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화순군

화순...적벽.보안사지 석탑

임병기(선과) 2013. 10. 1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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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을 나선 옛님 회원들과 적벽에서 조우했다. 그들이 송광사 16국사 부도비 순례를 위해 송광사 대원사를 거치는 동안 나는 순천과 곡성의 문화재를 만난후 적벽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상수원 보호 등의 목적으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어서 좀처럼 답사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적벽의 절경과 보안사지 석탑을 하나라도 더 렌즈에 담고,  느끼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그 와중에도 망향정에서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둘러 앉아 나누어 먹었던 떡. 배. 커피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적벽동천

 

동천洞天. 도교에서 이상향, 무릉동원을 일컽는다. 그렇다면 적벽의 유래를 살펴보자.

 

명승과 경관이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 의 유명한 적벽부 에 나오는 황주 양자강 강가에 있는 적벽을 방불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하며 그 지은이는 조선조 중종 때의 명유 신재 최산두가 1519년 기묘사화로 동복 연월리에 적거 하면서 두루 동복의 산천을 거닐다가  승경을 보고 적벽이라 명명 하였다고 전한다. 적벽은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많은 수려한 절벽경관이 발달되어 있으며,동복댐 상류 적벽(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창랑리, 물염적벽 등이 대표적이라 한다.


오늘 우리가 들린 곳은 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적벽으로 적벽앞에는 망미정, 보안사지석탑, 망향정이 있다. 예전에는 동복댐 보호구역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1996년 임도개설로 사전 허락을 득하면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망향정에서 댐건설로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을 위해 매년 10월 적벽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화순군청에 일정을 문의하면 출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적벽에서 읊노라...김창협

무수한 산봉우리 푸른 하늘을 이었고
그 아래가 창랑인데 길가의 냇물
깎아 세운 층암은 신령의 모습인데
하늘에 높이 솟아 연기구름 어리더라
솔과 삼나무는 물가로 뻗어 떨어질 듯하고
해와 달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가 싶더라
석벽 그늘에는 학의 둥지 있다던데
깊은밤 꿈속에서 신선을 만나리라

 

 

적벽...송병선

경치 좋은 터 잡아 정자를 지으니
아름다운 풍경이여, 모두가 즐겁구나
강물이 잠잠하여 꽃그림자 비치고
산조차 고요하니 새소리도 한가롭다
고표(高標) 에는 옛 정취 남아있고
그윽하고 조용하여 속세가 아니로다
난간 마루에 기대어 옛정을 생각하니
해가 서산에 지도록 돌아갈 길 잊었네

 

 

조광조. 조선 중종조의 개혁정치가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생활을 하면서 사약을 받기전 마지막 한 달을 적벽을 유람하면서 한을 달랬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또한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산천을 유람하던 중 화순에서 세상을 등진 김삿갓도 적벽에 들려 여러편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적벽...김병연

 

무등산고송하재無等山高松下在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심사상류赤壁江深沙上流   적벽 강이 깊다더니 모래위에 흐르는구나 

 

 

보안사지. 철통 같은 보안 태세를 갖출 장소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여 이름 지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만큼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나의 화순 유마사 답사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벌써 눈치를 챘을 것이다. 즉 보안사는 화순 유마사를 창건한 유마운의 딸 보안이 세웠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보안 비구니 창건설이 사실이라면 백제시대  사찰이겠지만 달빛에 물든 설화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지의 석탑으로 판단하면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측되지만 언제 까지 향화를 피웠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 사지총람에는 1984년 학술조사에서 금동불입상이 발견되었고 사지내의 석탑과 승탑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옮겨 보관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석탑은 사지에 남아 있으니 글을 쓴 분은 과연 보안사지를 다녀 왔을까? 어쩌면 석탑 2기중의 한 기를 옮겨 갔다는 설명이 되겠지만 광주박물관에는 승탑만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석탑의 위치도 보안사지가 아니라고 한다. 실햘민 중의 한 분은  댐 건너 노루목 적벽 중턱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른 분은 현재 위치보다 아래라고 했지만 확인 할 수는 없었다.

 

 

기단, 상륜은 물론이고, 옥개석, 탑신 일부 등 많은 부재가 결실되어 원형 추론도 용이하지 않지만 높은 옥개석의 높은 우동과 초층탑신의 첫느낌으로 백제계열임을 직감 할 수 있겠다. 석탑 재질로 보면 2개 이상 석탑의 조합으로 보인다. 옥개받침은 3단이며 탑신에는 양우주 외에는 특별한 조식이 없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전한다.

 

 

동행한 달넘새님은 두터운 옥개석으로 절수구가 생략되었고, 탑신 상부에 탑신괴임이 보이지 않은 것은 별도의 탑신괴임을 두었으나 현재는 결실된 상태라는 견해를 밝힌다. 또한 주변에 흩어진 부재로 미루어 분명 2기 이상의 탑으로 추측했다.

 

 

두텁고 높은  옥개석 우동

 

 

석탑 옆 뒤집혀진 탑신

 

 

국립광주박물관 답사기에 올렸던 보안사지 부도를 가져왔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보안사지 부도. 안태고향이 동복댐 건설로 수몰되어 1998년 타향에 자리를 잡았다. 보안사는 화순 유마사를 창건한 유마운의 딸 보안이 세웠다고 전해온다.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방형 지대석위에 기단부와 몸돌만 남아 있다. 특이한 모양의 원구형 부도로 중대석이 멸실되었지만 팔각 기단과 이상하게 어울려 보인다. 기단에는 보상화문이 보이고 몸돌에는 쌍을 이룬 띠를 2개 새겼으며, 중앙 네면에  연꽃이 둥근 원안에 피어 있다.

 

 

 

망향정

 

개발과 보존, 그건 과거가 아니라 4대강이 死대강이 되었다고 지금에야 난리부루스를 추고, 밀양 송전탑 문제도 언론의 메인 뉴스가 되어버려 이제는 식상한 소식이 되어 버렸다. 나역시도 이제는 환경문제에 무뎌진지 오래지만...

 

그러나 그날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찾은 실향민들의 수몰된 고향을 그리던 목소리가 왜그리 슬프게 망향정을 휘감고 돌던지 마냥 답사가 유쾌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한 고향, 수몰된 추억, 고향 떠난 후 소식 끊긴 죽마고우, 내가 그들이었다면 목 놓아 울부지었을 것이다. 일년에 딱 한번 그날이 오면...

 

201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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