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영천...중암암 석불좌상. 부도

임병기(선과) 2014. 6. 23.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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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중암암은 석탑 답사를 위해 수 차례 다녀온 암자(아래 답사기 참조) 이다. 그러던 중 5월 어느날 부터 시작된 부도 기행  그 동선에 포함하여 들렸다. 이전에는 석불좌상과 부도는 몰랐었다. 인연이란 다가오는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중암암 입구

 

 

 

석불좌상

 

 

경주불석 처럼 보인다. 한국사찰문화재총람에는 조성시기를 조선후기~근세로 등재되어 있으나 정확한 자료는 없다.

 

 

중암암 직전 커브길 옆 산길로 100여미터 진행하면 우측에 자리한 조선 후기 부도이다. 방형 지대석위에 앙련이 고운 기단을 꾸미고 일석으로 탑신과 상륜을 조성했다.

 

 

중암암에서 주석하시다 니르반하에 드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스님의 부도이다. 살아생전이나 입적에 드신 후에도 참 외로워 보인다. 영원히 혼자일까? 주인공은 한없이 편안할텐데 내가 외로운 모양이다.

 

2014.06.06

 

 

 

 

 

 

 

추석 연휴. 산행길도 한산하고 순례객도 드문 산길 달리는 차량을 향해 붉은 단풍이 춤을 추며 다가온다. 산아래는 가을이 여물지 않았지만 은해사 암자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중암암에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온통 바위로 둘러쌓인 암자가 천왕문 돌기둥 바위 사이로 살며시 모습을 보인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도처인 중암암은 신라 흥덕왕 때 동화사를 창건한 심지왕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돌구멍으로 들어서니  눈앞에  작은 암자가 벼랑에 서 있다. 전각 규모는 커지도 작지도 않고 바위 아래 작은 공간과 잘 어울인다. 법당을  등지고 돌아서면 낮은 담벼락 너머 작은 요사가 바위끝에 얹혀 있는 듯 앙증맞게 자리해있다.

 

우리에게는 중암암은 초갓집 지붕에 둥지를 튼 제비집처럼 운치있게 보이지만, 스님은 백척간두에 선 절박한 심정으로 수행정진하려는 마음을 품고 한 뼘 여유도 없는 벼랑에 자리를 틀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툇마루가 있는 법당은 강화도 정수사, 안동 개목사 두 절집만 알려져 있는데 중암암 법당도 툇마루가 있다. 니스칠 한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툇마루에는 스님의 얼굴이 어려 앉기조차 겁이 난다. 가을볕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왓골이 동백기름으로 치장한 여인의 쪽진 머리처럼  참 곱다.또한 중암암에서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는 해우소와 관련된 설화이다.

 

"옛날에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돌구멍 절에서 수행을 하고 계시던 세 분의 도반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절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통도사에 계시는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그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1말 3되나 떨어진다"고 하며 은근히 절의 규모를 법당 문 크기에 빗대어 자랑을 하셨다.

 

이어 해인사에서 오신 스님이 "우리 해인사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어야만 저을 수 있다"고 하며 절의 규모와 큰 솥이 있음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두 스님의 자랑을 듣고 있던 돌구멍절 스님은 절의 규모 등으로 자랑 할 게 없자,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자랑을 하여 한바탕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태난야. 천태전각이다.

 

 

 

전각 내부에는 산신과 나반존자를 모셨다.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 4매 장대석으로 된 지대석, 2기단,  상·하기단의 면석에는 탱주와 양우주를 새겼다. 기단 갑석에는 우동이 보이고 상부에 받침 2개를 두었다. 몸돌에도 각각 양우주를 조각했다.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하고 우동과 전각의 반전이 심한 편인데, 옥개받침은 3*3*4단이며 노반석과 3층 옥개는 한 돌로 보인다. 석탑의 조성시기는 암자의 창건시기와 같이 고려초기로 추정한다.

 

 

탑의 위치로 보아 팔공산의 기를 염승하는 비보탑으로 여겨진다. 석등과 석주도 보여 예전에는 전각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락굴. 만년송을 만나른 가는 길에 있다. 죄 많고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틈새를 결코 빠져 들어갈 수 없다하여 우회하려다 죽을 각오(?)로 진입했지만 무사히 통과했다. 아직 할 일이 남은 모양이다.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건들바위.  둥그런 사발을 엎어 높은 듯한 모양이다. 어느 날 밤 바위에서 우뢰소리가 나 주지스님이 놀라서 달려가 보니 바위가 암자를 덮칠 듯이 요동을 치고 있어,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하였더니 바위는 움직임을 멈추고 원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겨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세 살 먹은 어린이가 흔들어도 흔들린다는 말에 흔들어 볼 용기가 나지 않고 기가 죽었었는데,  접근 불가가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극락굴에서 만년송으로 향하는 중암암 뒷쪽 능선에 대형 바위 세개가 있으며 한 곳에 삼인암을 새겼다. 순천 선암사 초입 연못 삼인당처럼 삼인은 삼법인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변하는 것에는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세 가지를 말하며, 일체개고 대신 모든 괴로움을 없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리며 만년을 살았다는 만년송

 

 

추석 연휴에 잠시 들린 중암암. 하늘이 참 맑다.

 

하늘...원성스님

 

하늘이 마냥 좋아

투명한 마음은 하늘을 닿고 

오래 가슴 깊이 맺혀진

내 안의 모든 것들을 구름과 함께 띄워 보냅니다.

 

허허로운 심정은

먹물 옷에 눈물로 훔치고

덩그러니 하늘에 묻혀

나를 잊습니다.

하늘 안에 나를 잊을 때

말 못할 서러움과 아름다움이

시간을 멈추고 거기에 있습니다.

 

200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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