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전국의 매스컴 문화면을 장식했던 치인리마애불 입상이다. 해인사측에서 발표한 내용은 "1200년만에 9월 27일 시작되는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성공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스님들의 기도처와 기도길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믿으면 될텐데...
해인사 입구에서 우두봉 등반길은 토신골과, 극락골을 경유하는 2개 코스가 있다. 그 중 하나인 극락골 코스에 마애불이 위치하고 있다. 2006년(?) 극락골이 휴식년제로 출입이 제한되기 전에는 자유롭게 뵐 수 있었던 옛님이었다. 현재에도 국립공원의 승인을 득하면 친견할 수 있다.
대장경 축제기간 동안 공개 여부는 9월 3일 현재 결론이 나지 않은 것 같다. 조직위원회와 해인사측의 바람과 달리 참배공간, 데크, 나무다리 등의 설치 문제로 문화재청에서 현상변경허가가 나지 않아 재신청을 한 상태이다.
현상변경허가 : 공사, 수리 등의 행위가 문화재의 현재 상태를 변경한다고 판단될 경우 문화재청이나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허가를 받는 것
해인사에서 단오날에 화기의 비보책으로 소금단지를 묻는 일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해인사 팔만대장경 뒷편의 석탑이 행주형국의 돛을 상징한다는 것도 인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애불이 행주형국의 선박의 선장 역활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접한다. 그런 비보책으로 조성되었으면 자연스럽게 통일신라 하대 도선국사 이후 바위속에서 나투신 부처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카페 '정법사 영축불교대학'에 기재된 현진스님의 글을 보자
"음력 5월 5일은 단오날이다. 예로부터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은 가장 길일로 친다. 5월 단오날 또한 양기가 왕성한 첫날이기 때문에 청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뛰고 씨름하면서 축제의 날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인사에서는 단오날에 뭘 할까. 우선 아침부터 소금 묻기 행사를 한다. 선방스님들은 소금단지를 지고 매화산(해인사 앞산)에 오르고, 주지스님과 사중의 스님들은 경내에 있는 염주석에 소금을 넣는다.단오날마다 소금을 묻는 일은 꽤 오래된 전통이다.해인사는 조선 숙종 이후 원인모를 화재가 7차례나 발생하였다고 기록할 만큼 화기가 강한 도량이었다. 그래서 스님들이 화기를 다스리기 위해 여러 가지 비방이 강구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금을 묻는 의식이었다.
해인사에서 바라보는 매화산의 주봉은 마치 고드름을 세워 놓은 것처럼 뽀족하다.이런 형태의 산세를 풍수학에서는 '화산(火山)형국'이라고 한단다.즉, 강한 불기운을 품고 있는 산이라는 뜻.아마도 스님들은 해인사에 화재가 일어나는 원인을 앞산에서 뿜어내는 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듯하다. 그래서 앞산의 기운을 제압하면 불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그래서 소금을 매화산 상봉에 묻어두는 일을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해왔다.소금은, 바다를 의미하므로 불을 끌 수 있는 대체품으로 아주 적절하다.그리고 삿된 것을 막는 벽사의 의미도 있었으리라.
이런 연유로 앞산에 5군데, 경내에 8군데의 단지에 소금을 넣는 의식을 단오날에 하는 것. 신기한 것은, 소금을 묻기 시작하면서 해인사에는 화재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금 묻는 행사와 아울러 또 하나의 전통은 마애불에게 공양을 올리는 일이다. 큰절에서 3키로 정도 떨어진 가야산 중봉에 있는 마애 부처님께 공양을 지극하게 올리는데 이 또한 해인사의 안녕과 깊은 관련이 있다.해인사는 풍수로 따지자면, 행주형국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큰 배 한척이 바다에 떠 있는 모양이라는 뜻이다.즉, 해인사가 선박이라고 한다면 중봉의 마애불은 배를 움직이는 선장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해인사의 수행 가풍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마애불의 영험과 역할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실제로 마애불은 해인사와 일직선의 방향으로 서 있기 때문에 아주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마애불에 공양 올리는 일은 나에게 주어졌다. 종무소에서 소임을 보는 스님이 반드시 올라가야하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다른 스님들은 강원에서 주최하는 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여하고,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은 나에게 그 몫이 주어졌다.아침 8시부터 쉬엄쉬엄 산으로 올랐다.
