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화순군

화순...유마사 부도

임병기(선과) 2013. 10. 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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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도 피크가 지났는지 유마사 초입 인적을 느낄 수 없었다. 열린 사립문을 통해서 들어가야하나 잠시 망설이다 일주문을 택했다. 이 길은 거의 통행이 드문듯 잡초가 깔려 있다. 틀림없이 유마거사와 관련된 창건설화를 예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유마사부도. 다른 지역 사찰에 있었다면 답사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화순의 자랑거리가 되었을텐데, 걸작중의 걸작 쌍봉사 철감선사부도에 밀려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나역시 그런 답사객이어서 이제사 인연을 짓기 위해 달려왔다.

 

유마사는 627년(백제 무왕 28)에 당나라에서 온 유마운 스님이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이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해련 스님의 부도와 고려청자편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그 법통이 꾸준히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유마사와 관련된 기록은 1915년의 『동복읍지』와 금명보정 스님의 문집 『다송문고』에 수록된 「유마사향각창건상량문)」ㆍ「모후산유마사신창염불당천일기도결사]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이들 자료를 중심으로 조선중기 이후의 연혁을 살펴보면, 1656년(효종 7)과 1670년(현종 11)에 각각 중건하였으며, 1879년(고종 16)에는 김경담과 김규홍이 향당을 신축하고 당우들을 중수하였다.

 

극락전ㆍ명부안ㆍ염왕전ㆍ응진당 등의 법당명이 언급되고 있으나 이때 이미 없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귀정암ㆍ금릉암ㆍ운성암ㆍ사자암ㆍ오미암ㆍ은적암ㆍ남굴암ㆍ동암의 암자가 있었던 점 등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보안교

 

보안교는 계곡 양 끝에 축대를 쌓고 납작한 돌로 하나로 상판을 올려놓았다. 다리 상부 왼쪽에 ‘유마동천보안교維摩洞天普安橋’라 쓰여 있어,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량련호觀世音菩薩梁蓮浩'가 새겨져 있다.  아래에는 시주자의 이름이라 생각되는 ‘백운거사 양연법(白雲居士 梁蓮法)’을 새겨 놓았다.

 

 

보안다리를 놓을 때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석재를 운반했으나 험한 산길이라 작업의 진척이 느려지자, 창건주 유마운 스님의 딸 보안비구가 치마폭에  석재를 담아와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사찰경내 제월천 샘에도 보안비구의 전설이 전한다.

 

승려가 되기 위해 유마사를 찾은  젊은이가 보안에게 반해 사랑에 빠졌을 때, 보안은 샘물에 떠 있는 달을 체로 건져 올리면 사랑을 받아주겠노라 하였다. 젊은이가 번번이 실패하자 보안은 체로 달을 떠올림으로써 비범한 경지를 보였으나, 사랑에 눈이 먼 젊은이는 여전히 보안을 탐하였다. 이에 몸을 허락하기로 하고 대웅전으로 가서 자신을 껴안는 젊은이에게 “저 부처님이 보이지 않느냐! 저 부처님만 부처님인 줄 아느냐!” 라고 호통친 뒤 불상이 되었고, 그 순간 젊은이는 큰 깨달음을 얻어 후일 고승이 되었다. 그 뒤부터 이 샘은 달[月]을 건진[濟] 샘이라 하여 ‘제월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혜련선사부도

 

해련선사부도. 유마사지 서쪽 산기슭에 무너져 방치되던 부도를 1981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으며,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통일신라 9세기경에 발달한 팔각 원당형의 전형양식으로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하며,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각원당형 부도로 지대석은 하나의 돌로 깎은 팔각의 윗면에 각호각형 3단의 괴임대를 두었다. 팔각 하대석은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위로는 측면에 팔각의 돌출대를 돌렸으며, 윗면 역시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를 조출하였다.

 

중석 받침의 복련은 팔각의 각 면에 귀꽃을 조각하여 화문을 장식하였고, 그 위로는 16엽 중판을 양각으로 새겨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와 연결하였다. 중석은 하단에 팔각 돌출대를 두르고 각 면에다 큼직한 안상을 새겨 하면에 3단의 각형받침과 팔판의 연화문이 각출된 앙련의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팔각 탑신석.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표현하였다.  탑신 전후에 문비가 있으나 전면에는 귀면과 문고리를 장식하였으며, 뒷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다.  탑신의 상단에 ‘해련지탑海蓮之塔’이라는 명문을 세로 두 줄로 음각하여 부도에 모신 주인공을 알려주고 있으나, 아쉽게도 스님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옥개석은 넓고 평박한 편으로 윗면에 기왓골이 없고 우동이 뚜렷하며, 두툼한 우동마루 끝에는 귀꽃을 장식하였다. 하부에는 3단의 받침을 마련하고  넓은 절수구를 두었다.   

 

 

 

 

옥개석 귀꽃

 

가안선사지탑

 

가안선자可安禪子부도. 석탑부재와 섞여 있어 본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지대석은 3단층급의 석탑 옥개석을 뒤집어 놓았다. 그 위에는 11엽 앙련을 양각한 탑신 괴임을 두었다. 옥개석도 지대석 처럼 층급 받침이 3단인 탑 옥개석을 올리고, 그위에석탑 삼층 옥개석으로 보이는 부재를 거꾸로 올렸다.  탑신은 세장하고 배흘림이 표현되었으며, 중앙에 가안선자지탑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탑신받침의 연꽃잎 안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겼다.

 

 

가안선사의 행적은 전하지 않으나, 부도 부재로 사용된 석탑옥개석으로 미루어 유마사에는 3층 석탑이 유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헌선사탑

 

경헌선사 부도. 석종형으로 방형 지대석과 하대석은 단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대석에는 복련이 조식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의 서쪽에는 멧돼지, 남쪽과 북쪽은 사자, 동쪽에는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종형으로 상륜부와 탑신이 한돌이며, 탑신의 곡선은 완만하다. 표면에는 2개 유곽, 그 안에 9개 유두를 돌출하였다.  탑신부의 중앙에는 '경헌장로지탑敬軒丈老之塔'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탑신 상단에는 어개띠를 두었다.

 

 

 

 

괘불지주

 

대웅전 앞에 위치한다. 상부는 각을 없애고 호형으로 다듬어 모를 죽였다. 상부와 하부의 께가 거의 일정하며 단면의 형태는 세장한 방형이다. 상하에 구멍이  있고 문양이나 명문은 없다. 조성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되며, 유마사에도 괘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옛부재

 

높게 쌓은 석축에 둥근 초석을 두어 원주를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창호는 빗살창으로 4분합 문이다의 문을 달았다. 

 

 

대웅전 아미타삼존불. 근자에 모셔진 삼존불이다. 협시불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관음보살이다.

 

 

입석

 

벽사의 의미이며, 사찰 경계석 기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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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로 건너간 동종과 많은 유물이 제자리를 찾었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가안선사 부도재로 이용된 석탑 옥개석을 살려 대웅전 뜰에 새롭게 복원된 삼층석탑 처마에 걸린 풍탁에서 아름다운 법음이 은은하게 산사를 감쌌으면 금상첨화이리라.  

 

201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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