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충의당

임병기(선과) 2014. 1. 1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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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면 이조 3길 28-17 충의당. 정무공 최진립선생의 종택이다.

 

최진립1568(선조 1)~ 1636(인조 14). 본관은 경주. 자는 사건, 호는 잠와潛窩. 아버지는 신보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 무과에 급제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울산전투에 참가하여 서생포에서 공을 세웠다. 1607년 5위도총부도사가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 별장을 지냈다. 1615년 능창군 전 추대사건에 연루되어 귀양갔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 복직되어 가덕첨사로 임명되었다. 그뒤 경흥부사·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 경기수사가 되어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했으며, 1634년에는 전라수사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공주영장으로 출정하여 용인의 험천(險川)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경주 숭렬사, 경원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종가의 사랑채 충의당 본래 당호는 흠흠당'欽欽堂이었다. 공경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유물관

 

 

 

 

충노각

 

충노 기별.옥동 불망비

 

병자호란 중 전황이 불리하자 최진립은 자신을 평생 따르던 두 종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옥동과 기별은, "주인이 목숨을 바쳐 충신이 되려는데 어찌 우리 종들이 충노가 되지 못하리오?"라고 말하며 목숨을 바쳤다.종가에서는 이들의 영령을 기려 장군의 매년 음력 12월27일 불천위 제사 뒤 상을 물려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잠와선생이 심은 나무라 알려진 회화나무

 

 

 

 

정무공 정려비각

 

인조 15년1637 정려를 명 받고 숙종 14년1688 정려비를 세우고 숙종33년1707 정려각을 건립하였다. 비문은 1640년 대사간 만랑 황호가 지었다. 본래의 현판은 충의당 내 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이다.

 

개무덤?

 

정려비각 뒷편 개무덤? 이조리 마을에는 재미난 전설이 전해온다.


 염라대왕 앞에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얀 노파 한 사람이 불려 나왔답니다.

『그래 너는 어디서 뭘 하다 왔느냐?』
『예, 신라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 왔사옵니다.』

『신라 땅이라니... 그 넓은 땅이 다 니땅이란 말이냐?』

『경주라는 고을이옵니다.』
『평생 뭘 하고 살았는지 재미있는 세상 이야길 좀 자세히 말해 봐라.』
『예, 분부대로 아뢰겠습니다.』

노파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어린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느라 평생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 혼자서 아들딸을 키웠단 말이냐?』
『예, 시집 장가 보내놓고도 줄곧 집에만 있어 별다른 이야기가 없사옵니다.』

노파의 이야기에서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를 기대했던 염라대왕은 싱겁다는 듯 좌중을 한 바퀴 돌고는 한마디 더 건넨다.

『그래 집 밖 세상은 제대로 구경도 못했단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저는 집만 지켰기에 방귀신이나 다름없사옵니다.』
『뭐 방 귀신? 이 늙은이 입이 매우 사납구나.』

염라대왕은 노파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벽력같이 고함쳤습니다.

『여봐라! 이 늙은이는 뭐하고 지냈지는 함 알아보거라.』

그러나 진짜 노파의 말대로 방구석만 처박혀 지냈는지라...심사가 뒤틀린 염라대왕은

『여봐라! 이 늙은이는 집만 지키는 방 귀신이었다니 개가 되어 아들 집이나 지키게 해라』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나졸들은 노파를 끌고 나가 개로 만들었습니다. 


이승에 있는 노파 아들 박씨 집에서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날 밤 갑자기 배가 불러지더니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쩌면 꼭 한 마리만 낳았을까?』

아내가 예뻐 어쩔 줄 몰라하자 남편도 곁에서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고거 참 예쁘기도 하구나. 아무래도 보통 강아지가 아닌 것 같구려.』

이렇듯 내외의 사랑을 받으며 강아지는 날이 갈수록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강아지가 커서 중개가 되자 박씨 내외는 집안을 개에게 맡겨두고 온종일 들판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대낮에 도둑이 들었다가도 개가 어찌나 사납게 덤벼들어 물고 늘어지는지 도둑은 혼비백산하여 짚신마저 팽개치고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동네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더없이 얌전하고 친절하게 반겼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이 개를 영물이라 부르며 귀여워했습니다.

