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향교 지근 제일중학교. 우리가 고교 재학시절에는 여기가 제일여상으로 인문계 진학이 어려운 실력있는 대구 경북의여중생들의 꿈 꾸던 전국에서 알아주던 명문고였다. 조국근대화에 일조한 이른바 베이버부머 세대는 다양한 업적을 쌓았다. 그중에서도 여상 출신 들이 금융계, 산업계에서 이룩한 업적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답사 목적으로 찾았지만 그런 추억속에 먼저 젖어들어 교정을 누볐을 나와 동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여고생들의 환한 웃음을 떠올려 보았다. 1학년은 단발, 2학년은 양갈래 묶음, 3학년은 양갈래로 땋은 머리로 기억에 남아 있다. 더불어 하얀 칼라도......
교정 정문 화단에 자리한 거북바위. 거북등을 연상시키는데다 바위 전체의 모습이 거북을 닮아 거북바위라는 불리운다. 마치 고인돌 덮개돌을 닮은 형상인데 후대에 거북문양과 귀부를 새겼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거북 꼬리부분에 윷판문양의 성혈도 동시대에 조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연구산의 다른 이름은 견월산 見月山으로 정월대보름날 달맞이 하던 산이라는 의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정오를 알리던 포를 쏘아 오포산 午砲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거북바위는 조선초 문신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 10경중의 3경의 자리이기도 하다.
거북바위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신동국여지승람에 " 연구산은 대구의 진산鎭山이라 돌거북을 만들어 머리는 남쪽으로 꼬리는 북쪽으로 하여 지맥을 통하게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팔공산에서 이어지던 지맥이 금호강으로 인해 끊어진 것을 거북바위를 조성하여 앞산으로 맥이 통하도록 조성한 비보책인 것이다.
화기를 누를 비보책으로 보는 이야기도 있다. 대구가 원래 화기가 강한 지역으로 비슬산을 비롯한 수도산, 연구산 등에 불이 자주나서 피해가 심해 물을 상징하는 자리에 거북을 조성했다고 한다.
실제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대구 중앙로역 화재 사건,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사건의 원인이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개교하면서 거북을 동서방향으로 향하게 한 것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어 2003년 대구의 시민단체 '달구벌 얼 찾는 모임'에서 풍수지리 전문가의 조언으로 머리와 꼬리 방향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성황당으로 1908년대 평리동 사직단, 침산 여제단과 함께 자라바위는 기우제를 올리던 신성한 제례단으로 전한다.
거북바위는 달구벌의 민속, 풍속, 풍수지리, 전설을 간직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최근 각광 받기 시작한 대구 골목길 답사는 불과 100년전의 근대문화유산이 주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대구의 민속을 답사코스로 하는 새로운 투어가 개발되어 잊혀져 가는 우리 민초들의 삶이 흥건히 배인 옛님들이 가까이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윷판 문양의 바위 구멍
구수춘은龜岫春雲...서거정 / 이은상 역
구잠은은사오잠龜岑隱隱似鰲岑 거북 뫼 엄전할 사 삼신산만 같을 시고 운출무심역유심雲出無心亦有心 거기서 나오는 구름 무심한 듯 유심하이 대지생령방유망大地生靈方有望 온 백성 다 바라거니 가능무의작감림可能無意作甘霖 단비 아니 주시리.
2013.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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