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장의사 당간지주를 보려고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서울미술관과 석파정이 차창에 비친다. 저기에도 석탑이 있다는 글을 우리카페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시나브로님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비싼 입장료를 내면 볼 수 있단다. 서울사람에게는 비싸지만 이번에 못보고 대구에서 다시 오면 교통비가? 어휴!!!
당간지주를 보고 바로 옆으로 생각하여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더니 어휴 3정거장이나 된다. 여름을 방불케하는 날씨에 땀 많은 중생 곡소리 났다. 내꾀에 내가 속은 것을 누구를 탓하리. 그런데 그런데 제기럴!!! 설상가상으로 내부수리중이어서 휴관이다. 대구서 왔다고 양해를 구했지만(애걸복걸이었다) 경비 업무에 충실한 직원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요지부동이었다.
신라시대 절인 장의사藏義寺 경내로 추정되나 현재는 옥천암이라는 작은 암자만 남아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보살상 앞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조선 후기에는 흥선대원군의 부대부인 민씨가 고종의 천복을 빌었다고 하는 왕실과 관련된 관음보살 도량으로 유명하다
보도각에 모셔진 관음보살
보도각을 바라보는 순간 지금까지 가졌던 몇가지 의문이 단번에 해소되었다. 보도각 백불? 보도각 전각에 모셔진 호분을 입힌 관음보살이란 의미였다(구태여 보살과 불상을 구분하지 않겠다). 두번째로 한양의 여러 관음보살중 왜? 우리나라의 북관음으로도 불려지는지가 이해되었다. 동해 낙산사 관음, 서해 강화 보문사 관음,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4대관음도량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즉 보도각 관음을 해수관음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홍지천가에 위치하기 때문이며 그로인해 바닷가에 자리한 다른 관음보살과 더불어 북관음으로 불려진 것 같다.
백불白佛,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 불린다. 보살상은 바위 한쪽 평평한 면에 새겼다. 마애보살상은 바위면에 양 무릎을 넓게 벌리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에는 보관 을 착용하고, 목걸이 장식을 하였으며, 대의大衣 안쪽의 내의에는 금분을 입혔다.
보도각백불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대체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기에 고종의 어머니 부대부인민씨가 고종을 위하여 복을 비는 치성을 드렸는데 이때부터 호분을 바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얼굴은 둥근 편으로 가늘고 긴 눈과 작은 입이 표현되어 있어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옷 주름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면서 형식적으로 처리되었다. 손에는 지물을 들지 않고 수인은 아미타 수인이다. 보도각백불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대체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된다.
관의 좌우에 뻗어 있는 관대에도 타원형의 금판이 달려있으며, 관 아래로 내려온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다. 머리에 쓴 보관으로 보아 관음보살상으로 짐작되지만 대부분의 관음보살이 보관에 화불을 새기는 것과 달리 이 보살상의 보관은 세 칸으로 나뉘어 각각의 칸에 연꽃을 장식하였다.
1989년 5월 11일 초파일 하루 전 괴한이 침입하여 붉은 페인트 칠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이후 그물망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 좋을 듯하다.
1920년대의 보도각백불
옛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를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의 글. 그림. 사진속 모델이었던 그시절의 관음보살상이다.
2014.09.27 |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낙성대 삼층석탑 (0) | 2014.10.18 |
---|---|
서울...호림박물관 야외전시장 (0) | 2014.10.17 |
서울...장의사지藏義寺址 당간지주 (0) | 2014.10.16 |
서울...지광국사현모탑 (0) | 2014.10.15 |
서울...흥천사명 동종 (0) | 201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