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기장군

부산...불광산 장안사

임병기(선과) 2014. 3. 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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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는 673년(신라 문무왕 13) 원효 대사가 쌍계사(雙溪寺)로 창건하였고, 애장왕(재위 800~809)이 다녀간 후 장안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의 역사는 전혀 전하는 것이 없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고 한다. 그 뒤 1638년(인조 16) 태의 선사가 중건하였으며, 1654년(효종 5) 원정·학능·충묵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48년 각현스님이 커다란 규모로 중수했다고 한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좌우로 응진전·명부전 등이 자리해 있다. 처음부터 고즈넉한 분위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고찰 느낌보다는 도심의 포교당  같았다. 문전성시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감정이 들었다.

 

사천왕상

 

천왕문의 사천왕도 다양하게 봉안되어 간다.

 

사천왕상

사자상?

 

노주석인가? 

 

대웅전

 

장안사 대웅전’은 김방한의 장안사대웅전기’(長安寺大雄殿記)와 근래에 발견된 ‘묵서명’에서 건물의 중건 및 중수연대가 명확히 규명된 부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로 효종 5년(1654)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정측면 각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4분합 어칸 창살

 

 

협칸 창살

 

 

불단위 우물천장

 

  대웅전 불단 뒷편의 연輦

 

장안사에 소장된 연(輦)은 조선후기 사찰에서 제작된 연으로서의 전체적인 형태는 4개 손잡이로 이루어진 가마채와 사방에 창호가 있는 사각형의 몸체, 그리고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로 제작된 가마채와 몸체 바탕에는 붉은 안료로 채색이 되어 있으며, 특히 세부 장식을 위해 갖가지 문양이 조각되어 있거나 별도로 만들어진 장식물이 부착되어 있기도 하다.

몸체 바닥 저부에는 묵서로 건륭 25년(1760)에 불광산 장안사 중단 연(佛光山 長安寺 中壇 輦)을 조성한 후에 다시 9월에 개조하였음을 밝히는 조성기와 산중질을 적어 놓고 있다.

 

석조 삼세불

 

 장안사 대웅전 삼세불은 방형의 수미단 위에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을 협시불로 두고 있다. 2006년 2월 장안사에서 실시한 불상 개금 시 석가여래상의 복장에서 기문이 발견되어 1659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밝혀졌다.기문에 의하면, 대화원 녹원大畵員 鹿元이 조각승으로 참여하여 1659년에 조성한 작품이다. 현재까지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17세기 삼세불상은 20여점 정도로, 목조불상이 대부분이며 석조 불상은 1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석가여래는 약사여래 및 아미타여래에 비해 신체가 크지만 상호는 모두 방형으로 나발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보인다. 법의는 두터운 통견이며 옷주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에서 코와 입술 사이의 인중이 길고 뚜렷한 점, 윗입술과 인중 부위가 돌출된 모습이나 목 아래로 쳐져있는 삼도의 표현, 그리고 왼쪽 소매자락의 꽃잎 형태 등은 장안사 삼세불상의 특징이라고 한다.

 

 

 

대웅전 후불탱. 1856년(철종 7)에 조성한 탱으로 금어는 금암 천여錦庵天如, 완해 채종翫海彩宗, 기연錡衍 등인데 이들은 모두 당시 경남 일대에서 고품격의 불화를 제작하던 화승 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화면에는 중앙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의 협시보살과 사천왕, 뒤쪽으로 여섯 제자와 타방불 2위, 4위의 팔부신장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본 작품은 장안사 대웅전 삼세불상의 뒷면에 걸려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로 채색은 전통적인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부드러운 황토색을 넓게 채색하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인물들의 비례도 조화로우며 섬세한 필선과 부드러운 채색이 마치 18세기 불화를 보는 듯하다.

 

금암 천여에 관해서는 경남지방에서 활동하였던 화승이라는 이야기와, 호남에서 활동하며 순천 선암사의 중창을 주도한 인물로  금어로서 종장宗匠이 되었던 사람이라는 자료가 혼재한다.

명부전 지장보살

 

장안사 명부전에는 석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시왕을 협시로 한 지장시왕상 13구와 함께 동녀상, 귀왕상, 판관상, 사자상, 역사상이 좌우로 각 1구씩 배치되어 있다.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군데군데 채색 안료의 박락이 보이고 부분적으로 파손·손상 되어 보수된 것도 있다.

 

장안사 명부전 지장삼존 및 시왕상과 권속들은 제10전륜대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 기문을 통해 1684년에 조성되었다는 절대 연대를 지닌 작품이다. 기문에 양공良工으로 소개된 조각승들은 같은 해에 장안사 응진전 불상을 만든 화승들이라고 한다.

 

시왕상

 

 

명부전 영산회상도

 

명부전  탱화는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영산회상도 처럼 1856년에 제작된 탱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불화는 부분적으로 얼룩 및 박락이 진행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화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를 그린 금어 금암 천여(金魚 錦庵天如, 1794~1878)를 비롯한 6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탱화는 지장삼존과 보살상 4위, 사천왕상 등 간략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나, 사찰 주전각의 중하단탱으로 봉안된 지장시왕도와는 달리 시왕상을 별도로 갖춘 명부전에 봉안된 사례이다.

 

 

응진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 복장 기문에 통해 1684년에 양공良工, 승호勝湖, 희연熙衍, 천휘天輝, 천담天潭, 법자法孖, 법종法宗, 수종守宗, 허예虛艺, 도신道信 등 9명이 관여하여 조성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대웅전 불상보다 무른 불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대웅전 불상보다 25년 후에 조성되었다. 응진전의 여러 상들은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과 동일한 시기에 조성되었고 조각 수법과 표현 기법에서도 동일하여, 당시 장안사에서 행해진 큰 불사에 의해서 기문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시주자들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한상

나한상

 

 

응진전 영산회상도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 화면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한 뒤 흰색과 황색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인물의 얼굴과 대좌 일부분만을 채색한 소위 홍탱紅幀으로 석가모니와 18명의 제자만을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본존 좌우측의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육나한상의 안면은 음영법을 사용하여 개성 있고 역동적인 표정이며, 자유로운 몸짓도 인상적이다. 특히, 화면 전면 좌우에 배치된 나한상 4위는 구름 위로 솟아 오른 연화대 위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서방극락정토의 연화화생자蓮花化生者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도상이다.

화기에 의해 화승 수룡 기전繡龍 琪銓과 관허 의관貫虛 宜官의 지휘 하에 1882년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기전과 의관은 해인사의 화승으로 활약한 화승이다. 아울러 영산회상도는 1882년 범어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를 조성할 때에 같이 제작한 탱으로 보인다. 

 

 

가지 않은 길 

 

 대나무 숲속ㅎ 원효대사 명상길로 스며들었다. 청명한 기운, 댓바람  그 길 끝으로 침잠하고 접다.

 

 

부도전

 

미사여구로 뭇 사람들을 혹하게 했지만 나의 길은 여기 까지. 

 

 

 

이 분은 왜 여기 계시는가?

 

 

삶과 죽음.

 

함께 모셨다고 어색하게 느끼는 것은 나의 씰데없는 분별심 때문이겠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니르반하의 세계에 드신 님들이시기에......

2014.02.23 

 

문화재청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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