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거창군

거창...가섭암지 마애삼존불

임병기(선과) 2013. 7. 1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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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004.08.09

사진, 글 수정...2013.06.01

 

 

지금 고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저층 아파트 같은 통로에 살던 사람들 끼리 답사가 아닌 대구 근교 여행을 자주 했었다. 비슷한 연배기도 하지만 집사람 들이 마음이 맞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어쩌면 여행 보다는 뒷풀이를 더 기대했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거창은 여행보다는 고견사가 있는 의상봉 계곡, 수승대, 용추 등 피서로 여러번 왔으며 오늘 답사하고저 하는 가섭암지가 있는 금원산 휴양림에서도 하루를 보냈지만 그 때는 왜 들리지 않았는지 아무리 곱씹어 봐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입장료와 주차료 포함 4,000원을 지불하라는 위압적인 휴양림 관리자와 한 판 승부를 치뤄. 1000원만 내고 입장하였다. 승리감에 휘파람 불며 계곡을 올라갔지만 피서객들이 품어내는 고기 굽는 내음에 뱃속에서 울리는 하모니(?)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매슬로우는 인간욕구 5단계의 최하위는 생리적 욕구라고 했지만 제기럴 그도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라면 아마 자아실현  욕구보다 더 상위 단계로 학설을 제기했을 것이다.

 

 

암자 입구 문바위

 

 

 

문바위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바위로는 제일 큰 바위로 옛 가섭암 절의 일주문에 해당하여 가섭암으로 불린다. 바위가 크기 때문에 수 천 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름도 수없이 바뀌었다.호신암, 금달암, 두문암, 지우암, 기은암, 용의 여의주, 가섭암(迦葉岩) 등 주변 여건에 따라 그때그때 불려진 이름이다.

 

문바위...면우 곽종석(구한말 애국지사)

 

시냇가에 우뚝 솟은 바위돌 신의 도끼로 다듬어 낸 듯
머리 위에 소나무 자란 것 더욱 정을 끄누나
높이 치솟아도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네
저 처럼 부끄러울 일 없이 푸르게 살아 가리라.

 

달암 이선생 순절동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의 사위가 고려 폐망 후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여기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가섭암지

 

가섭암터이니 어느시절 대가람의 부속암자로 있었음이 분명하겠지만 가람은 간데 없고 마애불만 남아 눈 먼 나같은 중생들을 반기고 있어니 가섭존자의 원력일까?

 

가섭이 누구인가?
"석가모니 십대제자 중의 한 사람. 북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부근 출생. 십대제자 중에서도 대표적인 3인 중의 한 사람. 원명은 Mah-Kassapa. 일명 대가섭(大迦葉) 또는 가섭이라고도 한다.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했으나, 부부가 함께 출가했다. 그 후 석가모니를 만나 그의 초기 제자가 되었고, 1주일 뒤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이때 자신의 새 가사(袈裟)를 석가모니에게 바치고 그의 낡은 가사를 받아 늘 착용하였다. 그는 두타행(頭陀行;집착 없는 생활)을 계속 지켰으므로 두타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석가모니의 대리 역할을 했고, 그가 사망한 후에는 후계자로 교단을 통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정리 통합한 경전편찬회 의장을 맡았다."

 

처음 들어 본 사람들도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말 들어 보셨지요? 석가의 미소로도 이심전심으로 알아 들었다는 분이며, 사찰 벽화중 관 밖으로 석가의 두발이 나온 그림이 입적 후에도 가섭을 기다리는 상징이다.  가섭이 돌아오자 발이 관속으로 들어가 무사히 장례를 마칠 수 있었다는 다시말하면, 석가모니의 수제자가 바로 가섭이었다.

 

 

마애불은 천연 동굴이라기 보다는 얼킨 바위 배열으로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긴 바위 면에 얕게 새겨진 불상이다. 양감이 없어 보이며, 다소 둔중하고, 밋밋한 가슴, 각진 어깨에, 본존불은 아미타의 수인이나 중품상생인지, 중품중생인지 구분히 모호하다. 아미타불의 수인로 인해 협시불이 관음, 지장  또는 대세지 보살 임을 알 수 있다.

삼존불은 민머리에 육계 뒤에 두광배가 보이며,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좌우로 벌린 발과 철(凸)자  모양의 대좌가 눈길을 끌었으며, 또한 크게 삼각형의 기하무늬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흔치 않은 형식으로 보여지나, 안내문에 의하면 빗물이 삼존불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한 물홈의 용도로도 보여진다고 한다.

 

 

가섭암지 석탑...2008년 8월

 

여러자료에는 위천초등학교에 있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근자에 박물관으로 이건된 것 같다. 석탑은 1940년경 위천초등학교에서 가섭암지로 소풍가서 허물어져 있든 3층 석탑을 발견하여 주민과 교사들이 위천초등학교 교정에 모셨으나, 1999년 7월 11일 밤에 도난,한달여후 남하면 둔마리 신촌마을 앞 목장 위 도로가에서 찾았다고 한다. 가섭암지 마애불과 편년의 차이가 보이며 후대에 조성한 석탑으로 추정된다....2008년 거창 답사기에서 가져왔다.

 

 

불상의 조상기(造像記)를 해서체로 1행 26자, 총 21행에 540여 글자를 새겼다. 글자 중의 『天慶元年十月』은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해당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에 가섭암과 지장암 등의 불사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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