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문경시

문경..혜국사 목조아미타삼존불. 부도전

임병기(선과) 2014. 5. 29.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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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답사객들이 찾는 문경, 하지만 혜국사 답사는 쉽지 않다. 문경 새재길에서도 족히 왕복 5키로는 소요되며 차량 진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도보로 답사했을까? 제법 넓은 시멘트 포장길을 구절양장처럼 돌고돌아 혜국사 초입 부도전이 반기지만 돌아오는 길에 들릴 요량으로 통과한다.

 

 

이즈음의 도심 절집은 초파일을 앞두고 요란한 행사준비에 분주하건만 시절을 비켜간듯 연녹색으로 물든 절집은 적막강산이다. 나와 산행을 마친듯한 부부가 절집 주인이 되어 법당을 온건히 차지하고 예배를 올릴 수 있었다. 감모여재라고 했으니......

 

1867년(고종 4)에 작성된 「혜국사중건기에 사적이 전한다. 혜국사는 신라 846년(문성왕 8) 보조 체징(804~880) 스님이 법흥사法興寺로 창건하였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혜국사에  피신했다가  개성으로 돌아가서  왕이 재물을 내려주어 가람을 중수하고 국왕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혜국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조선 세조 임금 역시 여기에 머물었다고 하는데,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혜국사 승려들이 크게 활약하였고 임란 당시에 청허, 송운,·기허 대사 등이  절에 머물며 승병을 지도했다고 한다. 이후 쇠락하여 안적암에 속하였다가 1927년에 중건되었다.  

 

혜국사와 암자는 1750년 초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향화를 피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혜국사중건기」에 의하면 1866년에 대웅전, 강성루), 월현당, 관음전 등이 허물어지자 1867년 관찰사 이삼현의 도움으로 대웅전 3칸을 만들었지만 사운이 점점 쇠퇴하여져 안적암에 속하고 본사는 폐하여졌다고 한다. 관찰사가 혜국사 불사에 도움울 준 것은 불교신자 보다는 조령진鳥嶺鎭을 관장하는 책임자자가 군역軍役과 산성역山城役에 동원된  승려에게 내린 공적인  지원으로 해석된다.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  전각 이름을 극락전, 아미타전 등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봉안한 까닭은 혜국사가 위치한 주흘산, 문경새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새재는 임진왜란을 비롯 수 많은 전장의 중심통로 였으며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이름없는 민초, 군졸, 승려, 구천을 떠도는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위해서 아미타삼존불 봉안은 지극히 당연한 배치이다.

 

 

삼존불 협시보살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발원문에 따르면 삼존상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금어 김문이 강희23년(1684)에 조성하여 문경 금학사에 안치한 불상으로 알려졌다. 금학사에서 이곳으로 이불한 까닭이 위에서 언급한 임란 희생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목조아미타불 본존. 상호는 방형이지만 원만해 보이며 하품중생인 수인을 맺었으며 결가부좌상이다. 조선후기 불상 특징처럼 머리는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으며 불신에 비해  크다.  어깨의 폭이 좁고, 하반신은 상반신보다는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중간계주, 정상계주가 표현되었고, 소발에 백호,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법의는  대의 아래에  승각기를 입고 있으며 우측 어깨와 팔에 편삼을 걸친 변형 통견식 착의법으로 보인다. 이러한 착의법은 근처 상주 용흥사 목조아미타삼존좌상(1647년),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49년) 등에서도 나타난다.

 

 

우협시 대세지보살, 본존과 비슷하다. 두상의 머리는 상투를 높이 메고 있으며,  양쪽 어깨로 두 가닥 보발이 흘러내리고 있다.

 

좌협시 관음보살. 정병을 지물로 들고 있다.

 

 

 

 

부도전. 연록이 절정이다.

 

 

 

연곡당 사진지출세탑

 

출세出世? 입적과 동의어일까? 부도의 다른 표현인가?

 

 

연곡당 탑비.숭정기원후재계유(1693년?)

 

 

혜월당 여상지탑

 

 

자영당대사 부도탑비.숭정기원후재경술(1670년?)

 

 

자영당대사 성연 출세탑

 

 

 

해월당탑.계해년(1683년?)

 

 

빠지고 싶다는, 잠들고 싶다는 상념이 불현듯 스쳐갔다. 그 옆에 누우면  열반에 드신 선사들의 법문이 들려올까? 살아서도 보이지 않는 중생에게 던저 주시는 삶의 방편들은 저 부도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언젠가는 이해될까? 봄날에는 가끔 꿈꾸고 싶다.

20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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