나는 걸망 속에 가사와 목탁을 챙기고, 동행하는 거사님들의 배낭 속에는 부처님께 올릴 차와 초, 그리고 향로와 과일 등이 들어 있었다.부처님께 공양 올리기 위해 산길을 오르는 일은 경건하고 차분해진다.힘들게 올라가는 자체가 불공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불공은, 정성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그처럼 기도는 간절한 마음과 정성이 우선이다. 나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우리 어머니는 절에 가는 날이 되면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셨다. 그리고 전날 잘 골라 두었던 쌀을 준비하여 이른 아침부터 절에 오르셨다.그런데 머리에 인 쌀자루는 경사진 길에서도 땅에 내려놓지 않았다.고갯마루에서 잠시 땀을 닦을 때도 결코 머리에서 내려놓는 일이 없었다.부처님께 올린 공양물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불심의 표현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산사를 찾는다면 어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절에 도착하는 순간, 기도가 이미 성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무릇 부처님을 위해 하는 일은 정성이 따라야 한다.그러므로 모든 게 불사다.단오날 오전은, 마애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설명문은 문화재청 자료를 발췌했습니다.
높이 7.5m의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불상을 고부조하고 발 아래 대좌를 마련한 불상은 머리 뒤에 원형두광을 얕게 새기고, 나머지 부분을 신광으로 처리한 석주형의 마애불상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고 높직하다. 미소가 없는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는 날카로운 눈꼬리, 두꺼운 입술, 턱주름 등이 표현되었으며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여 얼굴과 함께 당당한 자세의 불상을 나타내고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왼쪽 어깨에서 매듭을 지어 고리를 만들었으며, U자형으로 연 가슴에는 내의가 보이고 띠매듭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가슴에 대어 손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손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여 생동감이 느껴진다.
머리 뒤에는 단순한 원형의 머리광배가 있을 뿐인데, 이를 지탱하는 자연광배가 몸광배 구실을 겸하는 것 같다. 얼굴과 두 손은 정교하게 조각한 반면 신체는 마치 돌기둥에 새긴 듯 옷주름을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마애불은 각 부분의 표현이 힘있고 당당하면서도 세부수법에서 세련된 면이 보여 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추정된다.
문화재 공식명칭은 '합천치인리마애여래입상'이지만 해인사마애불로 자주 칭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공식명칭이 '해인사석불입상'인 봉천대 아래의 석불도 '합천 봉천대석불입상'으로 변경하고 현재의 문화재명이 별칭이 되었으면 좋을 것이다.
해인사 용탑선원을 통하여 마애불에 이르는 길이 해인사에서 말하는 이른바 스님 기도길 이다. 불과 몇년 되지 않은 휴식년 기간이지만 물이끼 낀 바위, 우거진 숲이 마치 처녀림 분위기이다. 해인사 행사 기간중에 개방하는 것은 대찬성이다. 하지만 마애불 친견 인원을 하루 최대 몇명 이내로 제한 했으면 좋겠다.
폭염에 8시간 산행으로 파김치가 되어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전에 삼배도 올리지 못하고 산문을 벗어 났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오늘 코스의 역방향으로 산행을 해야겠다. 물론 오늘 뵈었던 옛님도 다시 뵙고, 마음 맞는 도반과 웃음을 함께 나누며 시간 제한 없이 가야산 그 속으로 젖어들고 싶다. 2013.08.07 |
'경상남도 > 합천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천...금리 미륵불 (0) | 2013.12.05 |
---|---|
합천...삼가 기양루 (0) | 2013.12.04 |
합천...해인사 석불입상 (0) | 2013.09.24 |
합천...영암사지 (0) | 2013.06.27 |
합천...상홍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0) | 2012.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