, 좋아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 보다, 즐기는 것이 답사의 맛이라는 어느님의 말을 가슴에 담고서...

2005.06.18

 

사진....꽃그늘님
노래/조영남...마의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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