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철원군

철원...승일교.고석정.직탕폭포.노동당사

임병기(선과) 2014. 9. 7. 19:52
728x90
728x90

 

철원에 도착한 시간이 답사 동선 수립하기에 애매한 시간이다. 금학산 마애불을 답사하고 화천으로 내려가면 좋겠지만 오늘 하루 타이트한 일정을 고려하면 다시 산행은 무리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스쳐 지나기만 했던 몇몇 곳을 느긋하게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설명문은 철원군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승일교

 

소련식유럽공법의  철근콘크리트라멘조  아치교로서  교량의  조형미  가  돋보이는  교량높이  35m,  길이120m,  폭  8m  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  김명여  교사가  설계한  것으로  1948년에  착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새로  놓여진  철교로  인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이  다리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이  시차를  두고  완성한  남북합작의  다리이다.  큰  아치위의  상판을  받치는  작은  아치의  모습이  서로  다른  것은  시공자가  달라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원래  이  다리가  놓여진  곳은  철원읍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의  남부와  북부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예전에는  얕은  여울에  돌다리를  놓아  사용하고,  수위가  높아지면  목선을  이용하던  곳에  1948년  8월  이도로를  군사적  연결로로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북한정권하에서  교량설치공사를  시작하였다.   

 

당시  철원  및  김화  지역주민들이  5일간  교대제의  노력공작대  라는  이름으로  총동원되어  한국전쟁  초까지  다리  기초  공사와  2개의  교각을  세워  북쪽  부분은  거의  완성되고  남쪽부분은  남게  되었다.  그  이후  이지역이  수복되어  국군에  의해  임시목조  가교가  놓여졌다가  1958년  12월  미완성된  부분이  마감되어  다리  가  완공되었다.  다리이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원래'한탄교'라는  이름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지도상에도  '한탄교'라  명기되어있다.  

 

북한이  절반가량  완성했다가  남측이  나머지부분을  완공해  이승만대통령의'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해  이름을  붙였다한다.

 

한탄대교

 

한탄대교는  기존의  승일교를  대체하여  신설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총사업비  110억  원을  투자하여  2년여(97.  2.  3  ~  99.  8.  11)간의  공사  끝에  교량연장  166.8m,  폭  9.5m의  규모에  붉은색으로  도장된  아치교를  건설하였는데  미래를  향한  우리  군민의  굳은  의지와  힘찬  기상이  담겨  있다.

 

 

 

 

고석정

 

고석정은  한탄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고석바위

 

임꺽정

 

'홍명희'의  소설에  나오는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땅  백정(白丁)의  장자  출신으로  서기  1559년경을  전후하여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한  대도적으로서  실존인물이다.  타고난  재주가  비상하여  과거등용에  뜻을  두었으나  천민출신으로  출세길이  막히고,  조정의  부패와  양반,  관료들의  수탈은  물론  토호들의  행패에  불만을  품어  당시  학정에  신음하고  있던  서민들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대적당(大賊黨)을  조직하고  그  두목이  되었다.


지금  고석정  건너편  산  정상에  길이  2,892척(868m)의  석성을  쌓고  이  곳을  웅거지로  하여  함경도  지방에서  이  지점을  거쳐  상납하는  조공물을  약탈해서  서민들에게  분배해  주는  활빈당  활동을  전개하다가,  조정  관군에  쫓기게  되면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곤  했는데  빠져나가는  재주가  흡사  꺽지와  같다  하여  임꺽지(임꺽정)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임꺽정은  그후  1562년  조정의  토벌사  남치훈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쫓겨  황해도  구월산에  숨어들었다가  부하의  밀고로  관군에  체포되어  사형당하였다. 

 

한탄강

 

옛이름은  체천  혹은  량천으로  부르기도  한  한탄강은  태백산맥의  황선산과  회양의  철령에서  발원한  수계가  평강군  정연리(현갈말읍  정연리)에  이르러  합류함으로써  철원,  김화,  평강의  삼각극점을  이루고,  계속  남류하여  경기도  임진강에  유입하는  전장  110㎞에,  평균  하폭  60m의  큰강이다.

 

강유역은  현무암지대로서  침식지가  마치  파상지형으로  섬돌모양의  절벽을  이루고  있어  체천이라  했다는데,  다른  하천과  특이한  것은  평원분지  한가운데를  깊이  20~30m의  협곡을  이루면서  흐르기  때문에  그  모양이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넌을  연상케  하고  웬만한  홍수에도  범람하는  일이  없다.  

 

그러면서  굽이쳐  흐르는  구비구비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비경을  빚어  놓아  칠만암,  직탕,  고석정,  순담  등의  명승지가  널려  있으며,  사시사철  맑은  물과  풍부한  수량은  각종  민물고기의  서식처일  뿐만  아니라  철원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이기도  하다.

 

직탕 폭포

 

직탕폭포는  한탄강  상류에  기암절벽과  자연적인  ㅡ  자형  기암으로  이루어진  폭포로서  그  웅장함과  기묘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겹쳐  철원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탄강의  맑은물과  풍부한  수량  등으로  자연미가  넘치는  이  폭포는  절경  고석정과  불과  2km  정도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폭  80m,  높이3m로  속칭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름철  피서지로  최적지이며  이곳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이는  매운탕  맛은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철원 노동당사

 

북한의  노동당사로  1946년  초에  북한정권하에서  착공하여  지상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신축되었다.  조적식기둥  및  벽체로  수직재를  이루고  있으며,  보  및  스라브는  철근콘크리트  수평재로  수직재와  결구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천장은  목조  삼각형지붕틀을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입구의  1층에  원기둥  두개를  세워  현관을  두었으며  그  위에는  아치로  장식하여  정면성을  부각하고  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력동원과  모금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주민들은  성금  이란  명목으로  1개리마다  백미  200가마씩의  자금과  인력  또는  장비를  동원시켰으며,  그  해년  초에  착공하여  연건평  580평  규모로  완공  되었다.  1947년  초부터  이  당사에서는  북한의  중앙당으로부터  지령되는  극비사업과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연천지역주민들의  동향사찰은  물론,  대남공작을  주도한  북한정권하에서  중부지역의  주요업무를  관장했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당사  내부구조물  축조작업에는  보안을  위하여  열성당원이외  일반인의  작업동원을  일절  금하였다고하며,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취조  및  구금,  고문  등  한번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오는  악명  높은  곳으로  당사  뒤편에  있는  반공호에는  현재도  유골,  실탄,  낫,  철사  등이  발견돼  당시의  참상을  대변하고  있음.  최근에는  통일기원예술제,  열린음악회등  평화기원행사가  열리고  있음.

 

2014.08.06

728x90
728x90

'강원도 > 철원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원...동송읍 마애불상  (0) 2014.09.08
철원...운장리 석불입상  (0) 2014.09.06
철원...도피안사  (0) 2009.04.26
철원...심원사  (0) 200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