『통통하게 살 찐거 보니, 저걸 그냥 푹 삶아 놓으면 먹음직하겠구나. 거기다 술 한 잔?』

박씨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그는 내일 아침 동이 트는 대로 개를 잡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개를 잡으면 혼자만 먹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기 구경을 못한 마누라도 포식 좀 하게 하고 건넌 마을 누이 집과 고개 너머 딸네 집에도 다리 하나씩 보내리라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 보니 개가 기척도 없이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마을 어디 있으려니 싶어 부인을 내보내 찾도록 한 박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숫돌에 칼을 갈았습니다. 칼날을 세워놓은 지 한참이 지났으나 개를 찾으러 나간 아내는 점심때가 되도록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박씨는 그만 화가 나서 아내를 탓하며 자기도 찾아 나서는데 마침 아내가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니 여보, 개는 어떡하고….』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없습니다.』

『원 빌어먹을….』

아내를 나무라며 개를 찾아 나선 박씨 역시 해질녘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구 하나 본 사람조차 없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한편 고개 너머 박씨 딸은 새벽밥을 짓다가 성큼 부엌으로 들어오는 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친정집 개였습니다. 반가워서 다가가 쓰다듬어 주니 개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숨겨 달라는 듯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박씨 딸은 밥을 주고 마루 밑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개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마루 밑에 들어가 꼼짝도 안했습니다.
며칠 후 박씨 집에 스님 한 분이 들렀습니다.  스님은 문 앞에 선 채 말없이 박씨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왜 그리 쳐다보십니까?』
『허허, 큰 잘못을 저지르려 하는구려.』
『무슨 말씀이신지요?』
『댁에 분명 개 한 마리가 있었지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 개가 며칠 전 자취를 감췄지요?』

박씨는 의아하게 생각되어 스님을 안으로 모셨습니다. 걸음을 옮겨 마루에 걸터앉은 스님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 개는 바로 돌아가신 당신 어머니입니다. 당신 집을 지켜 주려고 개로 환생하여 오셨는데 잡아먹으려 하다니 쯧쯧쯧….』

『아니 뭐 뭐라구요? 개가 어머니라구요? 마… 말씀 좀 자세히 해주세요.』

기겁을 한 박씨는 스님 장삼자락을 잡고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스님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 개는 지금 재 너머 당신 딸네 집에 숨어 있으니 얼른 모셔다 효성을 다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대로 가운이 멸할 것입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넋을 잃고 서 있던 박씨는 부랴부랴 누이 집에가 노승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듣은 누이도 펄쩍 뛰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개가 숨어 있는 박씨의 딸네 집으로 줄달음쳤습니다.

『어머니 어디 계시나?』

숨을 턱에 차게 몰아쉬며 다급하게 묻는 이 말에 딸은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 네 할머니 말이다. 할머니.』
『할머니라뇨?』 
『응, 저기 계시구나! 어머님, 어머님!』

박씨는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며 울부짖듯「어머니」를 외쳤습니다. 고모를 통해 자초지종의 사연을 들은 딸도 그제 서야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님, 전생에 못한 효성 지금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박씨는 개를 등에 업고 팔도 유람을 시작, 이름난 명승고적과 명찰을 두루 살피며 못다한 효도를 지극 정성으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근처에 다다른 박씨는 잠시 쉬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잠깐 졸다가 깨 보니 등에 업은 개가 없었습니다. 사방을 찾아보니 개는 앞발로 흙을 긁어 근처에 작은 구덩이를 마련해 놓고 자는 듯 죽어 있었습니다. 박씨는 슬피 울며 그곳에 묘를 쓰고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후 박씨 일가는 가세가 번창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출처/다음

천작도天作棹

 

개무덤 위의 바위에 천작도 명문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조리의 풍수형국이 행주형이어서 이곳에 돛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마을이 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동마을의 연못에 이바위가 비치면 양동은 괴질이 창궐하고 흉년이 들어 주민들이 바위를 깨트려버렸다. 이조리 주민들은 원통해하며 바위 파편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개무덤으로 칭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무덤위에 돛대 처럼 생긴 바위를 세우고 '하늘이 세운 돛'의 의미인 천작도 명문을 세웠다고 한다.

 

용산서원 앞 신도비각

 

 

신도비는  영조 16년(1740) 4월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문간공 조경찬, 관찰사 조명겸 서라 기록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귀갑문과 운문을 새겼고 비신 괴임에는 안상을 새긴 귀부와 비신 그리고 각면 3마리의 용이 엉켜 있는 이수가 얹혀 있다.

 

귀부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신도비 내력을 기록한 문루일기에는 비신은 치술령에서 귀부는 백운대에서 가져온 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몇몇 사람들에 의해 통일신라 시대 귀부라는 논문이 발표되어 파장이 일고 있다.

 

 

 

 

 

201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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