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유적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근처에 처음 이사 왔을때가 1989년 2월29일이었다. 그때는 우리 아파트만 제외하고 주위는 논밭이었으며 입석 근처도 대곡지구가 개발되기전에는 한적한 곳이었다. 내기억이 맞다면 당시에는 입석 하나 서 있었던 협소한 공간이었다. 아파트 개발과 주민의 문화의식 향상, 지자체의 관심 등으로 이제는 지역민의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대구시 달서구청의 자료를 보자. "달서구 상화로5길 33(진천동).달서구에서 문화유산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진천동 470-38번지에 위치한 선돌 일원에 대하여 경북대학교 발물관에 의뢰하여 '97. 10. 25 ~ '98. 1. 26(약90일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선돌 1기(높이 2.1m, 폭 1.1m, 성혈6개)와 동 입석을 중심으로 주변에 장방형 신축(서쪽 장변 약 25m, 동쪽 장변 약 20.5m, 북쪽단변 약 10m)을 돌렸으며, 그 주변에서 수많은 무문토기편이 수습 되었고 석관이 설치된 사실도 발견되어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선돌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에서 공동제의행위를 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제의유적은 지금까지 발굴조사의 예로 볼 때 국내에서 최초로 알려진 것으로 높은 문화·역사·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98. 12. 23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11호)로 지정되었으며 유적의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97년부터 '03년까지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하였으며, '00. 11. 14부터 일반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이후, 사적지 탐방객 및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선사유적 공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03. 8. 28 ~ '03. 12. 1까지 관리실 신축과 조경시설을 설치하였다.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은 6.178㎡의 면적에 입석1기, 석관묘 5기, 음수대, 벤취, 15종 1,600본의 수목, 문화재안내판, 모형석관묘 2개소, 모형입석 1개소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선돌
4개의 동심원 바위그림이 희미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태양을 상징하며 풍농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이해 했었다. 최근에는 물돌이 그림이라는 주장도 대두된다고 한다. 물도 정착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태양에 버금가는 중요한 자연 환경이었을 것이다.
바위그림 모형 바위구멍
선돌 측면에 바위구멍 6개가 보인다. 혹 북두칠성 별자리를 상징한 7개 아니었을까? 성혈 역시 기자신앙. 다산, 풍요를 기원하는 선사시대를 살고간 님들의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선돌의 바위구멍.바위그림 모형
대구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관광 투어가 있다. 지금의 코스외에도 경북대, 칠성동, 파동, 진천동, 천왕당 등을 연계하는 고인돌및 연구산 거북바위 등 민속신앙 코스를 개발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찾는 사람이 있을까? 2013.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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