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보성군

보성...정흥사지 석탑재

임병기(선과) 2014. 8. 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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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사지.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에 등재된 글을 보고 문화유적 총람을 검색해보았더니 총람에도 기술되어 있었다. 대구에서 멀고먼 보성을 여러번 답사를 했고 경유 하였건만 지금까지 왜 알지 못했을까? 두 자료에 보성읍 봉산리 까지는 동일하지만 전자에는 방축마을, 후자에는 오서마을을 기록하고 있어 헷갈린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방축마을이 맞을 것 같다. 정흥사지는 방축 마을 300여미터 직전에서 마을로 들어가지말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단독 주택이 보인다. 여기 차를 주차하고 200여미터 포장길을 오르면 다시 2채의 농가가 보인다. 여기부터 비포장길이 나오고 잠시 후 산길방향 등산로와 좌측 개울을 건너는 좁은 삼거리에 닿는다. 이 지점에서 좌측 경작지를 바라보면 논둑에 위의 사진처럼 큰나무가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겨울에는 좌측 개울을 건너 경작지로 접근이 가능 할 것 같다.

 

3층 옥개석의 찰주공

 

"정흥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나, 신동국여지승람에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정흥사의 위치는 장흥의 전일현봉수, 흥양(고흥)의 장기산봉수, 보성의 정흥사 동봉 봉수의 중앙으로, 교통과 관방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정흥사 동봉 봉수’가 ‘정흥산봉수’로 기록되어 있고, 범우고에는 폐사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광여도 등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지도들에서도 정흥사를 찾을 수 없다. 이로 보아 정흥사는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한국의 사지

 

 

지금의 환경으로는 석탑재를 찾을 엄두도 못 내었을텐데 마침 깨밭에 김을 매고 있던 노부부를 만나 정확한 위치를 알았다. 현재사지에는 비좌, 석탑 지대석,  옥개석 3매, 탑신석 1개가 흩어져 있다. 석탑재는  치석상태가 고르며 파손 부분이 적다. 초층 탑신석은 옥개석 아래에 깔린 상태이며, 우주가 두텁게 새겨져 있으며, 상부에는  사리공이 뚫려 있다. 탑신석 아래에는 석탑 기단부와 지대석의 부재로 보이는 3매의 부재가 묻혀 있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초층과 2층이 각 4단씩이며, 3층은 3단이다. 옥개석 상부에는 1단의 탑신괴임을 표현하였고 괴임이 옥개석 바깥으로 돌출된 모습니다.  3층 옥개석의 상부에는 찰주공 마련되어 있다. 조성시기는 고려초기로 전한다.

 

 

옥개석층급은 위로부터 3*4*4이다.

 

 

탑신석 사리공

 

 

탑신석 양우주

 

 

탑신석. 초층 탑신석으로 추정

 

 

비좌

 

 

 

 

 

주차한 단독 주택 마당에 있는 부재이다. 하부에는 연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부재도 민가에 있었다.

 

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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