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영천...운부암

임병기(선과) 2014. 6. 2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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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의 운부암 그리고 2009년 10월의 운부암

 

모두 그대로인데 나만 변한듯 합니다.

 

 

 

 

 

 

 

 

 

 

 

 

 

201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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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흥암

 

비구니 선원. 추사의 묵향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수미단을 품고 사는 별세계. 초파일 백중날만 산문을 개방하는 백흥암이다. 닫힌 보화루 누하문쪽으로 슬며시 접근해본다. 유년 가설 극장 천막아래 개구멍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때도 겁이 많았지만 지금도 소심하다. 다음에 연을 맺을 수 밖에...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 절은 혜철(惠徹)국사께서 861년(경문왕 1년)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년(명종 1)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고, 1651년(효종 2)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1730년(영조 6)에는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까치발로 극락암 현판을 촬영했다. 유년에 면소재지 농협창고 마당의 가설 극장 천막 개구멍으로 친구놈들은 잘도 머리를 밀고 들어갔건만, 겁많은 나는 종영 5분전 천막을 걷어낼 때까지 밖을 서성거렸다. 겨우 몇 분동안의 영화 관람의 맛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극락전 촬영 후 문득 그런 옛시절의 잊어버렸던 추억이 스쳐갔다.

 

운부암

 

운부암은 711년 성덕왕 10년에 의상 스님이 창건하였다. 천년 전에 창건할 당시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났다고 하여 그렇게 명명되었다  관음기도 도량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1860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옹허스님과 침운스님이 중건하였고 1900년에 보화루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운부난야(雲浮蘭若)가 있고 오른쪽에 우의당(禹義堂)이 있으며 앞쪽에는 보화루가 있다.

 

 

가을 빛 머금은 보화루의 속살이 미적 감각에 둔한 내게도 참 아름답게 보인다. 덤벙주초, 그랭이. 가공하지 않은 누하주. 2층 바라지창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창이 제일 크고 양편 4개 바라지는 점점 줄어들며 대칭 구조다. 누하진입에 앞서 다시 바라지창을 보면 문얼굴 하인방의 높이가 눈길을 끌었다.

 

즉, 가운데 바라지창 하인방이 가장 낮고 좌우 대칭으로 높이가 높아 진다. 분명 의도적인 기법일텐데 조형적인 아름다움 외에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만 고건축의 귀솟음. 안쏠림 처럼 시각적인 오류를 위한 구조로만 생각되어진다.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해관(海觀) 유한익(劉漢翼)의 글씨

 

 

관점.

 

우리가 사는 바라지창 너머 세상도 별천지.

 

빈의자.

 

비구니 스님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릴 듯.

 

여유.

 

시간이 멈춘 공간. 속살 드러낸 나이든 목리

 

 

원통전.보화루. 운부난야.우의당 전각이 산지가람의  □字 배치이다. 넓지 않은  중정과 어울리는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어린 원통전.  대갓집 아씨의 자태에 마님의 위엄이 느껴진다.  적막이 깔린 절마당에는 바람에 구르는 낙엽마져  스스로 놀라 잰걸음으로 사라진다. 절마당엔 다시 고요로 채워지고 난 애써 눈을 피한다.

 

 

 

 

 

연암의 손자이며 철종때 경상감사를 지낸 환재 박규 (桓齋 朴珪壽)의 글

 

 

 

소박하고 안온한 넉살문 창살. 퇴색된 단청은  우리의 그윽한 아름다움이다.

 

 원통전 관음보살.

 

 

화염문, 꽃무늬, 가릉빈가 등으로 장식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 청동관음보살이다. 얼굴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갸름한 형태이며, 온 몸을 휘감은 구슬장식이 무척 화려한 모습이다. 신체 표현은 굴곡 없이 수평적이어서 형식적으로 처리된 느낌이지만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목에 있는 삼도, 가슴 아래 띠로 묶은 매듭 표현, 양 다리에 대칭적으로 흘러내린 옷주름 등은 조선 초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석탑 몸돌. 옥개석 위에  석등 간주석과 보주가 목마를 타고 절마당을 지키고 있다.

 

 

난야는 아란야(阿蘭若:Aranya)의 준말로 고요하여 수행하기 좋은 선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운부암은 금강산 마하연과 더불어 수행하기 좋은 가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봉,만공,성철,향곡 큰스님들이 안거를 보낸 선원이라 한다.

 

 

명경지수 같은 툇마루.  욕망도 분별도 벗어 놓은 듯...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가장 작은 전각이다. 우리 지도층은 언제쯤 이전투구에서 벗어나겠는가?

 

 

선사들은 말씀하셨다.

 

뜬구름이라고...

 

 

잠시 차지했던 고요와  적막을 돌려주고 돌아나오는 길, 함께 가자며 구름이 먼저 달려온다.

 

가을에는 구름도  친구가 그리운가 보다.

 

200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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